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 모든 언론들이 애플의 AI를 씹고 있다. 발표했던 AI를 출시 못했으니 욕먹을 만하기도 하지만 애플이 망했다느니 삼성이 완승이라느니 너무 나가는 얘기들이 나오고 있다. 정보도 없이 조회수를 올리기 위해 자극적인 용어로 쓰는 기사가 많아서 직접 한번 정리해보고자 한다. 내 글들 중에 예측한 글들이 많은데 과연 성지가 될지 빗나간 예상이 될지 두고 보자.
우선 애플의 현재상태를 좀 보자. 애플이 어떤 기능을 대대적으로 발표를 하고 아예 출시를 못하는 경우는 처음 있는 일 같다. 원래부터 애플은 미리 발표하는 걸 잘 안 하는 데다가 이번처럼 공식행사에서 발표한 것조차 지키지 못하는 것은 드문 일이다. 왜냐하면 WWDC행사라는 건 개발자들을 위한 행사인데 개발자들은 앞선 정보를 통해 미리 해당 제품을 개발해야 하기 때문이다. 여기서 잘못된 정보를 줘버리면 개발자까지 바보가 되어버린다.
최근 애플이 이렇게 된 것은 아무래도 계속된 회사의 호황으로 도전적인 분위기가 줄어들고 관리형 경영이 이어진 게 원인이 아닌가 싶다. CEO 팀쿡부터가 공급망 담당하던 사람 아닌가. 이공계 학사 출신이긴 하지만 경영학 박사이고 커리어 내내 마케팅과 공급망 쪽에서 일했다. 모든 조직은 리더를 따라가게 되어있다. 리더가 관리형이면 밑에 사람도 관리형이 되고 관리형만 남는다.
팀쿡이 아예 새로운 제품을 주장해서 그게 상품화까지 이어질 가능성은 거의 없다. 그러면 아랫사람들이 내놓아야 하는데 관리형 밑에서는 그게 힘들다. 왜냐하면 새로운 제품은 관리와는 거리가 멀고 오히려 관리를 어렵게 하기 때문이다. 새로운 공급망을 만들어야 하고 마케팅 비용이 드는 데다 엄청난 리스크를 짊어져야 하니 말이다. 팀쿡이 책임지고 내놓은 애플의 비전프로 같은 경우는 새로운 시장이긴 하지만 팀쿡이 억지로 끌고 갔다기보다는 갈 수밖에 없는 시장이었다. 애플워치의 경우도 마찬가지.
이런 환경에서 AI까지 늦어지다 보니 더 많은 공격을 받는 것이다. 그런데 나는 지금의 비판들이 과하다고 생각한다. 이것을 하나하나 반박해 보겠다.
1. 애플이 구글보다 25년이나 뒤진다?
한 외신보도에서는 애플이 구글보다 25년 늦게 인공지능 개발에 뛰어들었다고 했다(https://www.aitimes.com/news/articleView.html?idxno=170903). 구글이 25년 전 발표했던 인공지능 청사진과 그에 따라 개발이 이뤄져 현재의 결과에 이르렀다는 것이다. 그런데 애플은 이제야 뛰어드니 되겠냐는 것이다. 과거의 인터뷰한 내용을 가지고 그동안 계속 추진해 왔다고 추정성 기사를 쓴 것이다.
이 기자가 전공이 뭔지 모르겠지만 2000년 구글이 업계에 등장할 때 인공지능은 현재의 인공지능과는 전혀 다른 개념이었다. 그 당시 누구든지 미래는 인공지능이라고 말할 수 있었다. 그렇게 말하는 게 중요한 게 아니고 어떤 방향으로 가느냐가 중요하다. 구글이 꾸준히 인공지능에 투자해 온 것은 사실이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OpenAI에 한 방 먹고 허겁지겁 방향을 선회해 파운데이션 모델 기반의 제미나이를 만들어낸 것은 무엇을 뜻하는가?
구글은 인공지능을 훨씬 더 미래의 일로 보고 주요 사업이 아닌 부수적인 것으로 추진했다. 인공지능 자체가 서비스가 되는 것은 아니고 검색의 뒤에 붙던가 다양한 서비스 뒤에서 작동하는 것으로 본 것이다. 이럴 수밖에 없는 것이 구글의 서비스의 상당수가 인공지능을 이용하고 있었지만 전면에 내세울 비즈니스 모델은 없었고 검색이라는 메인 사업의 입지 때문에 그럴 상황도 아니었다.
내연차 회사가 전기차 개발에 늦어질 수밖에 없는 이유와 마찬가지다. 할 수만 있다면 내연차로 계속 가는 게 가장 유리하고 그렇게 매몰된 생각을 하다 보면 다른 신기술에는 둔감해질 수밖에 없다. 그리고 내연차를 죽이면서 신기술을 도입하고 싶지는 않은 것이다.
과연 애플은 20년 동안 놀다가 갑자기 뛰어든 것일까? 이런 바보 같은 생각은 그냥 애플을 공격하기 위한 목적이라고 생각할 수밖에 없다. 그것은 애플의 지금까지 행보만 보아도 알 수 있다. 여러분의 핸드폰 속에 있는 사진을 봐라. 이 사진을 자동으로 정렬하고 검색하는 기능은 언제부터 있었을까? 아이폰 속 CPU에는 인공지능 계산을 위한 뉴럴엔진이 탑재되어 있는데 이것이 들어간 건 2017년부터이다.
시리는 어떤가? 우리는 시리가 나왔을 때 엄청난 충격을 받았고 오히려 그 영향으로 구글이 허겁지겁 대화형 어시스턴트를 개발하기도 했다. 시리의 기능이 초창기 발표된 것에서 크게 확장되지 못했지만 사실 따지고 보면 그때 발표한 청사진이 대규모 언어모델(LLM)이라는 새로운 방법론에 의해 엔진만 교체되었을 뿐 지금도 지향하는 바는 같다. 시리의 궁극적인 방향은 AI에이전트였다. 그러나 머신러닝에 기반한 발전은 한계가 있었고 아마도 팀쿡 밑에서 공격적인 지원도 받기 힘들었을 것이다. 그러다 보니 정체될 수밖에 없었고 추격을 허용했다.
왜 그 노력들은 아예 지워버리고 애플을 평가하는가? 설마 구글이 2000년부터 LLM울 시도했다고 말하는 것은 아니지 않은가.
거대한 강물의 흐름으로 보면 애플이나 구글이나 같은 방향으로 가고 있고 거기서 세부적인 차이가 있었을 뿐이다. LLM에서 기술차가 생긴 것은 사실로 보이지만 인공지능을 처음 하는 회사가 아니기 때문에 기존 역량에서 방법론만 바꾼다면 따라잡을 수 있다. 그걸 할 수 없다고 말하는 사람들은 아예 기반이 없고 기술공급 차단까지 되어있는 중국이 하는 걸 애플은 할 수 없다고 말하는 것인가?
2. 인공지능 세계에서는 삼성과 구글의 연합이 이길 것이다?
국내 언론사에서 아예 애플을 사기꾼으로 몰아서 방송을 했는데 여기서 말하는 것들이 가관이다(https://youtu.be/V9xmL0NF-HA?si=XqucPqQxbUUWwjDM). AI시대의 덕목이 개방성이라는 근거 없는 전제를 내세우면서 애플의 생태계를 최대 취약점으로 봤다. 지금처럼 지지부진하느니 삼성처럼 여기저기 좋은 AI를 갖다 쓰는 게 낫지 않냐는 것이다.
우선 AI시대의 덕목이 개방성이라는 것부터가 근거가 없다. 이것은 애플의 단점을 얘기할 때 항상 언급돼오던 것인데 여기에는 사람들의 고정관념이 숨어있다. 개방이라는 단어가 주는 좋은 어감과 의미가 폐쇄라는 부정적 단어와 대비되면서 무조건 좋은 것으로 비치고 있는 것이다. 그런데 실제 공학적인 현실은 그렇지가 않다.
그 옛날 애플이 시리 발표 때부터 지금까지 일관된 흐름으로 추구하는 것은 AI에이전트이다. AI에이전트는 구글의 AI어시스턴트처럼 사실상 검색대행 수준이 아니라 진짜 비서가 생기는 것이다. 핸드폰에 있는 모든 정보와 기능을 이용해 내가 시키는 대로 할 수 있는 기능이다.
“시리야. 날씨 좀 알려줘.”가 아니라 “시리야 내일 날씨 봐서 비 오면 내일 아침 9시 알람에 우산 챙기기 넣어줘.”, “어제 부장님한테 받은 메일에 대해 바로 처리하겠다고 답해줘.”, “내 딸 생일에 찍은 사진을 모아서 뮤직 비디오 만들어줘.” 이런 것을 할 수 있는 것이다.
그런데 이걸 하려면 모든 앱을 다 알고 실행할 수 있어야 하고 그 앱 내부의 기능들까지 선택해서 실행할 수 있어야 한다. 게다가 부장님이 누군지 내 딸 생일이 언제인지 다 알아야 한다. 자, 인공지능이 있다고 쳐도 이걸 어떻게 할 것인가? 인공지능이면 내 딸 생일을 자동으로 알게 되는 건 아니지 않은가? 애초에 내 딸이 누군지 어떻게 알까?
이제 조금 감이 오는가? 이런 모든 일을 하려면 통합적인 운영과 관리가 전제되어야 한다. 즉 OS부터 데이터관리, 각 앱까지 모두 통제할 수 있어야 하고 개별 앱들은 그걸 할 수 있게 미리 개발되어있어야 하는 것이다. 이걸 개별 앱들에게 다 강제할 수 없는 일이고 앱은 원래 방식대로 개발하는데 자동으로 지원되어야 한다. 결국 이런 모든 전제를 만족시키려면 OS가 있어야 하고 OS가 개인데이터, 앱과 연동까지 모두 책임져 줘야 한다. 이것은 여기저기 다른 회사가 개발해서 될 문제가 아니다. 한 회사가 정교하게 하나의 철학으로 가다듬어야 하는 작업이다.
여기에 하드웨어문제도 무시할 수 없는데 어떤 것은 휴대폰 내에서 처리하고 어떤 것은 서버로 보낼지 누가 결정할 것인가? 개별 앱들과 인공지능의 관계는 어떻게 설정할 것인가? 누가 결정권을 쥘 것이고 데이터의 소유권은 어디에 있는가? 서버로 보낼 때 어떤 형태로 보낼 것이며 그 서버는 어떤 방식으로 얼마만큼의 성능으로 대답해 줄 것인가? 문제가 한두 가지가 아니다. 이걸 기술도 철학도 이해관계도 다른 연합으로 해결하겠다고?
칩은 또 어떤가? 애플이 원하는 성능에 원하는 기능을 보장하는 서버와 칩은 어떻게 제공할 것인가? 이걸 아마존이나 마이크로소프트에 맡겨서 될 일인가? 데이터센터만 있다고 될 일이 아니다. 거기 칩들과 서버들은 다 남의 회사가 개발한 건데 그걸 믿고 인공지능의 핵심적인 과정을 맡긴다면 인공지능의 성능과 통제력에서 상당한 누수가 생길 수밖에 없다. 애플은 모델을 자체 개발하고 서버칩까지 개발 중이다. 자기 모델에 맞는 최적의 칩으로 돌리겠다는 것이다. 자기가 원하는 기능은 칩에 다 넣을 수 있다. 퀄컴이나 인텔 칩으로 하는 다른 회사가 이걸 할 수 있을까? 원천적으로 불가능한 것이다. 이 차이는 나중에 가서는 큰 차이로 나타날 것이다. OS, 칩, 모델. 여기에만 3가지 국밥이 섞였다. 따로는 맛있지만 섞으면 어떤 맛이 날까?
3. 개인정보문제.
이번 사안에서 이해가 안 되는 게 애플이 개인정보를 병적으로 철저히 다루는 것을 오히려 단점으로 지적하고 있다는 것이다. 개인정보를 왜 그렇게 중요하게 다루냐. 유연하게 적용해서 AI부터 빨리 도입하는 게 먼저 아니냐는 전형적인 개발도상국적 성능/출시 만능주의다.
지금까지는 AI에서 개인정보 문제가 불거지지 않았지만 앞에서 얘기한 대로 AI에이전트 시대가 된다면 사실상 모든 개인정보를 AI에이전트가 쥐고 있게 된다. 정치권에서는 가장 겁나는 것은 검찰이 아니라 운전기사라는 말이 있다. 그만큼 내밀한 정보를 관리하는 게 치명적이라는 것이다. 지금 AI에이전트 태동기라서 너도 나도 기술개발에 뛰어들고 있지만 개인정보라는 근본적은 문제에 대해 생각하는 사람이 없다. 과연 그래도 되는 것인가?
안 그래도 보안이 취약한 안드로이드 진영에서 이것마저 이렇게 얼렁뚱땅 AI열풍 속에 숨기고 넘어간다면 어떻게 될까? 여러분들이 AI지우개로 사진을 지우고 다른 작업을 할 때마다 서버로 데이터가 넘어가는데 여기에 대해 머리 터질 정도의 정밀한 고민이 없다? 심지어 그 서버가 휴대폰 회사의 서버도 아니고 제3, 제4의 회사라면?
이제 애플이 정상인가 다른 회사들이 정상인가 감이 오는가? AI가 아무리 중요해도 개인정보를 빼놓고 얘기할 순 없다. 이건 보통문제가 아니다. 개인정보 문제는 AI에이전트 시대에 최대 화두가 될 것이다. 만약 AI에이전트가 바이러스 때문에 혹은 오류로 인해 내 정보를 흘리고 다닌다면 어떻게 할 것인가? 흘리는 정도가 아니고 아예 뿌려버린다면? 이거 감당할 수 있겠나?
애플은 과하다 싶을 정도 보안에 치중해 왔고 이건 반대진영에서 조차 인정할 만큼 병적이다. 보안 전용 프로세서가 탑재되어 있고 향후에 애플이 자체개발한 서버와 연동하여 처리할 예정이고 기술적으로 진행 중이다. 그런데 이걸 하려면 OS부터 앱, 서버, 개발언어, 칩까지 다 통제해야 하는데 이걸 폐쇄형이 아닌 개방형으로 어떻게 하겠는가?
SKT의 엉터리 보안관리가 문제가 되고 있는데 이런 사건이 AI에이전트에서 한건만 터진다고 생각해 보라. AI에이전트 시대에 핵폭탄이 될 것이다. 이렇게 나한테도 보이는 것들이 잘난 유투버, 언론 기자들에겐 왜 보이지 않을까?
보이지 않는 것인지 조회수를 올리기 위해 안 보이는 척하는 것인지 알 수 없지만 분명한 것은 지금은 방향성이 중요하지 기술 자체가 중요한 게 아니다. 보스턴다이내믹스는 유압식 로봇으로 그렇게 광고를 하고 자금을 유치하더니 다 접고 전동식 로봇으로 갓난아기부터 새로 출발했다. 한마디로 “이 산이 아닌가 보다” 한 것이다. 그래도 언론에서는 찬양이 쏟아진다. 아니 처음부터 전동식으로 한 회사가 있고 하다 하다 포기하고 전동식으로 바꾼 한 회사가 있으면 당연히 전자를 칭찬해야 하는 것 아닌가?
자율주행에서 카메라냐 라이다 센서냐 논쟁이 많았고 카메라만 가지고 안된다고 그렇게 욕을 하더니 이제는 카메라 비전센서로 점점 모아지고 있는 추세이다. 지금까지 헛짓한 것이다. 시장 초창기엔 방향이 중요하다. 그래야 더 멀리 나아갈 수 있고 최후의 승자가 될 가능성이 높다. 이런 논쟁들은 제처 두고 오로지 AI만 외치는 작금의 현실에서 한탄의 글을 써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