첫 연애(이자 마지막 연애) 시절 남자친구는 종종 내가 사는 동네까지 데려다주었다. 대부분의 커플이 여자친구 집 앞에서 애틋하게 헤어지는 것과 다르게 우리는 지하철역이나 버스정류장에서 서둘러 헤어졌다. 데이트의 즐거움을 만끽하는 모습을 언니나 동생에게 보이고 싶지 않아서. 처음 생긴 남자친구를 대할 때의 내 모습은 지금껏 그들이 본 적도 들은 적도 없는 것일 테니 얼마나 가소롭겠는가. 냉소의 빌미를 제공하고 싶지 않았다.
고향을 떠난 세 자매가 한집에 살면 서로 의지 되고 얼마나 좋을까? 모르는 소리다. 고향을 떠난 세 자매가 한 집에 살면, 셋 중 하나는 제정신이 아닐 확률 100퍼센트. 어쩌면 셋 다 제정신 아닐지도. 계획형인 나는 즉흥형 둘 사이에서 본의 아니게 ‘입바른 소리’를 담당하게 됐고, 싸우지 않고는 하루가 지나가지 않는다는 것을 깨달았다. 즉흥형들의 입장에서 보기에 계획형인 나는 불편하지 않은 것이 하나도 없는 프로불편러 그 자체였다.
남자친구와 만나는 횟수가 늘면서 서로에 대한 관심의 영역도 점점 넓어졌다. 특히나 그는 나를 데려다줄 때마다 같이 사는 자매들을 궁금해했다. 언제 한번 소개해 달라는 말을 여러 번 했는데, 번번이 거절했다. 당시 우리 집에는 형제자매 사이에 응당 있어야 할 보통의 정서, 즉 우애가 없었다. 나도 언니를 언니로 대하지 않고, 동생도 나를 언니로 대하지 않았다. 그저 월세 부담을 덜기 위해 함께 사는 하우스메이트들을 가족으로 소개하기는 부끄러웠던 것이다.
그러던 어느 날, 남자친구는 늘 헤어지던 곳에서 돌아서 가지 않고 물었다.
“언니랑 동생을 소개해주지 않는 특별한 이유가 있어요?”
평소와는 결이 조금 달랐던 묵직한 질문에 머릿속 제어판이 갈피를 못 잡고 우왕좌왕했다. 더이상 거절하는 것도 예의는 아닌 것 같아 내 뜻을 확실히 전하고 싶으면서도, 어떻게 말해야 불화한 집구석이 덜 부끄러울지 잔머리 굴리는 소리가 요란했다.
그럴 때 도지는 나의 고질병이 있다. 대답하기 곤란할 때 에두르고 에두르다 무슨 말을 하고 싶은 건지 말의 갈 길을 잃게 되는 병. 설상가상, 그 와중에 유식한 사람으로 보이고 싶은 허영심까지 발동해 꼭 문자文字를 쓰고 싶어진다. 게다가 앞에 있는 사람은 내가 아는 동년배 중에 가장 유식한 사람 아닌가. 제어판에 수많은 명령어가 쓰였다 지워졌다를 반복했다. 거짓말 없이 진실을 가리고 싶은 욕망과 지적 허영심이 고르고 고른 단어들이 입에서 튀어나왔다.
“이해관계가 상충해서요.”
“네? 이해관계? 음…… 언니랑 동생이랑 금전적으로 얽혀 있어요?”
“네? 금전적으로요?”
말을 하다 보면 첫음절을 입 밖으로 꺼낼 때는 몰랐지만 마지막 음절을 내뱉으면서 뭔가를 깨우치는 순간들이 있다. 나는 물음표를 던지면서 알았다. 단어 선택에 실패했음을. 어서 빨리 쥐구멍을 찾아야 할 것임을.
서로 다른 성격을 이해하지 못하고 자주 싸워서 사이가 안 좋다,고 하면 간단한데, 그러면 상대도 더이상 같은 질문을 하지 않았을 텐데. 자매간에 사이가 나쁜 게 곧 나에 대한 부정적인 평가로 이어질까 봐 두려운 나머지 무리수를 둔 것이다.
거짓말은 하기 싫고, 그렇다고 있는 그대로 말하기도 싫을 때, 아직은 체화가 안 돼 설익은 채로 뇌 어딘가를 배회하는 말들이 입 밖으로 나오는 고질병은 안타깝게도 아직 완치되지 않았다. 후, 인정하고 나니 속이 다 시원하다.
가끔 뉴스를 보다가 ‘이해관계’라는 자막이 뜨면 남편은 그 시절 남자친구의 얼굴이 되어 나를 쳐다보며 웃는다. 나는 웃지 않고 곱씹는다.
‘이해관계 상충’은 방위비 분담금 협상 때나 나오는 말이다.
‘이해관계 상충’은 국가 간 무역 분쟁을 논할 때나 나오는 말이다.
아 쪽팔려.
추신: 가만있자, 월세 문제로도 자주 싸웠으니 이해관계가 상충한다는 말도 영 틀린 건 아닌 것 같은데?
(아마도 완치는 힘들겠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