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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IamJade Dec 12. 2021

Connecting The Dots으로 싱가포르에 오다

몇 년 전, 스탠퍼드대학교 졸업 축하 연설에서 스티븐 잡스가 한 말인 'Connecting the dots'.

점이 모여 선이 되듯이, 과거에 한 일들이 이어진 결과로 현재를 만들어 간다는 말입니다.


처음 들었을 땐 당연한 말인데 왜 다들 그렇게 열광일까.라고 생각했었는데

와. 진짜 맞는 말이다!라는 생각이 머리를 관통한 적이 있습니다.



어렸을 때 저는 제가 똑똑한 사람이라 생각했습니다.

공부하는 게 재밌었고, 잘하는 사람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중학교 2학년.

''에서 ''로 이사를 '나오며'

세상에! 똑똑한 애들이 이렇게나 많다니!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조금 더 노력하니 다시 잘하는 사람이 되었습니다.


중학교 3학년.

딱히 꿈이 없었던 저는 과고를 가기 위해 공부하는 건 싫고, 외고를 가고 싶지는 않고.

전교생 기숙사인 고등학교에 진학합니다.


하.. 여기서 큰 문제들이 시작된 것 같습니다


고등학교 1학년.

전교에서 손가락 안에 꼽히던 애들만 모인 곳에서 제가 느꼈던 감정은

'무기력함'과 '좌절'이었습니다.

이전까지는 '공부 잘하는 아이'로 불리는 걸 즐기고, 공부를 잘하면 선생님들한테 조금 더 특별한 대우를 받는 듯한 기분이 들었고, 부모님이 좋아하는 모습을 보며 '잘하는 나 자신'에 취해 있었던 것 같습니다.


하지만 더 잘하는 친구들 사이에서 저는 더 이상 잘하는 아이가 아니었습니다.

'나 진짜 멍청하다', '왜 똑같이 해도 나는 못하지?'

성적이 잘 나오지 않는 건 물론이며, 제 스스로에 대한 자신감과 자존감이 바닥을 쳤습니다.

그래도 친구들이랑 24시간 붙어있는 건 또 너무 좋고

또 그런 환경에 굴복하는 모습을 보여주기 싫은? 이상한 자존심에 전학은 안 가고, 공부도 못하고 그렇게 고등학교를 졸업하게 됩니다.


고등학교 선택을 잘 못했다고 생각했습니다.

다시 돌이킬 수만 있다면. 이 고등학교를 오지 않았을 텐데.

수능은 인생을 좌지우지하는 인생에서 가장 중요한 시험일 텐데. 난 망했다.라고 생각했습니다.



20살.

서울에 본교가 있지만 지방에 분교가 있는 대학교에 진학합니다.

고등학교 친구들과 제 자신을 비교하며 더 움츠러들었습니다.

그렇게 1학기를 보내고

그냥 제 현실에 안주하며 동아리도 많이 가입하고, 대외활동도 많이 하고, 교환학생도 갔다 오고 나름 즐겁게 보냈지만 고등학교 선택이 이런 결과를 만들었다는 생각을 지울 수는 없었습니다.


23살.

4학년 1학기. 대학원을 가기로 결심하고 조기입학전형?이라는 1년 미리 계약하는 형태로 대학원 전형에 합격합니다.

대학원에 갈 거면서 웬 인턴이냐며, 학과 - 기업 연계 인턴 지원을 못했습니다.

대학원 진학 선택을 후회했습니다.

그래 놓고 또 4학년 내내, 친구들에게 '야 나는 마치 대학교 수시 붙은 고등학생 기분이야!! 캬캬캬'하면서 또 즐거운 1년을 보냅니다.



25살. 석사 막 학기.

막상 논문을 쓰고 취업할 곳을 알아보니 쉽지 않았습니다.

자대 말고 다른 곳을 갈걸, 대학원 선택에 대한 후회.

아니 그냥 대학원에 가지 말 걸.

아니다 그냥 애초에 다른 걸 전공할 걸!

아냐 아예 반수든 재수든 했어야 했는데!!!

아 아니야 아예 고등학교부터 동네에 있는 학교를 갔어야 했는데!!!!!!!!

라며 이미 돌이킬 수 없는 일들에 대한 후회를 하고 또 했습니다.


내 인생이 이렇게 꼬이기 시작한 건 다 고등학교 선택부터야.라는 생각이 아예 마음속에 자리 잡았습니다.


고등학교 선택부터가 꼬인 거였어!!!!!!!!


대학원 졸업 후 취업을 하고, 하던 일을 그만두고,

국비 학원을 다니고 그렇게 개발자가 됩니다.

이직 타이밍 중 흔한 면접 제안을 받게 되었는데

알고 보니 면접관은 고등학교 동창이었습니다. 심지어 사수도 고등학교 선배였습니다.


그렇게 만난 고등학교 동창은 일 외로 여러 사이드 프로젝트를 함께 하자고 제안했고, 개발 관련 좋은 사람들도 많이 소개해줬습니다. 저도 신경 써주는 게 너무 고마웠고 꾸준히 연락을 주고받고 이러저러한 프로젝트도 함께 하며 지냈습니다.

그러던 중 친구는 해외취업으로 한국을 떠났고 매일은 아니더라도 간혹 연락은 주고받았습니다.


그렇게 일 년 후, 저는 스타트업 CTO로 자리 잡은 친구에게서 두 번째 면접 제안을 받게 됩니다.

그리고 그렇게 저 또한 싱가포르에 오게 되었습니다. (급전개죠..?ㅎㅎㅎ)


이 얘기를 브런치에 쓰는 건 '학연이 최고야!'라는 게 아닙니다.

싱가포르를 가는 날을 앞두고 어느 날 제 삶을 돌아봤습니다.



고등학교 때 만약 그 학교를 가지 않고 집 근처 학교를 갔다면 난 계속 잘났다고 생각하며 살지 않았을까?

수능을 앞두고 내가 기대보다 잘하지 못한다는 불안감에 더 겁먹지 않았을까?

불만족스러운 수능 결과에 대학교에 입학하고 나서 졸업할 때까지 그저 스스로에게 실망감에 빠져 살지 않았을까?

석사까지 나오고 내가 지금까지 이뤄온 성과는 이 정도인데!!라는 자만에 빠져 개발자로 전향이라는 새로운 도전을 못하지 않았을까?

십 대가 아니라 더 나이를 많이 먹은 이십 대에 나 스스로가 특별한 사람이 아니라는 걸 받아들이기 더 자존심 상하고 더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을까?

그때 나름 인생에서 실패라는 걸 겪고 이겨내는 과정이 있었기 때문에 국비 학원에서 더 잘하는 친구들을 봐도, 이해가 잘 안 되는 나 자신을 봐도, 끝까지 과정을 끝마칠 수 있지 않았을까?



물론 표면적인 결과를 가져온 이 친구와 접점이 생길 수 있었던 곳도 고등학교이긴 합니다.

그렇게 살아오는 내내 잘못된 선택이었다고 생각했었던 고등학교 덕분에 말이죠.


그렇게 저는 싱가포르에 개발자로 올 수 있었습니다.


이러한 생각을 하던 중 'Connecting The Dots' 연설이 생각났습니다.


생각해보니 그랬습니다.

제 과거가 점이 되고 선이 되어 현재 결과를 만들어냈습니다.



어렸을 때부터 방학 때 외국에 있는 친척집에 갔다오는 친구들이 부러워 

대학교 3학년 1학기에 교환학생으로 체코 프라하에서 살다 온 경험이 있습니다.

10년이 지난 현재에도 주변 친구들이나 부모님은 그때 이야기를 하며
'넌 싱가포르 가서도 잘할 것 같아'라며 격려를 해줬습니다.

저 또한 그때 외국에 나가본 경험이 있었기에 해외취업에 대해 좀 더 걱정을 덜 수 있기도 했습니다.



지금 내가 하는 행동으로 어떠한 결과를 만들어내야지!라는 구체적인 생각은 여전히 부족합니다.

그리고 제 맘대로 될 거라 생각하지도 않고요.

하지만 이번 경험을 통해 지금 당장을 잃어 보일 수 있지만

또 언젠가 멋지고 값진 미래를 만들어내는 데 뒷받침이 되어줄 거라 생각하며 이겨낼 단단한 마음이 생겼습니다.

힘들고 망한 선택인 것 같더라도 에라이~하며 그냥 던져버리지 않고 일단 마무리는 잘해보려 합니다.


여러분의 Connecting dots는 어떤 결과를 만들어냈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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