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디스크
롬이가 갑자기 이상한 자세로 얼음처럼 멈춰서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모습을 보고 ‘풍’이 온건가 싶어 걱정을 많이 했다. 병원을 찾았을 때 의사 선생님은 근육이나 관절쪽 질환으로 통증이 생겨 몸을 자유롭게 움직이지 못하는 것이라고 했다. 생명에 지장이 없다고 하니 한시름 놓았지만 원인을 해결해야 평소처럼 생활할 수 있었다.
정형외과적 질환이라길래 관련해서 이곳저곳 찾아보니 동물 전문 한의원이 있었다. 삐뚜름한 자세로 움직이질 못하니 아무래도 침이나 뜸치료가 좋을 것 같아 데리고 갔다. 그러나 롬이에게는 한의학이 잘 맞지 않는지 호전이 없었다. 롬이의 기준에서 이유없이 온 몸이 보정대로 묶여 따끔한 침을 맞아야 하니 많이 그것도 여간 힘들어 하는 것 같았다.
한의원 치료를 그만두고 또 다른 동물병원을 추천받아 갔는데 엑스레이를 본 의사 선생님은 허리 디스크라고 했다. 일반적으로 디스크는 MRI를 찍어야 그 상태를 정확히 알 수 있지만 정도가 심할 때는 엑스레이 상으로도 확연히 알 수 있다고 들었다. 엑스레이를 보니 의사가 아닌 일반인도 어느 부위가 디스크 증상이 나타난 것인지 발견할 수 있을만큼 증세가 심했다.
결혼 전 함께 살았던 룸메이트가 디스크때문에 병원에 입원한 적이 있었다. 양 쪽 다리가 모두 저려 거동 자체가 거의 불가능하고, 가만히 누워있어도 통증이 심하여 몹시 괴로워했다.그녀도 엑스레이 상으로 바로 디스크 상태를 알 수 있을만큼 상태가 좋지 않았고, 한 때는 마약성 진통제까지 먹으며 버텼다. 직립보행하는 인간에게만 생길 수 있는 통증인 줄 알았는데 강아지도 디스크에 걸리는 구나. 그녀가 아팠던 것을 떠올리며 롬이가 비슷한 상황이라고 생각하니 아찔했다.
동물병원에서 처방 받은 약을 먹고나니 며칠 사이 금방 통증이 사라진 것인지 잘 움직였다. 치료제가 아닌 진통제였는데 두달 정도 먹이고 약은 더 이상 먹이지 않았다. 아마도 빠진 디스크가 그대로 굳으면서 신경을 누르는 등의 통증이 사라진 듯 했다. 역시 사람과 똑같다.
롬이가 어렸을 때를 생각해보면 탁자 위를 점프해서 올라갈 정도로 높은 곳을 과감하게 뛰어다니곤 했다. 시츄의 탈을 쓴 캥거루. 허리가 남아나지 않는 게 어찌보면 당연한 일이기도 하다. 이럴 줄 알았으면 못하게 할 걸... 하다가도 하루종일 따라다니면서 막을 수 있는 것도 아닌데다가 “나중에 디스크에 걸릴 수 있으니 작작 뛰어”라고 한들 녀석이 조심해줄까.
한번 그렇게 앓고난 후부터 평지를 걷고 달리는 것은 괜찮았지만, 이전처럼 높을 곳을 뛰어 올라가지는 않았다. 스스로 점프를 부담스러워하는 것 같았다. 이젠 더 이상 캥거루가 아니었다. 가장 처음 롬이가 할아버지가 되었구나 생각했던 때를 떠올리니 바로 그 날인 것 같다.
롬이
2003년생 수컷 블랙시츄. 녹내장 통증으로 인해 오른쪽 눈은 적출되었고, 왼쪽 눈도 주사시술을 받아 양쪽 눈 모두 시력이 없다. 치매를 앓고 있어 여러면에서 보호가 필요한 녀석.
늙은 강아지의 이야기를 쓰고, 그립니다.
기꺼이 즐겁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