크레이지 러브

by 임월

산곡동에 살던 이학년 때였나, 삼국지 만화책을 갖고 싶었다. 정확히는 45권짜리쯤 되는 삼국지 만화.


도서관에서 빌려다 본 그 삼국지 만화가 좋아서, 많이 보고 싶어서. 가지고 싶다고 몇 번을 졸랐더랬다. 그러던 날에 기찻길 옆에 있던 쪼그만 서점에 엄마와 같이 들어갔더랬지.


얼마였더라. 당연히 잘 기억은 안 난다. 한 이십만 원쯤 했겠지. 기차소리가 두 번 지나갈 동안 망설이던 엄마는 결국 삼국지 만화를 사지 못했다. 우리 집은 그 45권이나 되는 삼국지 만화책을 둘 공간도 돈도 없었다.


지금도 가끔 그때가 생각난다. 종류는 다르고 작가도 다른데, 어디선가 삼국지 만화를 볼 때마다 그 서점 문틈에서 엄마가 한참을 바라보던 삼국지 전집을 생각한다.


이제 삼국지를 살 돈 정도는 있다. 그런데 25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나는 만화를 사지 않았다. 돈은 있는데, 여전히 내게는 놓아둘 공간이 없어서.


그 책을 꽂을 수 있던 마음은 그때만 가능했던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