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통이 아닌 배출 속에서

내 숨소리를 먼저 듣기로 했다

by INA

어떤 꿈은 단순한 무의식의 파편이 아니라, 우리가 언어로 정리하지 못한 현실의 다른 이름이다.

공용 화장실의 막힌 배수구, 피 묻은 휴지들, 넘칠 듯 고여 있던 물.

그 속에 손을 집어넣어야 했던 꿈은 단지 불쾌한 이미지가 아니었다.

그것은 내가 오랫동안 해온 일의 은유였다.

누군가의 막힌 감정을, 정리되지 않은 말들을, 흘러가지 못하고 고인 상처들을 치우는 일.

그 일을 나는 '사랑'이라 불렀고, '이해'라 여겼으며, '관계'라 생각했다.

하지만 잠에서 깨어난 후에도 손끝에 남은 저림은 말한다.

이건 정상적인 돌봄이 아니라고.

이건 내가 감당해야 할 몫이 아니라고.


누군가의 배수구를 청소하는 동안, 정작 내 마음의 물길은 어디로 흐르고 있었던가.

그녀는 침묵을 견디지 못한다.

차 안에서도, 밥상에서도, 마트의 계산대 앞에서도 끊임없이 말을 쏟아낸다.

처음엔 그저 수다스러운 성격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며 알게 되었다.

그것은 단순한 성격이 아니라, 존재를 지탱하기 위한 생존의 습관이었다.

말을 멈추는 순간 자신이 사라질까 두려운 사람의 필사적인 몸부림이었다.


"저 길로 가야 하는 거 아니야?"

역주행 길을 가리키며 했던 그 말은 단순한 실수가 아니었다.

그것은 방향을 잃은 채 떠도는 말의 본질이었다.

어디로 향하는지도 모른 채, 그저 쏟아내기만 하는 언어.

그 안에는 외로움이, 인정받지 못한 세월의 울분이, 누구에게도 안전하게 흘려보내지 못한 감정의 잔여물이 담겨 있었다.


나는 그제야 이해했다.

그녀의 말은 소통이 아니라 배출이었다.

대화가 아니라 독백이었다. 그리고 나는 그 독백의 무대 위에서, 언제나 젖은 발로 서 있었다.


말의 범람은 단순히 한 사람의 습관으로 끝나지 않는다. 그것은 물이 낮은 곳으로 흐르듯, 세대를 타고 아래로 번진다. 인정받지 못한 감정은 왜곡된 언어로 흘러나오고, 그 언어는 다시 다음 세대의 감정 구조를 뒤틀어놓는다.


나는 그 물길의 중간에 서 있다.

위로부터 흘러온 탁한 물을 받아내면서도, 그것을 아래로 그대로 흘려보내서는 안 된다는 것을 안다.

누군가는 이 흐름을 멈춰야 한다.

정확히 말하면, 정화해야 한다.


그 일은 고통스럽다. 막힌 배수구에 손을 넣는 것처럼, 오래된 상처와 피 묻은 기억들을 만져야 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것을 치워야만 물이 다시 흐른다. 맑은 물은 저절로 만들어지지 않는다. 누군가 더러운 것을 걷어내야 한다.


오랫동안 나는 그녀를 바꾸려 했다.

조용히 해달라고 부탁했고, 말의 위험성을 설명했으며, 타인의 피로를 호소했다. 하지만 돌아온 것은 이해가 아니라 방어였다.

"나는 그저 말했을 뿐인데, 왜 그렇게 예민하게 받아들여?"

그 순간 나는 깨달았다.

이것은 더 이상 이해의 문제가 아니었다.

존재 방식의 근본적인 차이였다.

그녀는 말을 통해 생존하고, 나는 침묵 속에서 회복된다.

우리는 서로 다른 언어로 살아가는 사람들이다. 그리고 그 차이는 설득으로 좁혀지지 않는다.

그래서 나는 설득을 멈췄다.

그녀의 말을 내 언어로 번역하려 애쓰지 않고, 그저 그 소리가 지나가기를 허락했다.

필요할 땐 침묵으로 대답하고, 말의 리듬을 내 호흡에 맞춰 되찾았다.


감정의 배수구를 청소하는 일은 누군가를 바꾸기 위한 일이 아니다. 그건 내가 더 이상 '말의 폭풍'의 피해자도, 방관자도 되지 않기 위한 선택이다. 그녀의 말에 휩쓸리지 않고, 내 마음의 물길을 지키는 일이다.


나는 오늘도 스스로에게 묻는다.

"지금 내 말은 흘러가는 물인가, 아니면 또 다른 막힘의 시작인가."


내 마음의 물길은 아직 탁하다.

오래된 상처들이 완전히 씻겨 나가지 않았고, 때로 나도 모르게 말의 범람 속으로 빠져들 때가 있다. 하지만 나는 안다. 물은 흐르며 정화된다는 것을.

막히지 않고 흐르기만 한다면, 언젠가는 맑아진다는 것을.

그래서 나는 오늘도 배수구 앞에 선다.

손끝에 닿는 것이 불쾌하더라도, 그것을 치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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