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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IMSpir e Dition X Mar 16. 2024

[e] 케빈이 아니라 엄마에 대하여...®

■ 모성애는 태어나는 게 아닐 수도 있다.


https// : 모성애는 태어나는 게 아닐 수도 있다... com


자유를 갈망하며 여행 속에서 자유를 만끽하고 행복한 나날을 살아가던 에바. 어느 날 아무런 준비도 없이 뜻하지 않게 임신으로 인해 에바는 엄마라는 이름을 원치 않았지만 엄마라는 이름으로 그녀에게 자유를 앗아갔다. 그래서 케빈은 태어날 태부터 사랑받아야 할 대상이 아닌 자유를 뺏어간 대상이 돼버린 건지도 모른다


그녀도 에바라는 이름을 보다 엄마라는 이름으로 행복한 나날들을 포기하고 그녀의 방식대로 케빈을 사랑하려고 노력했다. 하지만 그녀에게 엄마라는 이름은 너무 버거운 것이었다. 남자를 사랑하는 법은 알았지만 아이는 사랑하는 법을 모르는 그녀였기에... 적어도 그녀에게는 그랬던 것 같다


아이들은 관심이 필요하면 이유도 없이 상대방에게 상처 주는 행동으로 대신 말하는 경향이 있다. 하지만 아이들은 자신의 감정을 표현하는 방법을 모를 뿐이지 그 행동 자체를 진심으로 보면 안 된다. 안타깝게 에바는 그것을 알리가 없었다


누군가를 사랑한다는 것은 어떻게 사랑하는지를 알아야 하는 것이다. 그 대상이 아이라면 더더욱 그래야 할 것이라 생각한다. 영화가 끝나고 이런저런 생각에 잠겨있다가 문득 에바가 케빈을 병원에 데려가 의사가 아무 문제가 없다는 말을 듣고 실망하는 장면이 생각이 났다. 그때 케빈을 병원으로 데려가 검사를 받는 것이 아니라 단 한 번이라도 케빈의 알 수 없는 행동에 대하여 진심으로 왜? 이런 행동을 하는 걸까? 생각해 봤다면 조금은 달라지지 않았을까? 하는 안타까움이 사무치게 들었다 


그렇다고 에바에게 모든 잘못이 있다고 말하는 것은 아니다. 에바는 준비되지 않은 엄마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에바는 피해자들 가족으로부터 온갖 험한 꼴들을 당하면서도 아들의 책임까지 다 감수하며 케빈을 이해하려고 노력했다. 케빈 또한 어머니를 사랑하려고 했다. 다만, 서로의 방식을 이해할 수 없었다는 게 안타까울 뿐이다


마지막 장면에서 처음으로 에바가 왜 그럴 수밖에 없었는지에 대하여 케빈에게 묻는다. 시간은 충분했다고 너한테서 직접 듣고 싶다고 "왜 그랬었냐고" 케빈은 에바가 절대로 이해할 수 없는 말을 하지만 에바는 엄마라는 이름으로 아들의 모든 것을 이해하고 감싸 안아 주었다. 그로 인해 에바는 뒤늦게 아들을 사랑하는 법을 알았고, 케빈은 엄마가 자신을 사랑했었다는 걸 안타깝지만 뒤늦게 느꼈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


제목은 "케빈에 대하여"지만 영화는 엄마라는 관점으로 비치는 영화이다. 

그래서 결국 끝까지 케빈의 행동에 대하여 이해할 수 없는 것인지도 모른다 


엄마라는 이름은 에바가 선택한 것이 아니었다.

케빈 또한 에바(엄마)를 선택한 것이 아니었다


케빈은 엄마를 사랑했던 것일까?

케빈은 엄마를 증오했던 것일까?

에바는 원치 않은 아들이 사랑스러웠을까?

에바는 그런 아들은 사랑만으로 키울 수 있었을까?

케빈은 사이코 패스라는 특수성을 가지고 태어났을까?

케빈은 사랑을 받지 못했다는 이유로 사이코 패스가 됐을까?


"케빈에 대하여"는 모성애는 태어나는 게 아닐 수도 있다는 걸 확인시켜 준다. 또한 엄마라는 이름으로 살아가야 할 여자라면 모성애에 대하여 단 한 번이라도 진지하게 생각해봐야 할 물음이라 말한다. 그리고 아빠라는 이름으로 살아가할 남자라면 반드시 생각해봐야 한다고 말한다. 인간은 모두 관계로 이어져 있고, 우리는 언젠가 반드시 아이들을 마주하는 상황을 마주한다. 그렇다. 결국, 우린 "케빈에 대하여 알아야 할 의무가 있다"



보라. 관람이 아니라 체험할 수 있을 것이다. 끝나면 먹먹함이 한동안 사그라들지 않아 꼼짝할 수 없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끔찍하고 참혹한 충격이 반복적으로 떠오르는 명료함은 정신적 트라우마가 아니라 현실적 인계철선이 될 것이다. 그리하여  때때로 끔찍함이 떠오르고 들뜬 비위가 가라앉을 때마다 잊히지 않는 참혹함 덕분에 절대로 잊지 말고 살아야 할 진실을 품고 살아갈 수 있을 것이라 믿는다. 


※ 총기사건을 다룬 또 다른 이야기


엘리펀트 (Elephant, 2004)  

굿 월 헌팅의 구스 반 산트 감독의 작품으로 콜롬바임 총격 사건 일상이 고스란히 담겨 있는 영화. 


러덜리스 (Rudderless, 2014) 

총기사건이 일어난 후 가해자 아버지 일상에 정처 없이 떠도는 파멸적 선율이 담겨 있는 영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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