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 둘, 남매 하나 <비나이다 비나이다, 내 아이의 정체성>
네 아이가 동성애자라면 어떨 것 같아
What would you feel if your kid is gay?
“Well, I would not welcome such case. Not that I hate they are gay. I personally think it makes them to spend too much time to think about sexual orientation and relative issues. I hope my kids to expore themselves to more practical ideas in their life.”
글쎄요, 그렇게 환영할 수는 없을 것 같아요. 제 애들이 성소수자라는 게 너무 싫다는 게 아니에요. 동성애자라고 깨닫는 순간부터 성정체성과 그에 관련된 이야기에 대해서 생각하는데 너무 많은 시간 쏟는다고 생각해요. 삶에서 그것보다 좀 더 실질적인 문제들을 생각했으면 좋겠어요. “
“very interesting.”
“재밌네요”
피아노 선생님은 짧게 대답하셨다. 레슨을 받은 지 삼 년쯤 되던 가을이었다. 대학생인 첫째와 올해 열한 살이 된 막내까지 네 명의 아이를 키우고 계신 선생님께는 피아노를 배우는 일 이외에 아이 교육과 연습 방법, 진로와 학교생활, 가정 내 마찰 등에 대해 많은 질문을 하고 조언을 얻어 왔다. 초면이었다면 기분이 나빴겠지만 그간의 시간 덕분에 선생님의 질문이 의미 있게 느껴졌다. 아이의 정체성에 대한 내 생각을 처음으로 조리 있게 말해본 날이기도 했다. 미국사람들은 나이를 가늠하기가 힘들지만 한국분인 선생님의 나이는 가늠할 수 있었다. 선생님은 혼자 한국을 떠나왔다고 했다. 선생님은 미국사람들처럼 매해 크리스마스에 가족사진이 동봉된 카드를 보내셨다. 카드에는 ’Merry Christmas’라고 인쇄되어 있다. 아이들의 웃는 얼굴은 매해 조금씩 변하고 덩치도 달라졌지만 선생님과 남편분의 얼굴은 거의 변화가 없는 편이었다. 선생님은 한국어 억양이 남아있음에도 미국 사람들처럼 영어만 쓰셨다. 내가 한국어를 쓰지 않기로 했던 때를 돌이켜 봤다. 그때의 영어라는 언어는 일종의 선언 같은 것이다. 이곳에 영원히 정착하겠다는 선언. 다시는 뒤도 돌아보지 않겠다는 선언. 한국어 억양이 느껴졌지만 가뭄에 콩 나듯 한국어로 짧은 인사만 전하는 선생님은 언젠가 반짝반짝 윤이 나는 얼굴로 미국행 비행기에 큰 짐을 실었을 것이다. 선생님의 어머니는 슬퍼하셨을까.
엄마 둘, 남매 하나
우리 애들도 십몇 년 후쯤 얼굴에 반짝반짝 윤이 나는 시기를 맞이할 것이다. 더 이상 내가 챙겨주지 않는 시험을 보고, 비행기에 올라타 먼 곳에 가고, 친구들을 만나서 이곳저곳을 기웃거리느라 내가 잘 보이지도 않을 것이다. 또래 애들이 많은 곳에서 아르바이트를 할지도 모른다. 샌드위치에서 파프리카를 걷어내고 반으로 자르지는 않아 어떤 한국 아줌마를 열받게 할지도 모른다. 반짝반짝 윤기 있는 얼굴로. 우리 애들이 성소수자라면 나는 슬플까. 기쁠까. 아무렇지 않을까. 주변의 동성커플 가족을 곰곰이 떠올려본다. 고민만큼 드라마도 많던 20대를 지나고 결혼을 하고 아이를 가진 사람들은 서로가 놀랍도록 닮은 얼굴을 하고 있다. 일반가정도 상황은 비슷하다. 어떤 모습의 가정이든 이런저런 속사정으로 이혼하기도 한다. 이 중 하나가 내 아이의 미래가 될 것이다. 비슷하기도 다르기도 한 가족의 모습을 보면서 나는 슬픈가, 기쁜가, 아무렇지 않은가.
2036년은 둘째가 고등학교를 졸업하는 해이다. 오랜 시간 성소수자 친구들을 봐왔던 나는 2036년이 되기 전에 아이들의 정체성을 알아챌 것이다. 그때 나는 슬퍼할까 , 기뻐할까, 아무렇지 않을까. 이렇든 저렇든 별일 없을 거라고. 성의 없는 위로처럼 들리는 말을 중얼거린다. 성정체성과 관련해 생각이 많은 나 자신을 달갑게 받아들이기 힘들었던 어린 시절의 나를 반추해 보면서 내 아이도 그런 시간을 거치지 않았으면 하는 은근한 바람을 가졌었다. 하지만 정말로 애들이 그렇다면..
생각이 많은 인생도 나쁘지 않을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