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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여림 Feb 13. 2020

캣푸어가 뭐냐고?



캣푸어는 모두가 예상했다시피 고양이 캣(cat)과 가난한 푸어(poor)의 합성어이다. 다른 이들도 사용하는 단어인지는 모르겠으나 우리 언니가 내게 붙여준 칭호이고.

우리가 흔히 말하는 카푸어, 하우스푸어가 있으니 아마 설명을 하지 않아도 의미를 파악했겠지만 굳이 설명하자면 '가진 건 고양이뿐인 가난뱅이'(...)라는 의미가 된다.


하고 싶다고 아무나 붙일 수 있는 칭호는 아니다.

일단 캣푸어를 하려면 푸어가 되어야 하는데 만약 직장인이라면 푸어가 되는 것이 가장 어려울 것이고(사실 푸어가 된 지 약 5년째인데 지금도 직장을 그만둔 일이 잘한 건지는 모르겠다는 게 함정), 수입이 없던 사람이라면 그냥 푸어다. 앞에 캣을 붙일 생각도 하지 않는 것이 일신의 보전에 도움이 되지 않을까.

나는 다행히도 한때 적당한 월급을 버는 직장인이었기에 푸어가 되고 얼마 되지 않아 만나게 된 고양이 한 마리 정도는 부양할 수가 있었다. 근데 그 고양이가 네 마리가 될 줄은 나도 몰랐지.


캣푸어네 흔한 오후 4시의 거실


아무튼, 나는 백수고 고양이도 있으니 완벽한 조건을 가진 캣푸어다.

완전한 백수는 아니고 부업을 조금 하는 프리랜서인데 일이 별로 없어서 나는 그냥 속 편하게 나를 백수라고 부른다. 물론 엄마와 엄마의 지인분들 앞에서는 프리랜서라고 말한다. 아무래도 무직인 딸보다는 돈이 안돼도 직업이 있는 딸이 남의 눈에는 나아 보이는 게 우리네 세상인 법이니까.


내가 자청해서 백수가 된 이유는 그다지 특별하지 않다. 원인은 다 다르겠지만 모두가 갖고 있는 스트레스. 그것이 너무 심해서.


다니던 회사는 직원을 관리하는 시스템이 너무 숨이 막혔다. 모두에게 등급을 매기고, 강제적인 자기 계발을 시키고, 류 한 장에 사람을 들들 볶고.

당시 회사들에 대한 평가를 볼 수 있는 모 사이트에 적힌 내용은 딱 한 종류였다.

밥이 맛있어요. 밥은 맛있어요. 밥은 진짜 맛있어요.

회사가 아니라 맛집 평가인 줄. 밥은 진짜 맛있었지만 할 말이 그것밖에 없는 회사란 과연 어떨지.

하지만, 빡빡한 회사의 시스템이 내 스트레스의 결정적인 원인은 아니었다. 업무적인 스트레스는 강약이 있을 뿐 어느 일을 하던 피할 수 없는 거니까.

친구들에게는 우스갯소리로 여행을 가고 싶은데 어처구니없는 이유로 상사가 연차를 안 써줘서 라고 말하곤 했는데, 그 속으로 들어가면 그보다 더 철없는 이유가 하나 덩그러니 남는다.


'내 시간이 없어서.'


내가 회사를 그만둔 진짜 이유.


그 당시에는 나름 심각했다.

어쩌다 보니 부업을 하게 돼서 주말의 시간까지 모두 자유롭지 못한 시기가 있었고, 내가 시간이라는 개념에 스트레스를 많이 받는다는 사실을 그때 깨달았다.

원치 않던 깨달음 이후로 상황이 좀 심각해졌다.

안 그래도 예민한 성격이 더 예민해지고, 퇴근 후에 혼자서 가질 수 있는 시간이 적다는 사실 자체만으로도 스트레스를 받고, 하고 싶은 것은 많은데 할 시간이 없고, 시간이 없다는 사실에 또 스트레스를 받고, 그러다 늦게 자고, 지각이 간당간당하게 출근을 하고, 바쁜 시간을 보내고 나면 남는 시간이 또 없고. 이런 생활의 반복이 내 신경 줄을 갉아먹었다.


돈은 좋았다. 은행에 빚도 있고, 자본주의 사회에서는 돈이 없다는 건 할 수 있는 게 없다는 것과 같은 말이 매달 나오는 월급은 당연히 소중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결국 스트레스가  그 대단한 돈을 이겨버렸다. 설마 산 입에 거미줄 치겠나. 부업을 조금 열심히 해보자는 막연한 생각만 가지고 뚜렷한 대책 없이 나는 퇴사를 결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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