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등학교 6학년.
아직은 노는 게 제일 좋은 아이들이다. 하지만 이제 곧 중학생. 중학생이 되어 만나게 되는 이제와는 다른 사회와 학업에 대한 중압감은 생각보다 크다. 생각하는 깊이가 '어린이'의 시절과 다를 수밖에 없는데 그 간극을 체감하는 입장에서는 당혹스러울 수밖에 없다. 그것을 견디는 힘은 미리 문맥 안에 드러나지 않는 작가의 생각을 상상해 보고 알아채는 연습을 하는 것에서도 올 것이라고 믿는다.
그렇기에, 6학년부터 고전 작품들을 하나씩 들여다보는 수업을 진행한다. 수많은 고전 작품들을 읽는 것이 감추어진 작가의 생각을 알아차리려는 독자의 노력을 필요로 하기 때문이다.
말로만 들어봤던 <논어>. 그 논어를 그대로 만나기보다 공자와 제자들의 이야기를 '자로'의 입장에서 써 내려간 책 <자로, 공자의 제자가 되다>를 통해 '논어'를 만났다. 자로의 불도저 같은 성격이 드러나는 이야기들이 있으니 군자, 성인을 마주하기에 부담스러웠을 아이들은 부담 없이 한 권은 금방 읽어 나가게 한다. 그러면서도 논어에서 몇 가지를 가져와 직접 언급하고, 속 뜻을 풀어서 설명해 주는 책이다.
아이들에게는 <논어>라는 책도 어색한 상황.
나의 서재에 꽂혀 있던 두꺼운 <논어>를 들고나왔다. (스프링은 개인적으로 제본 요청을 해 받은 것이다.) 책에는 상세하고 이해하기 쉬운 글로 적혀있는 부분을 직접 보여 주며 읽어 주었다. 한자와 뜻풀이만 적혀 있으니 신선한 충격으로 와닿았을 거라 생각한다.
<돈키호테>처럼 이 한 권의 책이 그 '고전'의 모든 것을 보여주지는 않는다.
하지만 아이들에게 적어도 <논어>라는 것이 무엇인지, 어떻게 쓰였는지를 아는 것은 '호기심'을 유발하게 할 것이다. 어른이 되어서 <논어>를 다시 볼 때 이 순간을 어렴풋이 떠 올릴 수 있을까.
'공자'라는 위대한 성인도 살아있는 내내 자신이 말한 바를 몸소 실천하려 '애쓰는' 한 사람이었다는 것을 아는 것으로도 의미가 있다. 완벽한 가르침이라는 말로 <논어>를 설명하는 대신, 적어도 우리가 어떤 마음가짐으로 살아내야 할지를 궁리하였던 사람의 모습이 <논어>에 있다고 말해주고 싶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