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어준은 어떻게 권력이 되었나

김어준 권력의 명과 암

by Pale Ale

김어준이 연일 화제다. 그의 영향력을 놓고 논란이 심화되고 있다. 언론을 표방하지도 않은 그는 도대체 어떻게 권력이 되었을까? 권력을 넘어 성역이 되어버린 김어준 현상의 명과 암을 짚어본다.


시간을 거슬러 1998년으로 돌아가서 딴지일보 창간 시점을 돌이켜보면 과연 지금 김어준이 자리한 위치를 상상이나 할수 있을까? 창간 선언문에서 '한국 농담을 능가하며 B급 오락영화 수준을 지향하는 초절정 하이코메디 씨니컬 패러디 황색 싸이비 싸이버 루머 저널'을 표방한 김어준은 2026년 현재 정부 여당에 막강한 영향력을 미치고 있다는 우려와 비난이 공개적으로 제기될 정도의 중요 인물이 되었다. 윤석렬의 계엄에서 최우선 순위로 체포할 인물 리스트에 올랐으니 누구에게는 공포의 대상이 될 정도의 권력자가 되었다 해도 과장은 아니다.


조선일보를 겨냥, 이름도 (조선일보에 딴지를 걸겠다는) 딴지일보로 명명할 정도로 치기어린 황색 패러디 물을 만들던 김어준은 도대체 어떻게 지금의 위상을 얻게 되었을까? 여러가지 원인이 있겠지만 김어준 개인의 역량과 한국의 시대 사회적 상황이 적절하게 결합했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김어준 권력의 명明과 암暗: 1. 명- 인기 비결과 긍정적 효과


1. 정치의 엔터테인먼트화


무엇보다 김어준은 딱딱한 정치를 적절히 희화화하여 누구나 쉽게 즐길 수 있는 엔터테인먼트물로 만들었다. 김어준 이전에 정치는 엄숙했고, 정치인은 그런 정치 이미지에 걸맞게 유머와는 거리가 먼 이성적이고 점잖은 존재였다. 그렇다보니 당연히 일반 대중에게 정치는 재미없고 따분한 것이기에 남의 나라 일처럼 느껴졌다. 긍정적이건 부정적이건 어쨌거나 김어준은 정치를 희화화해서 일반 대중이 쉽게 접근하고 즐길 수 있도록 만들었다. 이것은 삼류 패러디를 표방한 김어준을 싫건 좋건 언론의 반열에 올라오게 만든 일등공신이다.


딴지일보는 처음 신선한 발상으로 큰 관심을 모았지만 단순한 패러디와 유머의 한계, 그리고 사회적으로 민주화가 진전되며 풍자의 묘미가 갖는 통쾌함이 감소하게 되자 정체기를 맞았다. 그러다가 이명박 박근혜 정권하에서 진보적 목소리가 탄압받고 보수 언론이 득세하는 상황에서 팟캐스트 "나는 꼼수다(나꼼수)"를 통해 극적으로 부활하게 된다.


나꼼수는 본격적으로 정치를 엔터테인먼트로 만들었는데, 해적방송의 성격을 가진 팟캐스트를 통해 김어준 정봉주 김용민 세 명의 거침없는 독설과 유머와 막말로 정치를 희화화 한 것이 크게 히트했다. 단순한 희화화를 넘어서 기성언론의 얌전한(?) 보도 태도와는 다르게 시원하게 질러대는 스타일은 사람들이 관심을 갖고 정치 주제에 뛰어들게 만드는 힘이 있었고, 이것은 해적방송이 기성 언론 이상의 영향력을 갖게 만든 원동력이다.


나꼼수에서 정형화된 틀로 자리잡은 정치의 희화화는 문재인 정권이 들어서고 김어준이 TBS 뉴스공장 공장장을 맡으며 본격적으로 발전하기 시작했다. 김어준 개인의 역량에 절대적으로 의존한 뉴스공장은 거침없는 언변으로 라디오 최고 청취율을 기록하며 여론을 주도하는 영향력을 확보했다. 여야 정치인을 막론하고 김어준의 뉴스공장 출연을 마다하는 정치인을 찾아 보기 어려웠고, 김어준의 감각에 맞춰줄 수 있는 정치인은 여야를 가리지 않고 스타 정치인 반열에 오르게 되었다. 그의 스타일에 맞게 뛰어난 순발력과 유머감각을 갖추고 청취자들에게 재미를 선사하는 정치인이 대접받게 되었다.


이런 추세는 김어준이 TBS에서 퇴출되고 유튜브 방송으로 이동하면서 더욱 발전했다. 그의 방송에 자주 부름을 받는 정치인은 재미를 선사하는 정치인이다. 상대적으로 엄숙하거나 진지한 태도로 재미와는 거리가 있는 정치인은 사실상 그의 방송에서는 찾아보기 어렵다.


극명한 예가 정청래와 박찬대이다. 정청래는 김어준 방송에 적합한 입담을 가지고 있어서 김어준의 입담과 찰떡같은 케미를 보여준다. 반면 박찬대는 그런 튀는 순발력보다는 원론적이고 조근조근한 스타일이다. 그런 스타일 차이의 결과는 모두가 알다시피 정청래와 박찬대의 뉴스공장 출연 횟수가 말해준다. 압도적으로 출연한 정청래에 비해 박찬대는 거의 외면받았다해도 과언이 아니다.


이것은 김어준 방송의 스타일을 말해준다. 그리고 그의 인기의 근원도 알려준다. 일반 대중이 쉽게 접근하고 이해하고 즐길수 있는 정치 이야기를 풀어주는 방송이 김어준이다. 기존 레거시 미디어의 젠체하고 근엄하고 엘리트 냄새 물씬 풍기는 고답적 방송이 아니라, 장삼이사 시장통 박씨가 소주잔 기울이며 토해내는 스타일로 정치를 풀어내고, 또한 그런 스타일을 가진 정치인을 그의 방송을 통해 스타로 만들었다.


그렇다고 그가 정치를 희화화 시키는 것을 상업적 목적의식을 가지고 정략적으로 행한 것은 아니라고 본다. 김어준만의 고유한 스타일이고 그가 가지고 있는 철학이 일관성있게 유지된 결과물이기에 그 나름대로 충분히 의미가 있다.


2. 직설적 평민의 언어


김어준 방송의 성공 비결 중 하나로 그가 사용하는 언어를 들 수 있다. 그는 지극히 일반 서민들 언어를 사용한다. 나는 그가 지식인의 언어를 사용하는 것을 한번도 보지 못했다. 너무나 서민적인 언어를 사용한다. 레거시 미디어, 그 중에서도 네트워크 지상파 방송 아나운서의 언어와 비교해 보면 굉장히 거슬리고 파격적인 언어를 사용한다.


바꿔 말하면 일반 서민들 입장에서 볼때 매우 편안하고 친근한 언어를 사용한다고 하겠다. 특히 감정을 아무런 절제 없이 그대로 직설적으로 드러내는 화법은 그가 가진 최대의 장점이다. 뉴스 앵커가 애써서 부자연스럽게 객관적인 척하는 모습에 식상한 일반 사람들, 굳이 특정하면 민주당 성향의 시민들은 김어준의 언변에서 술자리에서 편안하게 친구에게 격한 감정을 토해내는 듯한 카타르시스를 얻는다. 기존의 어느 미디어의 방송인도 제공하지 못했던 특징이다.


정장 넥타이에 반듯한 자세, 그리고 명확한 발음의 표준어를 절제된 단어와 표현으로 전달하는 기존 레거시 미디어의 언어는 변화하는 사회의 언어환경과 동떨어진 느낌을 준다. 일정한 품위를 지켜야 한다는 기존의 규율이 반드시 나쁜 것은 아니지만, 정형화된 표현이라는 느낌이 강하니 일반 수용자들 입장에서는 일종의 거리감을 느낀다.


김어준의 언어는 그런 정형화된 규칙이나 강박관념이 없다. 매우 편하게 서민들 일상언어가 거친 비속어와 함께 자연스럽게 나온다. 그나마 과거 팟캐스트에 비해 많이 순화되고 절제하고 있는데, 그럼에도 여전히 레거시 미디어의 언어와 비교하면 확연히 차별화된다.


김어준 언어는 직설적이다. 에둘러 말하지 않는다. 그리고 간결한 직설 화법 한마디가 확 와닿게 화술을 구사한다. 예컨데 팟캐스트 시절 트레이드 마크, 혹은 구호처럼 사용된 "쫄지마 씨바"와 같은 화법이다. 권력으로부터 탄압받는다는 느낌에 짓눌려 있던 많은 사람들에게 청량감을 주는 한마디가 아닐 수 없다.


3. 완벽한 편향성


한국의 기존 레거시 미디어는 기계적 중립을 표면적으로 내세우지만, 실상 특정 정파를 지지하는 것이 너무나 노골적인 편향된 언론 지형이다. 진보 언론의 영향이 극히 미미한 상황에서, 더구나 진보 언론조차도 기계적 중립이라는 윤리적 개념의 틀을 애써 지키려고 노력하는 현실은 특정 성향 사람들에게는 매우 답답한 언론 지형이다. 그런 현실에서 김어준의 목소리는 특정 성향 시민들에게는 답답한 현실에서 울려주는 한줄기 단비와 같은 목소리이다.


김어준은 노골적으로 편향성을 드러낸다. 아예 선언을 하고 시작한다. 나는 철저히 친 민주당 성향이고 노골적으로 편향적 방송을 할테니 그게 싫으면 떠나라는 식이다. 진보적 성향을 갖고 있는 시민들 중에서 한국 언론 지형에 답답함을 느끼고 있는 사람들에게 단비같은 목소리를 전해 준 것이 김어준이다.


노무현 대통령 시절, 진보 성향 언론과 지식인들은 노무현을 깎아내리고 비판하고 심지어 조롱하는 것에 열심이었다. 그 이후 벌어진 현실에 대해 많은 진보 성향 시민들은 부채의식을 갖고 있을 것이고 제 역할을 하지 못한 진보 언론에 대해 실망감을 갖고 있었는데, 그런 사람들에게 김어준은 듣고 싶은 말을 제대로 전해주는 거의 유일한 존재로 자리잡았다. 즉 저쪽은 확실하게 자기 편을 들어주는데, 왜 이쪽은 비판적 지지 운운하며 결국 제대로 지켜주지 못했냐는 불만은 기성 언론으로 향할 수 밖에 없고, 확실하게 편을 들어주는 김어준을 독보적 존재로 만들었다.


4. 탁월한 해석


한국의 레거시 미디어는 해석기능에 있어서는 최악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표면적인 현상을 보도하는 것에 만족하고 특정 사건이 어떤 의미를 가지고 있는지, 실생활에 미치는 영향은 무엇인지 제대로 해석하고 보도해주는 기능이 지극히 부족하다. 부족한 정도를 넘어서 참담하기까지 하다. 해석은 추후 각종 불이익으로 돌아올 수 있기에 해석을 자제하는 측면도 강하다.


김어준은 그런 기존 규범을 과감하게 깨뜨린다. 뉴스공장에서 그날의 주제에 대한 평을 요약한 "김어준 생각"은 뚜렷한 색깔과 더불어 심플하게 해석을 한다. 듣는 사람들이 궁금해 하는 사안들에 대해 답답함을 뻥 뚫어주는 시원한 청량제 역할을 하는 해석을 다듬지 않은 거친 언어로 화끈하게 한다. 그의 해석이 맞는지 틀리는지는 그리 중요치 않다. 중요한 것은 아무도 시원하게 해주지 않는 해석을 콕 짚어서 시원하게 해준다는 점이다. 이 사건이 도대체 어떤 함의를 갖고 있는지 생각을 하지 못하던 사람들에게 명확한 의미를 전달해주니 정치 무관여층도 관심을 갖게 만드는 힘이 있다.


김어준 권력의 명과 암: 2. 암-인기 뒷면에 도사린 위험성


1. 음모론적 해석의 유혹


김어준식 정치 해석의 가장 큰 특징 중 하나로 사건을 매우 명확한 서사 구조, 특히 설득력있는 음모론으로 설명한다는 점이다. 특정 사건이 복잡한 제도적 맥락이나 이해관계 속에서 발생한다는 점을 강조하기보다는, 누군가의 의도와 음모라는 구조 속에서 이해하도록 설명하는 것이다. 이러한 해석 방식은 대중에게 매우 강한 설득력을 갖는다. 선뜻 이해하기 어려운 복잡한 현실을 간단한 이야기로 정리해 주기 때문이다.


김어준이 의도적으로 음모론을 생산한다고 단정하기는 어렵다. 그러나 그의 방송 스타일이 음모적 서사와 결합될 때, 그것이 강력한 정치적 동원 장치로 작동하는 것은 분명하다. 이 점에서 그의 해석 방식은 단순한 의견 제시를 넘어 하나의 정치적 프레임을 형성하는 힘을 갖는다.


대표적으로 자주 언급되는 사례가 세월호 침몰 사고와 관련된 여러 의혹 제기다. 선뜻 받아들이기 어렵고, 상식적으로 이해하기도 어려운 이 사건은 국가적 비극이고 많은 사람들이 감정적으로 반응한 사건이다. 음모론이 설득력을 갖기 용이한 사건이었다.


세월호 참사 이후 다양한 음모론이 등장했는데, 김어준은 가장 적극적으로 음모론을 퍼뜨린 장본인이었다. 정부 발표에 강한 의문을 제기하며 잠수함 충돌설, 고의 침몰설 등 다양한 의혹 가능성을 언급했다. 물론 정부 발표를 비판적으로 검증하는 것 자체는 언론의 역할일 수 있다. 그러나 검증되지 않은 가설을 반복적으로 제기하여 음모적 서사의 확산으로 이어진다면 문제가 아닐 수 없다.


또 하나 논란이 컸던 분야가 선거 관련 의혹이다. 한국 사회에서는 오래전부터 선거 조작 의혹이 정치적 논쟁의 소재로 반복되어 왔다. 특히 대한민국 제20대 대통령 선거 이후 일부 진영에서 제기된 부정선거 논란은 사회적 갈등을 크게 증폭시켰다.


김어준 역시 디도스 공격, 통계적 의문 등을 언급하며 여러 차례 의혹을 제기해 논쟁을 불러일으켰다. 선거 시스템에 대한 감시는 민주주의에서 매우 중요한 문제지만, 근거가 충분히 검증되지 않은 의혹을 음모론적으로 퍼뜨리는 것은 문제가 심각하다. 최근 극우진영에서 제기하고 있는 선거부정 음모론의 원조격이 아니던가.


과학계 논란에서도 비슷한 사례가 있었다. 줄기세포 연구로 세계적 관심을 받았던 황우석 사태 당시, 연구 조작 논란이 커지는 과정에서 일부에서는 외국 학계나 특정 세력이 연구자를 공격하고 있다는 음모론이 등장했다. 김어준 역시 당시 여러 방송과 글을 통해 사건의 배경에 대한 다양한 의혹을 제기하며 논쟁의 한 축을 형성했다. 결국 사건은 연구 데이터 조작이 확인되며 마무리되었지만, 그 과정에서 과학적 검증과 음모적 해석이 뒤섞이며 사회적 혼란이 커졌던 것도 사실이다.


이러한 사례들은 김어준이 단순히 음모론을 만들어낸 인물이라는 의미라기보다는, 그의 방송 스타일이 음모적 서사와 결합될 때 강력한 정치적 영향력을 발휘한다는 점을 보여준다. 복잡한 현실을 간단한 이야기 구조로 정리하는 방식은 대중에게 매우 매력적이다. 그러나 그 서사가 사실 검증보다 앞서게 되는 순간, 공론장은 분석과 토론의 공간이 아니라 확신과 감정의 공간으로 변할 위험이 있다.


결국 문제의 핵심은 이런 근거없는 음모론이 영향력이 큰 플랫폼에서 제기되는 해석의 책임성이다. 대중적 영향력을 가진 인물이 제기하는 의혹은 단순한 개인 의견을 넘어 공론장의 방향을 결정하는 힘을 갖는다. 김어준은 언론인을 자처하지 않을지 몰라도 이미 언론 권력이 되었다.


김어준 현상에 대한 비판이 반복되는 이유도 바로 이 지점에 있다. 그의 해석 능력은 분명 강력한 영향력을 만들어냈지만, 그 영향력이 음모적 서사와 결합할 때 공론장의 균형을 흔들 수 있다는 우려 또한 함께 커지고 있는 것이다. 그리고 김어준은 그가 제기했던 음모론이 근거없는 것으로 밝혀진 이후에도 어떤 사과도 하지 않았고 바로잡지도 않았다. 아니면 말고 식의 음모론이 B급 패러디를 표방한 김어준의 영향력과 결합했을때 위험한 사회적 현상이 발생하는데, 김어준은 이에 대한 책임의식이 없다.


2. 팬덤 정치와 공론장의 왜곡


김어준 방송의 또 다른 특징은 강력한 지지층이다. 그의 방송을 꾸준히 듣는 청취자들은 단순한 프로그램 소비자가 아니라 일종의 정치적 공동체에 가까운 모습을 보인다. 특정 이슈가 제기되면 빠르게 결집하고, 그의 해석을 중심으로 정치적 판단을 공유한다.


문제는 이런 구조가 공론장의 다양성을 축소시킬 가능성이다. 특정 방송을 중심으로 형성된 강한 팬덤은 자연스럽게 내부 결속을 강화하지만, 동시에 외부 의견에 대한 배타성을 높이기 쉽다. 비판적 의견은 곧 적대적 정치 세력의 주장으로 간주되기 쉽고, 토론보다는 진영 대립이 강화되는 결과를 낳는다.


정치적 팬덤 자체는 새로운 현상이 아니다. 그러나 미디어 플랫폼을 중심으로 형성된 팬덤 정치가 강해질수록 공론장은 점점 여러 개의 작은 부족으로 분열될 위험이 있다. 김어준 현상은 바로 이러한 미디어 기반 정치 부족주의의 대표적 사례로 볼 수 있다.


3. 권력 비판자에서 권력 그 자체로


김어준의 출발점은 분명 권력 비판이었다. 딴지일보 시절부터 그는 기존 권력을 풍자하고 조롱하는 아웃사이더의 위치에 있었다. 그러나 시간이 흐르면서 상황은 역설적으로 변했다. 지금의 김어준은 더 이상 주변부의 풍자자가 아니라 정치권과 여론에 상당한 영향력을 미치는 하나의 권력이 되었다.


수많은 정치인이 그의 방송 출연을 원하고, 그의 발언이 정치적 뉴스가 되는 현실은 이를 단적으로 보여준다. 권력을 비판하던 사람이 어느 순간 권력의 일부가 되는 현상은 역사적으로도 낯선 일이 아니다. 문제는 권력이 되는 순간 그 역시 비판과 검증의 대상이 되어야 한다는 점이다.


그러나 김어준을 둘러싼 강한 팬덤 구조는 이러한 비판을 쉽게 허용하지 않는 분위기를 만들어 왔다. 그 결과 김어준을 향한 비판은 곧 정치적 공격으로 간주되거나 진영 논리 속에서 묻히는 경우가 많다. 이미 성역으로 간주되어 그에 대한 비판 자체가 어려워진 측면이 강해졌다. 권력을 넘어 성역이 된 특정인의 막강한 영향력은 그 자체로 사회적 리스크가 되었다고 봐야 할 단계에 이르렀다고 보인다.


새로운 미디어 권력의 등장


결국 김어준 현상은 B급 패러디를 표방한 방송인의 성공 여부를 넘어선다. 그것은 디지털 플랫폼 시대에 등장한 새로운 형태의 미디어 권력을 보여주는 사례다. 전통 언론이 약화되고 새로운 미디어 환경이 형성되면서, 개인이 거대한 정치적 영향력을 행사하는 것이 가능해졌다.


김어준은 그런 변화의 가장 상징적인 인물이다. 그는 기존 언론의 규범을 거부하고 대중적 언어와 유희적 정치 해석으로 새로운 영향력을 구축했다. 동시에 그 영향력은 공론장의 균형과 정치적 토론의 질에 대한 새로운 질문을 던지고 있다.


김어준은 분명 한국 정치 커뮤니케이션의 지형을 바꾼 인물이다. 그러나 그가 만들어낸 방식이 한국 민주주의의 공론장을 더 풍부하게 만들었는지, 아니면 또 다른 형태의 권력 집중을 낳았는지는 앞으로도 계속 논쟁의 대상이 될 것이다.


문화오늘(http://www.culturenow.kr) 게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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