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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 미식 장인라면이 실패한 이유

by 키르히아이스

오징어 게임 1탄이 한창 상종가를 칠 때 주연인 이정재가 모델로 나온 라면이 있었으니 그것이 바로 오늘 얘기할 하림그룹의 더 미식 장인라면(이하 장인라면)이다. 제품보다 먼저 나온 광고에 사람들은 궁금증을 느꼈고 4개 묶음 8천 원이 넘는 가격대에 놀라며 “도대체 얼마나 맛있길래?” 하는 기대감도 커졌다.


그러나 막상 시장에 제품이 나오자 반응은 실망으로 바뀌었다. 높은 가격에 비해 만족도는 낮아서 시장에 반향을 일으키지 못했고 이제는 수출이나 다른 길을 찾아야 할 처지에 놓였다. 더 미식 오징어 라면이 출시되었다는데 먹어보니 그게 그거였다. 최근에는 실패를 인정하는 건지 별도의 5천 원대 가성비 라면을 출시하기도 했다.


그동안 대기업 경영을 분석했는데 그것과는 별개로 제품 진단 코너를 마련했다. 하림의 장인 라면이 실패한 이유에 대해 알아보자. 바로 본론으로 들어간다.


이 라면이 실패한 이유를 3가지 기준으로 분석해 보겠다. 1. 가격. 2. 맛. 3. 마케팅

장인라면 얼큰한 맛 기준으로 분석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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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가격.

이 라면의 가격은 4개 묶음이 8800원이다. 개당 2200 원인셈. 신라면 5개 묶음이 4500원대, 삼양라면 5개 묶음이 3300원인 것에 비하면 거의 2배가 넘는 가격이다. 그럼 다른 프리미엄 라면은 어떤가. 프리미엄 라면의 시초라고 볼 수 있는 신라면 블랙이 4개 묶음에 6160원이다. 오뚜기에서 라면비책이라는 프리미엄 라면이 나온 적이 있는데(현재 단종) 이게 4봉 묶음에 7280원이었다. 가격에서 보듯이 장인라면은 비싸도 너무 비싸다. 대중적이면서도 약간 가격이 있는 쪽이 4~5천 원대인데 거기서 천 원 더 비싼 6천 원대보다는 2천 원이 비싸고 식품업계의 마이더스라는 오뚜기 조차 접은 가격대가 7천 원인데 그것보다도 천 원이나 더 비싸다.


하림은 라면시장에 신규 진출하는 회사이다. 그런데 뭘 믿고 이렇게 미친 가격을 내건 걸까. 그것도 서민음식인 라면에 말이다. 8800원이면 실제 짬뽕을 사 먹을 수 있는 가격이다. 물론 1개만 하면 2200원이지만 1100원 보태면 삼양라면 5개 묶음을 살 수 있다. 처음에는 미치지 않고서야 저 가격에 내놓는 거면 뭔가 믿는 구석이 있겠지 했다. 그런데 제품을 접해본 결과 이건 그냥 무지의 소산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었다. 라면에 대해 문외한이라는 자기 고백을 가격으로 한 것이다.


얼마 전에 마트에 가니 안 팔리는 건지 할인해서 6900원에 팔고 있었는데 오랜만이라 사서 먹어봤지만 이 가격도 아까웠다. 전혀 만족감이라고는 주지 않았기 때문이다. 가격을 정하는 기준이 뭐였는지 궁금하다. 나름대로 SWOT분석도 하고 좋은 인재들이 고민도 했을 텐데 어떻게 이런 터무니없는 가격이 나왔는지 궁금하다. 라면이라는 게 간편하게 먹는 인스턴트식품이고 어차피 맛을 흉내 낸 것뿐인데 실제 음식보다 더 비싸면 되겠는가? 짜장라면이 짜장면 보다 비싸면 누가 먹겠는가.


이런 경우 대개는 오너의 집착이 만들어낸 탑다운 방식의 제품일 가능성이 높다. 나도 경험이 있는데 상품기획팀에서 치밀하게 아이디어 회의를 통해 만들어진 제품이 아니라 위에서 내려온 제품은 아무도 중간에 터치를 못한다. 만드는 사람들은 다 안된다고 생각하지만 위에서만 모른다. 아마도 가격까지 위에서 정해준게 아닐까.

그러지 않고서야 상식이 있는 사람이라면 이런 가격을 낼 수가 없다. 라면의 명가 농심 정도라면 그동안의 노하우와 자신감으로 더 고급 시장을 뚫어볼 수 있다. 그런데 라면을 처음 하면서 뭣도 없이 가격만 프리미엄으로 한다?


물론 프리미엄급부터 시작하는 사례도 있다. 테슬라 같은 경우 최고급 세그먼트인 모델 S부터 시작해서 점차 대중적인 차를 내놓았다. 벤츠도 그런 식이고. 그런데 통상의 경우 이런 승부수는 잘 통하지 않는다. 왜냐하면 소비자가 바보가 아닌데 뭘 믿고 높은 가격을 지불하겠는가. 그 가격을 초과하는 만족감을 줘야 성립될 수 있는 것이다.


테슬라의 경우 전기차 시장 자체가 새로 시작하는 단계여서 어차피 다 같이 시작하는 것이라 고급이든 저급이든 상관이 없었고 그 당시에는 전기차를 저가로 만들 수 없었기 때문에 누가 내놓아도 고가였다. 그럴 바에는 고성능 차로 내놓아 수집가들이나 만족시키고 브랜드라도 키울 수 있게 하자는 전략이었다. 가격을 싸게 해서 성능에서 실망감을 주면 시장 자체가 사라지니까 비싸게 해서 성능이라도 만족시키자는 단순 명료한 논리였다. 벤츠야 디젤엔진을 처음 만든 곳이니까 앞서가는 기술로 커버할 수 있었다.


그런데 하림은 뭔가? 가격에 상응하는 무엇을 줄 수 있나? 라면을 알고 있기는 한 건가? 아무리 생각해 봐도 8800원의 근거를 찾을 수가 없다. 이걸 만약 일반 직원이 구상했다면 바로 해고감이다.

IMG_5729.HEIC 딱히 고급재료가 포함된 점은 발견할 수 없었다.

2. 맛.

면, 스프, 국물로 나누어서 분석해 보겠다. 우선 면은 닭육수로 반죽을 했다고 하는데 건면스타일의 단단한 면이었다. 딱딱해서 생라면으로조차 먹을 수가 없다. 건면이 칼로리도 낮고 인기가 있을 거라고 예상했지만 예상만큼 시장을 장악하지 못하는 건 일반 튀김면에 비해 맛이 없기 때문이다. 이건 내 개인적인 경험인데 생라면으로 먹을 때 맛있는 라면이 끓여 먹어도 맛있다. 면의 맛이 그만큼 중요하다. 건면은 좀 더 쫄깃할 수는 있으나 튀김면 특유의 고소함이 없고 식감 역시 쫄깃함보다는 끈적거리는 느낌이다. 저지방 우유가 건강에 좋다지만 맛없어서 외면받는 것이나 같다.


장인라면도 실제 건면인지는 모르겠으나 건면스타일 식감을 그대로 가지고 있다. 면이 노란빛을 띠는데 삶은 면을 입에 넣으면 알 수 없는 비릿한 향내가 나고 식감이 쫄깃함보다는 질긴 감이 있다. 고소함은 튀긴면보다 훨씬 떨어지고 면 양 자체가 매우 적다는 느낌이 든다. 건면이 원래 크기가 작으니까 그러려니 했는데 먹어보면 정말 배가 고픈 느낌이다.


면에 많은 힘을 준거 같은데 그 효용을 어디서도 느낄 수가 없다. 면만 먹어봐도 불합격이다. 스프는 2개가 들었는데 액상스프와 건더기 스프이다. 여기서 일단 감점이다. 8800원이면 스프가 못해도 3개는 들어갔어야 한다. 마케팅을 위해 일부러라도 그렇게 해야 한다. 그래야 가격적인 효용성을 느끼지 달랑 두 개가 들어가면 사람들은 3천 원짜리 라면이랑 뭐가 다른지 실망하게 된다. 이런 기초적인 마케팅 포인트도 못 잡는 건가? 정 못하겠으면 그냥 같은 양의 야채스프를 봉투만 두 개로 나누면 될 것 아닌가.


장인 라면의 메인 스프는 액상스프인데 사실 액상 스프로 성공한 라면이 있는가 생각해 보면 기억에 거의 없다. 언뜻 생각나는 게 진짬뽕 정도이다. 그런데 진짬뽕은 즉석식품 시장을 거의 독점하다시피 하는 오뚜기이기때문에 내공이 충분히 있다고 봐야 한다. 어쩌면 분말보다 액상스프를 더 잘 만들 지도 모른다. 그런데 오뚜기를 제외하고는 어떤 기업도 크게 성공하지 못했고 분말을 쓸 수밖에 없는 비빔면 정도가 있었다.


과학적인 이유는 모르겠지만 소비자로서 볼 때 분말스프 특유의 향과 국물에 잘 녹아드는 성질이 중요한 것 같다. 액상스프는 국물에 완전히 풀리기도 어려운데다 면에 흡수되는 측면에서도 불리한 듯하다. 액상은 액상을 만들 때 이미 향이 한번 날아가는 게 아닐까 생각도 든다. 두 번 끓인 찌개가 맛없듯이 액상도 그런 느낌이다. 향과 맛 모두 분말스프가 낫다. 액상이 더 살아있는 맛이 날 것 같지만 라면은 살아있는 맛을 원하는 게 아니고 인스턴트의 맛을 원한다. 요즘 MSG가 빠져서 가뜩이나 맛이 없는데 액상스프는 그걸 더 도드라지게 할 뿐이다. 짜파게티를 보면 아는데 액상스프로 된 짜장 라면이 나오지만 여전히 짜파게티를 따라올 라면이 없다.

IMG_5730.HEIC 닭육수로 반죽을 했다고 하는데 맛으로는 느껴지지 않았다.

야채건더기 스프는 더 가관이다. 8800원이란 가격이 무색할 정도로 내용물이 초라하다. 봉투크기만 컸지 내용물은 파와 건고기, 일부 버섯등이 있는데 푸짐하다는 생각이 전혀 들지 않는다. 실제 짬뽕을 포기하고 먹는 건데 건더기가 이래서야 되겠는가?

IMG_5732.HEIC 실망감을 준 야채스프(왼쪽)

마지막으로 국물인데 그나마 국물맛은 기존 라면 맛을 따라가는 수준이었다. 물론 앞에서 말했듯이 분말 스프 라면에 비해서는 떨어진다. 맛이 없다고 할 순 없지만 여기서도 가격을 생각해 보면 만족스럽지가 않다. 국물 어디에서도 고급스러운 맛이나 진국의 맛은 느끼기 어렵다. 이 제품 고유의 맛도 아니다. 국물맛이 괜찮다고 생각하는 라면이 삼양라면인데 원래 신라면이 더 좋았지만 갈수록 맛이 없어지고 있다. 삼양라면은 최근 회사가 잘 나가서 그런지 맛도 좋아진 느낌이다. 삼양라면은 햄이 들어가서 그런지 약간 단맛이 있는데 여기에 계란을 하나 풀면 잘 어울린다. 계란을 올리는 게 아니라 휘저어서 국물에 완전히 풀어야 된다(물론 개인취향).


진짬뽕도 국물맛이 좋았는데 현존하는 짬뽕라면 중에 진짜 짬뽕에 가장 근접한 라면이었던 것 같다. 예전에 오뚜기에서 라면비책이라는 프리미엄 라면이 나온 적이 있는데 이것도 액상을 쓰는데 내 기억에 야채스프까지 액상으로 나온 것으로 기억한다. 그런데 내가 먹어본 짬뽕라면 중에 가장 맛있었다. 왜 일찍 단종되었는지 모르겠는데 비싸긴 해도 돈이 아깝지는 않았다.


하지만 장인라면은 어중간한 국물맛에 그치고 말았다. 밥을 말기도 싫고 미련 없이 설거지 할 수 있는 라면이었다. 이게 거의 9천 원 가격이라니 지금도 믿을 수가 없다. 도대체 하림 안에는 똑바로 직언하는 사람이 한 명도 없단 말인가? 하림은 식품 라인 투자를 늘리면서 오뚜기나 동원처럼 되고 싶은 모양인데 그러기 위해서는 시너지도 있어야 하고 특히 맛과 가성비를 잡아야 한다. 즉석식품을 사는 사람들은 여유 있는 사람들이 아니다. 라면은 즉석식품보다 더한 인스턴트식품이다. 더 싸고 가성비에 민감한 제품군이다. 그런데 매장 짬뽕가격을 받는다? 여기서부터 잘못되었다.

IMG_5731.HEIC 영양성분에서 삼양라면과 비교해 보았을 때 나트륨과 지방은 적었다.

오래전에 나는 하림이 닭에서 출발한 기업이니까 당연히 닭을 재료로 한 제품은 맛있을 거라 생각했는데 그것도 별로였다. 업력이 짧으니 어쩔 수 없겠지만 이럴 바에는 차라리 중견회사 한두 곳을 인수하면서 노하우를 쌓는 것도 좋을 것이다. 지금은 너무 무대포 느낌이다. 한마디로 장점이 없다. 내 생각엔 그래도 사람들이 닭에서 만큼은 하림을 높게 쳐주니 여기서부터 뭔가 히트작을 내면 좋을 것 같다.


얼마 전에 멕시칸 냉동치킨을 먹어보니 그래도 냉동치킨 중에는 가장 맛있었다. 솔직히 냉동치킨들 최대단점이 특유의 닭냄새와 얇은 튀김옷, 통살이 아닌 다짐육, 사라진 육즙이었는데 약간 닭냄새가 나는 것을 제외하곤 이 단점을 다 잡았다. 특히 냉동치킨을 먹으면서 제대로 육즙을 느낀 것은 처음이었다. 멕시칸 치킨이 하림의 계열사인지 모르는 사람들도 많을 텐데 오히려 치킨계열사가 하나밖에 없는 게 더 놀랍다. 최소한 3대 치킨 브랜드 중 하나는 있어야 하는데 그게 아닌 걸 봐서는 치킨 사업에 관심이 있는지 의구심이 든다.


하림은 라면 실패를 계기로 철저한 사업구조 재편을 해야 한다. 우선 닭 관련 가공 식품에서 성과를 내고 다른 분야를 노려야 한다. 브랜드도 없는데 가성비도 없으니 실패는 당연한 것이다. 오뚜기는 카레, 케첩, 마요네즈 등에서 독점적 인기를 등에 없고 다른 식품으로 뛰어들었다. 동원도 노하우 없는 시장에 들어와서 초반에 안 좋았지만 참치가 워낙 확고한 기반이다 보니 가공식품에 계속 투자할 수 있었다.


지금 하림과 유사한 기업이 샘표인데 간장에서 독보적이지만 가공식품 쪽에서 큰 실적이 없다. 최근에 나온 즉석식품류를 먹어보니 맛에서는 어느 정도 합격점을 줄만했다. 샘표는 차(Tea)도 만드는데 식품회사들은 다들 오뚜기나 동원처럼 되고 싶은 모양이다.


새로운 사업영역에 들어갈 때는 뚝심도 좋지만 치밀한 분석이 뒤따라야 한다. 하림의 도전이 어디까지 갈지 지켜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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