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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여림 Feb 14. 2020

캣푸어가 되기까지 첫 번째. 퇴사.



당연하게도, 퇴사를 결심했다고 거기까지 가는 길이 곧게 뻗어있지는 않았다.


직장이 있는 분들이라면 느껴봤을 흔한 고민이 입사도 쉽지 않지만 퇴사는 그보다 더 힘들다. 안정적인 수입과 남들의 눈에 보이는 사회적 위치까지 모두 포기해야 하는 일이라 아무것도 가진 게 없던 취준생 시절과는 완전히 다르다.

그 당시의 나는 경력은 있지만 업무 특성상 이직도 쉽지 않은 이상한 포지션이라 퇴사 후에는 백수가 확정인 상황. 사직서를 내기까지 치열한 고민을 거쳤다.


일단, 첫 번째 퇴사 시도는 팀장님에게 막혔다.

존경하는 팀장님의 어르고 달래고 타이르는 말에 일단 생각을 조금 더 하기로 하고 엄마에게 전화를 했다. 그리고 이때 처음 알게 된 사실은, 아무런 언지가 없었던 내 사직서는 팀장에겐 날벼락과 같을 수 있다는 것. 퇴사를 하고 싶다면 동료뿐만 아니라 팀장님에게 먼저 의사를 밝히는 것이 예의라는 것. 퇴사는 처음이라 예의 없는 사직서가 있는 줄도 몰랐다.


두 번째 퇴사 시도는 엄마에게서 막혔다.

내가 집을 나오게 만들었던 집 상황이 더욱 심각해져서 엄마가 힘들다고, 꼭 그만둬야 하겠냐고. 웬만하면 하고 싶다고 하는 걸 막지 않는 엄마의 성향을 아는지라 알겠다고 전화를 끊었다.


사실 이때 조금은 안도했을지도 모른다. 누군가 나를 억지로라도 안정적인 곳에 붙들어 두고 있으니 힘들어도 그 사람을 탓하면 된다고, 퇴사의 용기를 내지 못한 것이 아니라 엄마의 부탁들 들어 준거라는 비겁한 변명을 꺼낼 수 있어서.


하지만 원인을 아는 스트레스가 아무리 참고 다스린다고 사라지지는 않는 법. 집 상황이 조금 나아진 후에는 엄마도 나의 퇴사를 허락했다. 존경하던 팀장님도 더 이상 계시지 않고, 나 스스로도 한계에 다다른 지 오래였다.


퇴사를 하기까지 필요한 과정은 복잡하고 귀찮았지만 진행은 빨랐다.

팀장님과의 상담.

관리팀에 사직서 양식 요청하기.(그 사이 홈페이지에 그냥 게재되어있던 사직서 양식이 삭제되고 관리팀에서 받아가는 시스템으로 바뀌어있었다. 사직서 제출도 전에 눈치를 봐야 한다는 건 정말 치사하고 더럽다. 양식을 요청하는 순간 내 퇴사 소식이 온 회사에 퍼진다는 건 그저 덤일 뿐.)

요청하니 면담부터 들어와서 관리팀장과의 면담.

겨우 받아낸 사직서 작성. 팀장님께 제출. 사인. 그 사직서를 내가 직접 들고 본부장 방문. 면담. 공장장 방문. 면담.

어차피 직원은 회사를 굴리는 하나의 소모품으로 생각하는 회사였고, 내가 없어져도 무언가로든 그 자리가 채워지는 게 회사라는 걸 알기에(이건 내가 시니컬한게 아니라 세상이 돌아가는 이치와도 같은 것이다.) 면담마다 재고해보라는 말을 거절하는 건 쉬웠다. 철없는 내겐 돈보다 시간이 절실했다.


그렇게 한 달.

진급을 눈 앞에 두고 난 퇴사를 했다.


퇴사 후에 내 업무를 맡은 후배가 일이 힘들어 울었다는 소식, 몇 년이 지난 지금도 업무 인수인계를 할 때는 내 이름이 들어간 폴더를 그대로 쓴다는 소식, 월급이 많이 올랐다는 소식. 많은 소식이 전해져 왔고, 아직도 돈을 포기한 게 잘한 일인지는 모르겠지만 하나만은 확실하다.


캣푸어는 행복하다는 것.



지금은 입양간 치초의 남매 빵일이와 빵이. 그리고 보기만 해도 행복한 우리의 치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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