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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왕밤이 Nov 29. 2020

그 친구의 결혼식을 안 가기로 했다

노력이 결여된 관계는 언젠가 지친다

 대학교 같은 과 동기로 신입생 때부터 마음이 맞아 친하게 지냈던 10년 친구의 결혼식을 안 가기로 했다. 괜찮은 줄 알았던 관계에 종지부를 찍는 순간이었다. 만나면 나를 특별히 힘들게 하는 점도, 기분 나쁘게 하는 점도 없었고 함께 있으면 즐거운 친구였다. 다만 학교를 다닐 땐 방학이 되면 연락이 안 돼서 개학할 때쯤 연락이 되고 만날 수 있었는데, 나 또한 학기를 보내고 나면 다른 사람과의 관계를 휴식해야 에너지를 얻는 내향적 성향이라 연락을 잘하지 않았기 때문에 이 친구의 행동이 어느 정도 이해됐었다.


동기였던 다른 두 친구와 함께 우리는 넷이서 어울려 다녔다. 1, 2학년 때는 어려운 선배들이 있던 학과 행사나 술자리에 함께 다니며 어색한 분위기에서 서로 의지할 수 있었고 돈이 없던 학생 시절 고기가 먹고 싶은 날이면 1인분에 2900원짜리 싸구려 고기도 함께 먹어주던 친구였다. 수업이 끝난 후 집에 가기 아쉬운 날에는 학교 앞에 있던 만나 곱창에서 같이 곱창을 먹었고, 8시 이전에 칵테일이 반값이던 바에서 잘 모르는 칵테일을 마셔 보며 어떤 칵테일이 맛있는지 이야기하며 시간을 보내기도 했다. 학교에는 큰 노천이 있었는데 날이 좋으면 노천에서 막차를 타기 전까지 막걸리를 마시기도 했고 여름에는 버스를 타고 서해안의 한 해수욕장으로 여행을 가며 20대 초반, 모든 것이 서툴렀던 삶에서 즐거움을 나누던 친구였다.


  대학을 다닐 때는 같이 듣는 수업이 많았고 수업이 다르더라도 공강 시간에 맞으면 함께 식사를 하거나 도서관에서 공부하며 자연스럽게 어울릴 수 있었다. 그러나 대학을 졸업한 후 각자 일을 하기 시작하면서 간간히 묻는 안부도, 만나자는 약속도 내가 먼저 하다 보니 약간의 서운함이 생기기 시작했다. 대학생 때만큼 시간과 에너지가 충분히 없다 보니 어느 정도의 시간과 에너지에 선택과 집중이 필요할 수밖에 없었는데, 그 친구가 자신의 삶과 에너지를 나에게 투입하고 싶지 않아 보였고 그 친구에게 내가 관계를 유지할 가치가 있는 사람인지 의문이 들기 시작했다. 그러나 나는 이 서운함을 친구라는 관계로 덮어버리고 그 친구의 성향이라 생각하며 이해하고 받아들이려 노력했다.


유일하게 초대한다는데, 결혼식은 가야겠다고 생각했다


 이후 친구는 결혼식이 있다는 소식을 알리기 8~9개월 전부터 안부인사가 잦아졌고 먼저 만나자고 하며 남자와의 미래에 대한 이야기를 건네기도 했다. 그런 생각을 가지고 싶지 않았지만, 목적이 있는 '연락'을 하고 있는 것 같다는 생각을 멈출 순 없었다. 함께 했던 두 명의 친구들은 이미 졸업 즈음부터 이 친구와 점점 멀어졌고 결혼식이 확정되어 갈 때, 대학 지인 중에서 유일하게 나만 초대한다고 했었다. 그래서 적어도 이 친구에게 나는 대학생활에서 유일한 친구로 인정되었다는 사실에 약간의 책임감을 느끼며 결혼식에 참석해야겠다고 마음먹었다.


어느 날 모바일 청첩장을 SNS로 보내더니 1시간이 지나도 아무 말이 없었다.


 그러나 청첩장이 나왔을 시기가 되어도 만나자는 연락이 없더니 어느 날 SNS로 인사말도 없이 모바일 청첩장만 보내져 있었다. 청첩장을 보내고 한 시간이 지나도 말이 없는 친구를 그냥 둘 수 없어 이렇게 청첩장만 보내는 거냐고 한 소리를 했지만 이미 이 친구의 행동에서 나는 관계의 끝을 느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유일하게 초대했다는 사실에 불편한 마음이 들어 결혼식 당일까지 참석 여부를 두고 고민했지만 온전히 축복할 마음이 생기지 않는 결혼식을 가는 것은 맞지 않다는 게 결론이었다. 결혼식 후에도 내심 무슨 일이 있어서 못 온 것이냐는 말을 먼저 해주길 바라기도 했다. 그랬다면 그동안 느꼈던 나의 서운한 감정들을 솔직하게 털어놓으며 관계에 대해 얘기할 수 있었겠지만 이후 이 친구에게 4년이 넘은 지금까지도 연락이 오지 않았다. 


 만나면 너무 잘 맞았고 재미있는 친구여서 관계를 놓기 힘들었다. 많은 사람과의 관계보다 중요한 사람 몇몇의 관계가 소중한 나로서 내 인생에서 가장 중요한 시기인 20대의 10년을 함께 했던 '시간'과 '사람'을 버린다는 것이 너무 아쉬웠다. 그러나 관계는 일방향적인 것이 아니라 상호작용이다. 서로를 알아가는 과정에 있어서 서운함, 고마움 등 서로가 느끼는 감정과 원하는 것에 대해 이야기하고 같은 경험을 쌓아가며 추억을 만들어 가려는 노력이 필요했지만 이 친구와는 이런 과정을 만들지 못했다. 나 또한 스스로 친구를 이해하려고만 하는 노력으로 쌓인 관계이기 때문에 스스로 무너진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과거만 존재하는 관계, 노력이 결여된 관계는 결국 유지되지 않는다. 남녀관계를 떠나서 사람과 사람 사이의 관계가 지속되기 위해선 당신의 존재가 나에게 중요하다고 여겨질 수 있도록 해야 한다. 친구는 나의 특별한 행사를 장식하는 존재가 아니라  과거를 추억하며 이야기할 수 있는 시간, 또 다른 과거를 만들 수 있는 경험, 미래를 위해 서로를 탐색하는 에너지를 소비해야 하는 관계가 되어야 한다. 일방적 관계가 삶에 잠시 머물 수는 있지만,함께 가는 삶을 위해선 서로가 가치 있는 소중한 사람이라고 느껴질 수 있도록 노력할 수 밖에 없다는 걸 보내고 나서야 느껴졌고, 지내고 나니까 깨달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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