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Pale Ale Feb 08. 2020

화장하는 남자

남자들은 왜 화장을 시작했는가?

남자들이 화장을 시작했다. 남성용 스킨케어 화장품 광고는 홍수처럼 차고 넘친다고 해도 과장이 아니다. 연예인들이나 미디어에 출연하는 남자들이 화장하는 것이야 그렇다 치더라도 평범한 남성들이 화장을 하고 외모를 가꾸는 것이 어느새 당연한 일이 되었다. 남자가 화장을 한다는 것은 무엇을 의미하는가? 남자들은 왜 예뻐지려 하는 것일까?


광고가 남자들의 화장을 부추겼다고 할 수도 있겠다. 광고는 항상 새로운 욕망을 창조하여 소비자들 지갑을 열게 만드는 것이 목적이니, 남자들이 예뻐져야 한다는 강박관념을 갖게끔 광고가 선동하는 측면이 틀림없이 있다. 하지만 보다 근본적인 원인은 인간 본성에서 찾아야 하지 않을까.


동물의 세계에서 수컷은 암컷의 선택을 받기 위해 치열하게 경쟁해야 하는 불쌍한 존재이다. 야생의 세계에서는 강한 수컷이 다수의 암컷을 차지하고, 열등한 수컷은 도태되어 외롭고 쓸쓸하게 사라지는 운명이다. 경쟁에서 살아남기 위해 수컷들은 다양한 전략을 발전시켜왔다. 공작과 같은 동물은 화려한 깃털로 자신을 치장하고 남성성을 과시한다. 화려한 외모가 우월한 유전자를 상징하는 것으로 암컷에게 어필하는 전략이다. 다른 대부분의 수컷들은 강인함을 과시하며 경쟁자를 완력으로 제압하고 암컷을 차지하는 전략을 사용한다. 우월한 유전자의 수컷만이 살아남는 냉혹한 정글의 법칙이다.


인간도 크게 다를 바 없다. 수렵채집 시절 여자를 차지하는 우수한 남자는 강인한 체력으로 사냥을 해서 먹을거리를 제공해주는 능력을 가진 남자였다. 지금도 균형 잡힌 근육질의 남성이 매력적인 남자로 비치는 이유이다. 더 이상 사냥 능력이 중요한 시대는 아니지만 아직까지 인류의 DNA는 수렵채집 시절의 본능이 그대로 남아있기 때문에 먹거리를 제공할 수 있는 육체적 능력은 지금도 중요하게 여겨진다. 그렇기에 데이트할 때 남자가 밥을 사는 행위는 기본적인 본능에서 비롯된 연애 전략이다. 많은 남자들이 헬스클럽에서 땀 흘려 몸을 만들고 있는 이유이기도 하다. 즉 안정적인 먹을거리를 여자에게 제공할 능력이 있다는 것을 과시하는 지극히 야생적인 본능이, 현대에는 팬시한 레스토랑에서의 식사와 헬스클럽에서 만든 몸으로 살짝 비틀어진 것일 뿐, 기본적인 전제는 지금도 동일하다. 


이런 본능이 유전자에 장착되어 있기에 얼핏 남자는 굳이 화장을 할 필요가 없다고 생각할 수 있다. 외모보다는 강인함이 중요했기에 외모를 가꾸는 것, 즉 남자가 화장을 한다는 것은 오히려 남성성이 약한 유약한 모습으로 간주되었고 금기시된 측면도 있었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남자가 외모를 전혀 중요시 여기지 않았던 것은 아니다. 다만 얼굴보다는 완력이 조금 더 중요했을 뿐이다. 진화심리학에 의하면 여성이 잘생긴 외모의 남자에게 매력을 느끼는 것은 본능이라고 설명하고 있다. 잘생긴 얼굴 즉 균형이 잘 잡혀 있어서 보기 좋은 외모는 곧 육체적으로 우수한 유전자를 상징하는 것이기에 매력을 느낀다는 것이다.


그러니 외모를 가꾸는 남자, 즉 남자의 화장은 자연스러운 본능의 발현이라고 하겠다. 더구나 이미지가 중요한 현대 사회에서 잘 생긴 외모는 경제적 성공을 보장해주는 중요한 요인이 되었다. 키가 크고 잘생긴 남자가 더 높은 연봉을 받는다는 미국의 통계도 있다. 완력이 아니라 남자의 미모가 여성에게 더 어필하는 우월한 능력이 되었다. 


사정이 이렇다 보니, 광고는 남성들이 이미 가지고 있었으나 완력의 중요성에 뒷전으로 밀려서 그동안 잠재되어 있었을 뿐인 화장에 대한 욕구를 건드린 것일 뿐이라고 해석할 수 있다. 남자가 화장을 시작한  현상에서 남녀평등의 진보를 보는 견해도 있다. 그동안 여성에게 사회적으로 강요(?)되었던 화장이 이제 남성에게도 적용되는 것이기에 남녀평등을 이루었다는 것이다. 다소 억지스럽지만 일견 성 인식의 진보라고 생각한다면 긍정적인 견해라 하겠다.


남성 화장품 광고가 봇물을 이루고, 남성의 외모 가꾸기에 관해 표출되는 다양한 의견들은 최근 불거지고 있는 남녀 간 사회적 갈등과 관련 있는 것 아닌가 싶어서 우려되는 측면도 있다. 여성에 대해 삐뚤어진 생각을 가진 일부 남성들이 여성에게 가한 폭력 사태와, 이를 맞받아서 발현한 여성들의 극단적 페미니즘이 난무하는 현상은, 곧 남성성이 거세된 곱고 얌전한 남자에 대한 선호로 이어지고, 이런 경향이 최근 부쩍 활성화된 남성들의 화장을 부추기는 것은 혹시 아닐까.


원인이 무엇이건, 외모가 곧 경쟁력이고 우월한 지위가 된 것은 외모지상주의라는 비판의 대상이 될 수도 있겠지만, 완력으로 상징되던 남성성이 시대의 변화에 맞추어 진화하고 있다는 긍정적 변화의 사인으로 볼 수도 있다. 남자가 외모를 가꾸는 것이 누구에게 해를 끼치는 것도 아니니, 변화하는 성역할을 반영한 것으로, 앞으로 남녀 간 갈등을 해소하고 조화를 이루는 초석이 되었으면 좋겠다.


매거진의 이전글 한국형 좀비와 빨리빨리 문화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