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인센토 Nov 28. 2021

막다른 길

@ Nowhere


앞이 보이지 않는 길을 달렸다. 쉼없이 달렸다. 숨이 턱 밑까지 차오르고 털썩 주저앉고 싶을 때면 생각했다. 그 놈의 치사한 달세방과 뇌세포와 위장을 갉아먹는 늦은 회식을 마치고 비틀거리며 올라야 했던 높고 좁은 골목길과 영원히 끝나지 않을 것 같았던 기나긴 여름날 등짝에 쩍 달라붙어 있던 와이셔츠의 찝찔함과 아랫방 술주정뱅이 영감의 넋두리와 한탄과 푸념의 도돌이표 돌림노래를 떠올렸다. 다시, 그 곳으로, 되돌아갈 수는 없다.


주위에서 한명 씩, 두명 씩 떨어져 나갈 때도 나는 그들이 최선을 다하지 않았기에, 어쩌면 당연한 결과라 믿었다. 고백한다. 또 한명 제꼈다,는 일말의 쾌감을 느낀 것도 솔직히 사실이다. 그래, 어딘가 좋은 곳으로 가리라는 맹목적인 믿음으로, 잘 되리라는 보장도 없이 달렸다. 버티고 또 버텼다. 산다는 것이 그런 것 아니던가. 어른이 된다는 것은 그런 것이다. 재미로만 인생을 살 수 없다는 것을 일찌감치 깨닫고, 먹고 산다는 것은 어차피 재미없는 일이라는 것을 날카로운 이성으로 꿰뚫어 보는 것. 더 나은 내일을 위해 이 순간의 고통과 모욕을 뜨겁게 참고 견디는 법을 배우는 것이 인생의 비결이라 믿었다. 그런데 속았다.


이 놈의 길이 없다. 말도 안되는 곳에서 갑자기 끝나버린 채 더이상 길이 없단다. 쉴 새없이 달려왔는데 사실 여기는 임시 도로일 뿐, 길이 아니었단다. 저 멀리 또 다른 고가도로로 누군가 달려간다. 그들도 아마 예전의 나처럼 통쾌해하겠지. 망연자실, 힘이 빠져 콘크리트 바닥에 털썩 주저앉았다. '막다른 골목'*의 끝에서 새 한 마리 어디론가 훠얼 훨, 날아간다.




다니엘 벤사이드는 ‘마르크스 사용 설명서’에서 마르크스가 자본론을 통해 말했던 자본의 순환 과정을 아래의 그림으로 정리한다.



이에 따르면 자본 A는 투자를 통해 생산 P을 하고, 이를 상품 M으로 바꾼 뒤 판매를 하여 다시 새로운 자본 A’를 얻게 된다. 이 순환 주기에서 최초의 자본 A는 변신을 거쳐 자본 A‘로 전환에 성공하게되면 이 과정에서 잉여 가치가 발생한다. 그리고 이 둘 사이 - A와 A’를 연결하는 또 다른 사이클이 바로 우리가 알고 있는 금융이다. 그러니 사실 우리가 저축을 하거나 주식에 투자함으로써 얻게되는 이자나 이익 또한 이 변환 과정을 통해 발생된다. 결국 자본주의는 생산과 소비 사이, 즉 화폐가 상품으로 바뀌는 과정과 상품이 다시 화폐로 전환되는 순환 과정에서 발생하는 잉여 가치의 수혈로 인해 유지된다.


벤사이드의 설명처럼, “자전거를 타는 사람이 계속해서 페달을 돌리지 않으면 넘어지는 것과 똑같은 이치로 자본 또한 순환하지 않으면 죽음을 맞이”한다. 그리고 이 페달을 돌리는 모터가 바로 ‘노동력’이다. 그러니 누군가 주식 투자로 대박을 터뜨렸다거나 땅을 사거나 집 값이 올라 큰 돈을 벌었다거나 그 무엇이든 상관없이 - 자본, 토지, 노동, 금융과 같이 본질을 알아보기 힘들게 이름은 다 달라도 - 탁 까놓고 말하자면 누군가의 피, 땀, 눈물이 그 곳으로 몰려간 결과이다. (세상에 공짜 점심이란 없다) 그리고 그러한 실물 경제보다 금융 회로가 더 빨리 돌게 되어 풍선이 끝없이 부풀어오르게 되면 거품처럼 빵, 하고 터지게 되어 대공황이나 금융 위기가 발생한다.


어떻게 우리는 이 순환 고리에서 탈출할 수 있을까? 피 튀기는 경쟁을 하며 끝이 보이지 않는 피라미드의 저 꼭대기로 올라가는 것 이외에 어떤 다른 방법이 있을까? 쉽게 답할 수는 없는 노릇이다. 소설가 박민규는 <삼미 슈퍼스타즈의 마지막 팬클럽>에서 이렇게 말한다. “관건은 그것이라고 생각한다. 따라 뛰지 않는 것. 속지 않는 것. 찬찬히 들여다보고, 행동하는 것. 피곤하게 살기는 놈들도 마찬가지다. 속지 않고 즐겁게 사는 일만이, 우리의 관건이다. 어차피, 지구도 멸망한다.”  




13인의아해가도로로질주하오.

(길은막다른골목이적당하오.)


- 이상, 오감도 시제1호 中

매거진의 이전글 아이돌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