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를린 시내 중심에서 지하철을 타고 십여 분을 지나 조용하고 한적한 동네에 도착했다. 허름한 동네 세탁소와 피자 가게, 저 멀리 대형마트가 보이는 곳. 대형마트에서 샌드위치를 하나 사서 코너를 돌아보니 유대인 박물관 200m라는 팻말이 눈에 띄었다.
건축 잡지에서 유대인 박물관을 보았을 때는 해체주의적인 성향의 신선한 건축물이라고 생각했었다. 그리고 이렇게 컴퓨터그래픽 같은 건축물이 실제 땅 위에 서 있는 모습이 궁금했다. 잡지에서 본 화려한 외관으로는 시내 중심가의 시끌벅적한 곳에 있을 것이라고 예상했는데 나의 예상과 달리 한적한, 작은 아파트와 동네 가게들이 즐비한 그런 곳이었다.
바로 옆에 바로크 양식의 건물이 있어 어울리는 듯 어울리지 않는 듯 이질적인 느낌을 주는 동네. 유대인 박물관 역시 바로크 양식 건물인 프로이센 법원이었던 곳을 활용하였으며 증축 부분이 바로 다니엘 리베스킨드(Daniel Libeskind)가 설계한 건물이다.
기존 박물관의 입구를 통과해 지하 통로로 들어가야 리베스킨드가 설계한 건물에 도착할 수 있다. 즉, 그의 건축물에는 입구가 없다. 증축 부분임에도 불구하고 건축물의 독특한 디자인으로 유대인 박물관 자체보다 더 유명해졌다. 설계할 때 컨텍스트 즉, 주변 조사를 하고 이에 어울리는 디자인을 하는 것이 일반적이지만, 간혹 건축가의 독특한 건축언어가 더 우선인 경우가 있다.
프랭크 게리(Frank Gehry)의 빌바오 구겐하임 미술관은 스페인의 빌바오라는 도시를 유명하게 만들었으며 리베스킨드의 유대인 박물관도 건축물 자체가 더 유명해진 경우이다. 주변의 어디와도 어울리지 않는, 우주 어디에선가 내려와 앉은 듯한 모습이었다. 바로크 양식의 건물과 은빛 가득한 이 건물의 조화에 대해 리베스킨드는 어떻게 생각했을까? 분명 기존건물과 새로운 건물을 어떻게 연결할 것인가에 대한 고민을 했을 것이다. 그것이 이 건물의 시작점이 되지 않았을까?
1989년 설계공모전에서 리베스킨드의 안이 당선되자 건축계에서도 화제를 모았다. 은색의 티타늄과 아연으로 된 지그재그 모양의 건축물은 이전까지 실제 건축으로 구현하지 못하고 말 그대로 종이 위에서만 건축하던 페이퍼 아키텍트였던 리베스킨드를 단숨에 세계적인 스타 건축가로 만들었다.
이 건축물의 외관은 티타늄과 아연으로 덮여 있고 건물 파사드 전체를 가로질러 끊어진 여러 선들이 가늘고 불규칙한 창문을 이룬다. 입구가 바로크 양식의 건물의 지하에서 시작되기 때문에 건축물의 정면성이 없다. 특정한 정면과 방향성이 없는 유대인 박물관은 여러 의미의 선들의 만남으로 평면이 구성되고 끊어진 선들이 입면을 가로지른다.
AA School에서 열린 리베스킨드 강연회를 간 적이 있는데 그곳에서 본 첫 화면이 그의 졸업작품 스케치였다. 선으로 구성된 그의 해체주의적 디자인 성향은 그때부터였다. 건축과를 졸업하면 학생들을 졸업작품을 들고 다니며 설계사무실에 취직하게 되는데 그의 디자인을 받아주는 곳은 아무 데도 없어 한동안 취직을 못 했다고 한다.
요즘도 파격적인 그의 디자인이 경험으로 축적되어 완성된 것이 아니라 학생 때 이미 시작된 것에 놀랐고, 그 당시 그의 디자인을 받아주는 곳이 한 군데도 없음에도 유대인 박물관 설계 공모에 당선될 때까지 소신을 굽히지 않았다는 점에 다시 한번 놀랐다.
프로젝트의 공식 명칭은 '유대인 박물관'이지만 나는 그것을 '선들의 사이'라고 불러왔다. 왜냐하면, 그것은 사고, 조직 및 관계의 두 노선에 관한 프로젝트이기 때문이다. 하나의 선은 직선, 많은 편린으로 부서졌고 또 다른 하나는 비뚤어진 선, 불확정적으로 지속된다
- 다니엘 리베스킨드
리베스킨드는 설계안을 ‘선과 선 사이(Between the Lines)’라고 했다. 다양한 의미의 선들이 중첩되어 있고 그 선들이 연결되어 지그재그 형태가 만들어진 것이다. 평면 형태는 유대인의 상징인 다윗의 별 형상이고 선이 아홉 번 구부러진 날카로운 선들을 입체적으로 만든 듯 보인다. 다양한 선들은 크게 세 가지 축인 유배의 축, 홀로코스트의 축, 연속의 축으로 구성되고 각각의 의미를 부여한 공간들을 마주할 수 있다.
연속의 축(The Axis of Continuity)은 바로크식 건물 지하에서 시작하여 지상으로 향하는 길고 긴 계단으로 이어져 전시장으로 도달한다. 내부의 좁고 긴 복도에서 기울어진 바닥을 걸으며 유대인의 전반적인 역사와 전시물을 볼 수 있다.
유배의 축(The Axis of Exile)은 기울어진 바닥, 가로막힌 기둥 등으로 불균형의 공간이며 그 축의 끝에는 유배의 정원이 있다. 이곳에 있는 49개의 사각기둥은 유대인들의 끊임없는 유랑생활을, 기둥 사이의 올리브나무는 희망을 의미한다.
마지막으로, 홀로코스트의 축(The Axis of the Holocaust)은 최후의 죽음을 의미하며 그 축의 끝에는 24m 높이에 아무것도 없는 빈 공간으로 된 홀로코스트 탑이 있다. 암흑으로 가득한 빈 공간 저 끝에는 가느다란 선의 창으로 빛과 소음이 희미하게 들어온다.
유대인 박물관 내부는 기울어진 바닥과 기울어진 창들이 교차하며, 가는 곳마다 암흑과 저 멀리 높은 곳에 아주 희미한 빛이 들어오고 있어 또 다른 탈출구를 찾고 싶어진다. 하나하나 공간의 의미를 부여하고 유대인의 감정을 공간 자체의 공간감으로 표현했다.
개관 이전, 내부에 전시물이 설치되기 이전 방문객에게 개방된 적이 있는데 많은 사람들은 건축물 공간에서 느껴지는 공간감만으로도 눈물을 흘렸다고 한다. 공간의 깊이, 빛의 오묘한 조절, 재료의 표현으로 저절로 숙연함을 느낄 수 있었다.
이런 공간들을 만들 수 있는 천재성은 어디에서 나오는 걸까? 리베스킨드는 실제로 폴란드에서 태어난 유대인으로 이후 미국에 이민을 갔다. 그는 유대인의 역사와 감정을 누구보다 잘 아는 사람이기에 이것이 가능하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그의 독특한 디자인 언어는 유대인 박물관에 국한된 것이 아니라 학생 때부터 시작된 것이었다.
기억의 공간은 콘크리트 벽으로 막혀 있으며 바닥에는 홀로코스트에 희생된 유대인들의 얼굴을 상징하는 쇳덩이인 메나쉬 카디쉬만(Menashe Kadishman)의 작품 ‘떨어진 낙엽(Schalechet _Gefallenes Laub)’이 깔려있다. 밟아야만 지날 수 있는 공백의 기억. 날카로운 쇳소리는 유대인의 고통과 절규처럼 느껴지며 그 벽의 끝에는 희미한 빛이 새어 나온다.
“나는 홀로코스트로 내 가족 대부분을 잃었던 그 시작부터 여기와 관계되었던 것 같다."
건축가 다니엘 리베스킨드
▶ ‘홀로코스트메모리얼(Holocaust Memorial)_피터 아이젠만’으로 이어집니다.
글 | 지오아키텍처 이주영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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