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기 2576년 우주 전쟁 속 나비 부인....
2023/10/12(목) 19:30
성남아트센터 오페라하우스
B구역 1열
145분(인터미션 20분)
56,000원(조예할)
초초상 임세경
테너 이범주
샤플레스 우주호
스즈키 방신제
고로 노경범
본조 아이잭 킴
신관/야마도리 안환
케이트 강인선
코리아쿱오케스트라
노이 오페라 코러스
공연 예술 전문가도 아니고 이런 것을 객관적으로 평가할 만큼 무수히 본 것도 아니라 참 조심스럽지만, 할인 가격으로 보지 않았다면 진짜 돈 아까웠겠다는 생각이 들 정도였다.
암튼!
성아센은 목까지 올라오는 등받이에 의자도 푹신해서 좋고 음향도 괜찮아서 다 좋지만, 무대와 거리가 좀 멀다는 느낌을 자주 받았어서, 이번에도 아묻따 1열을 선택했다. 성아센에서 오페라는 처음이라 자막 모니터 위치가 걱정되었는데, 역시나였다. 화면이 양 옆으로 있는 데다가 각도가 애매했던 탓에, 몸을 살짝 돌린 채로 열심히 고개를 돌리며 봐야 했다.
무대가 정말 심플했다. 무대 가운데에 회전 스테이지와 나무 한 그루, 그리고 천장에 붙어 있는 5개의 LED 화면이 전부였다. 시대 배경을 현대로 가져오는 것을 상당히 질색하는 사람인데, 현대도 아닌 무려 서기 2576년이 되어 버렸으니 최대한 마음을 비우고 보기 시작했다. 연출가 노트에서도 실험적인 시도를 했다는데, 너-무 실험적이었던 것 같다.
LED 화면을 적극 활용했는데 기억에 남는 장면 몇 개만 기록하자면,
- 결혼식 장면에서 서약서가 외계어로 화면에 뜨고 신랑/신부가 허공에 서명한 후 날리니 화면에 나타났다. 그리고 축배의 잔 뜨더니 가상의 와인이 채워졌다. (생각하면 또 웃기다. 진짜 오글거렸다.)
- 합창단의 모습이 영상으로만 나왔는데, 살짝 기괴해 보였다. 근데 실제로 무대 뒤에서 노래하시는 거랑 영상의 입모양이 심각하게 안 맞아서 몰입 바사삭이었다.
- 초초상이 가지고 있는 생명의 열매(?) 5개가 뜨는데, 이것도 해리포터의 온갖 맛이 나는 강낭콩 젤리처럼 생겨서 도대체 왜 이렇게 만들었는지 고개가 절로 숙여졌다.
- 이게 끝판왕인데, 초초와 핑커톤의 아이.. 신비하고 소중한 그 존재가 AI로 LED화면에 등장한다. 갑분스노우... 노란 머리에 파란 눈.. 진심 충격이었다.
장소도 원래 알고 있던 일본과 미국이 아니라 어디 무슨 엠포리오(미국)과 파필리오(일본)으로 가버렸다...
원래 가사는 못 바꾸니, 노래는 계속 "아메리카~~" 이렇게 하시는데 자막은 계속 '엠포리오'로 뜨고..ㅋㅋㅋ 순간 자막이 잘못 출력됐나 싶을 정도였다. 도대체 왜 이렇게까지 한 것인지. 물론 이 작품이 담고 있는 제국주의나 계급 차이, 동서양 인식 같은 건 지금 시선으로 볼 때 불편할 수 있지만, 시대 배경에서 오는 감동이나 안타까운 역사는 모조리 사라져 버렸다.
또 하나 안타까웠던 점은 초초의 의상이었다.
메인 무대는 파필리오 행성의 성, 공주의 공간 하나에서 이루어져요. 무대에 계단이 배치되는데, 헤어 장식 등으로 초초의 키가 꽤나 커질 예정이라 안전한 동선을 위해 무용수 한 명이 그녀의 곁을 벗처럼 지키며 안내하게 됩니다.
연출가의 인터뷰 중 발췌한 것인데, 그의 말대로 초초의 키는 커졌다. 굽이 최소 12센티로 보일 정도로 높은 통굽의 구두를 신었다. 근데 옷도 길어서, 무대 계단을 올라갔다 내려갔다 하는데 한 번은 넘어질 뻔했다. 보는 내내 불안했다. 초초상의 시중을 들던 하녀 스즈키도 똑같은 궆높은 신을 신고 있었는데, 역시나 불안불안.. 연출 인터뷰에 있던 '초초를 벗처럼 지키는 무용수'는 없었다.
커튼콜 때도 이 넓은 극장에 관객이 생각보다 적어서 박수 소리가 끊어질 듯 안 끊어질 듯.. 조마조마했다. 혹시 박수가 끊어지면 출연자들 실망하실까 봐 더 열심히 쳤다.
불호 포인트가 너무 많았지만, 그래도 오랜만에 본 오페라라 좋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