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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인테리어브라더스 Nov 15. 2019

생각 씨앗


볕 한 줌 없는 어두운 땅 밑에 묻힌 그 손톱보다 작은 것에서 어떻게 줄기가 나오고 잎이 자라 열매를 맺는 걸까. 씨앗이 싹을 틔우는 과정을 보고 있으면 신기하다. 불가능해 보이는 이 과정이 가능한 이유는 싹을 틔우는 과정에 필요한 양분을 씨앗이 이미 가지고 있기 때문이라고 한다. 거기에 적당한 습도와 온도, 바람 같은 것들이 힘을 보태 씨앗의 양분을 밖으로 틔워내는 것이다.


생명이 있는 모든 존재라면 매 순간 감각들이 활동하고 있다. 하루에도 느낄 수 있는 수백 혹은 수천 가지의 감각들 중 어느 것을 인지하느냐, 아니면 무심코 지나치느냐에 따라 각자 느끼는 감각의 정도에 차이가 있을 뿐이다. 


나는 우리가 느낄 수 있음에도 불구하고 인지하지 못해 놓치는 감각들이 안타깝다. 특히나 요즘처럼 바쁘게 돌아가는 세상 속에서 사는 우리는 시간을 효율적으로 써야 한다는 강박과 핑계로 감각들마저 그 효율적인 시스템 속에 가두어 발전시키는 것은 아닌지 생각해볼 필요가 있다. 


조금 더 아날로그적이었던 시절의 우리는 보다 다양한 감각의 재미들을 누리며 살아가고 있었다. 흙으로 된 운동장에서 뛰어놀며, 오늘 먹을 반찬거리를 채집하며, 사람과 사람이 만나 악수를 하며 우리 몸의 감각들을 깨우며 그렇게 살았다. 반면 점점 포화상태가 되어가는 미디어의 세상 속에 사는 지금은 오히려 많은 감각들을 흘려보내고, 그나마도 한정된 감각들, 특히 시각적인 자극들에 너무 편중되어 있다. 

우리는 늘 많은 생각을 하며 살아간다. 이런 일차원적인 개념의 아이디어는 예상치 못한 감각을 통해 몸의 경험이 만든 기억이 덧붙여져 다차원의 것으로 치환된다. 문득 떠오르는 어떤 아이디어들은 이 씨앗과 같아서 다양한 감각들을 바탕으로 한 다채로운 안목을 자양분 삼아 싹을 틔우고 자라게 되는 것이다. 


나는 이러한 아이디어의 시작을 ‘생각 씨앗’이라고 부른다. 우리 안에는 가능성의 작은 씨앗들이 무수히 많이 심겨 있다. 마치 대지 위에 씨앗을 뿌리면 땅 아래에서는 단단히 자리를 잡아주는 뿌리가 생기고, 위로는 입과 줄기, 열매가 생기는 이치처럼 우리도 내면의 ‘생각 씨앗’이 튼튼히 뿌리내리고 자랄 수 있도록 가꾸어야 할 필요가 있다. 


이 작은 씨앗들이 얼마만큼 자라 어떤 열매를 맺을까에 대한 가능성은 얼마든지 열려있다. 나 또한 세상을 성찰하는 안목을 높이며 세상과 나의 구도를 완성도 있게 만드는 과정에 있다. 그렇다면 우리 각자의 씨앗은 어떻게 가꾸어야 할까.

십수 년 전 런던에서 경험했던 Antony Gormley의 설치 작업 ‘Blind Light’는 흘려버리고 있었던 다채로운 감각이 깨어나는 순간의 즐거움을 새삼 느껴볼 수 있는 계기였다. 초음파 가습기를 이용해 새하얀 수증기로 가득 찬 공간에 들어서는 순간 마치 눈이 먼 듯한 느낌과 함께 그 밖의 다른 감각들이 깨어나기 시작했다. 한없이 깊은 것 같은 그 공간 안에서 손을 뻗어 장애물을 확인하고, 거리와 구조를 가늠하면서 다른 이들과 의도치 않게 부딪히는 상황들도 생겼다. 


순간을 즐기는 사람, 겁먹은 사람, 호기심으로 탐험하는 사람 등 관객들은 작가가 만든 공통된 상황에 놓여있었지만, 각자의 방식에 따라서 모두 다르게 그 공간을 경험했고 그것에 대한 기억 또한 다를 것이다. 이것은 비록 설계된 작업에서의 경험이었지만 우리의 삶도 마찬가지로 눈을 통한 자극으로만 기록되지 않는다. 인간은 육체를 가지고 태어나 시간을 타고 끝없는 탐험을 하는 존재이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 곁에 실재하는 세상도 단순히 보는 것 이상의 몸의 경험을 통한 기억이 동반되는 존재여야 한다. 

공간을 디자인한다는 것은 단지 유행하는 것들을 모아 넘치는 자극으로 채우는 것이 아니라 물리적 공간, 그 안의 감각 영역을 깨우는 것이 되어야 한다. 우리 몸이 기억할 수 있는 공간감은 시각적 이미지들을 비롯해 약간의 감각들로 이루어진 기억의 연속이다. 그리고 우리의 작업은 무심하게 떠 있는 감각들에 보다 예리하고 날카롭게 반응하는 것 이상으로 타인의 감각도 이해하고 공감하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런 이유로 나는 작업에 앞서 어떤 공간의 기운을 오감으로 느껴보려 노력한다. 시선의 끝에는 무엇이 있는지, 어떤 소리가 들리는지, 어느 방향에서 바람이 불어오는지, 그리고 어떤 것을 보다 편안한 방향으로 변화시켜볼 수 있는지에 대하여. 이런 고민의 시간이 더 나은 공간과 사용자가 함께할 수 있는 세상을 만들 수 있는 한 걸음이 되리라 생각한다. 


‘생각 씨앗’을 틔우는 이러한 일련의 습관들이 비단 디자이너에게만 필요한 것만은 아니다. 모든 이들이 자신의 씨앗을 기르는 농부가 될 수 있다. 우리의 일상이 특별해지길 바란다면 대단한 일탈을 할 것이 아니라 반복된 일상을 다른 시선으로 바라보는 것은 어떨까. 


음식을 먹을 때 배를 채운다는 행위의 결과에 집중해왔다면 이제 한 번쯤은 수없이 먹어왔던 음식일지라도 음식을 씹으며 이에 재료가 닿는 순간의 느낌에, 음식을 자르는 소리에, 그리고 혀에서 맴도는 질감처럼 잊고 지냈던 감각들을 깨워보자. 새로운 맛의 세계가, 나아가 새로운 일상이 보일 것이다.


글 | another D 김경민 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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