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향을 찾아서

전업맘... 이 되다

by 랑랑

84m² 공간을 노른자로 15km 반경을 흰자로 그 안에서 먹고 자고 놀고 산다. 사회생활도 인간관계도 여기서 이뤄진다.

평일은 아이들 시간표에 따라 움직인다. 등하원, 하원 후 단지 내 놀이터, 놀이터에서 헤어짐이 아쉬우면 우리 집으로 초대하거나 초대받아서 또 노는 일상. 휴일은 신랑과 아이들을 위한 시간으로 이뤄진다.

놀이터에서 아이의 놀이를 지켜보며 아이친구 엄마들을 만나고 아이친구들도 이제 내가 익숙한지 내게 꾸벅 인사를 하며 우리 집에 놀러 오고 싶다고 한다. 옆에서 신난 울 아들들. 엄마 허락해 줄 거야? 반짝이는 눈 거절할 수가 없다. 식판과 숟가락이 들어있어 덜컹거리는 유치원 가방을 한 손에 킥보드를 한 손에 끌고 아이들의 작은 그 등 뒤를 따라 집에 간다. 오라고 했지만 묘하게 불편하다. 거절했었어야 했나? 설거지는 하고 나왔던가? 우리 집 상태는 어떻지? 집에 애들 간식에 있던가? 이제 우리 집 차례였구나 체념하며 따라가다가 집 정리가 덜 된 것도 같아 발길이 바빠진다. 금방 코 닿을 거리를 뛴다. 먼저 가 있을게요 애들 따라오세요.


누가 아파트에 살면서 찍어내듯 산다고 했을까. 비슷한 평형 타입에 따라 조금씩 미묘하게 다른 삶의 모습을 마주한다. 생년월일시가 같아도 제 삶을 사는 쌍둥이처럼 각자 자신의 집에 삶의 퍼포먼스가 담긴다. 아름답기도 하고 쓸쓸하기도 하고 때로는 지저분하기도 초라하기도 하다. 돌이켜보면 그것이 산다는 것에 대한 무게가 아니었나 싶다. 일하며 혹은 휴직으로 혹은 전업을 하며 각자의 자리에서 에너지들이 반짝거리기도 하고 우중충 하기도 했다. 난 커피 한잔에 내 고민 내 치부를 드러내며 관계를 유지하는 것보다 무방비(?) 상태의 집에 과감히 초대하거나 초대받는 것이 더 기뻤다. 그것이 엄마의 친분을 위함이 아닌 내 아이의 기대와 번호표 없는 순서차례였을 테지만 그래도 그렇게 가까워지는 것이 좋았다.


서 있는 위치가 바뀌면서 바라보는 풍경이 바뀐다. 모든 풍경이 방에서 집으로 집에서 단지 내로 이어진다. 엄마! 할머니! 하고 부르면 뭐든 뚝딱 나오는 마법들이 멈춰진 집. 친정엄마 손에 익었던 물건들이 내 손에선 이리 헐겁다. 좌충우돌 무언가 할 때마다 어디 무엇이 있는지 헤맨다. 그러고 보니 딸이 일한다는 이유로 엄마는 근무시간에 내게 전화하는 일이 없었다. 벌어지거나 벌어졌을 일 중 밖에서 내가 해결해 줄 수 있는 일은 없으니 맘 편히 일하라고 하셨던 엄마의 배려가 엄마의 손때가 뭍은 살림의 풍경들이 정겹지만 쉽게 손이 가질 않는다. 엄마가 그리운 건 내 몸이 편했기 때문일까... 엄마의 노고를 집안 구석구석에서 마주할 때마다 미안하면서도 고맙고 그러면서 아직도 제대로 해내지 못해 내는 내게 화가 난다.


먹고살아야 한다. 엄마가 손수 해주던 3-5첩 반상에서 인스턴트가 깔리는 한 접시 식사로 하향되면서 아이들의 입술 삐죽거림을 그 투정을 애써 무시했다. 다른 사람들은 뭐해먹고 사나 바라보다가 끝내 주문하는 인스턴트들. 빨래가 쌓여갔다. 할머니가 쌓아놓은 인맥들과 나도 친분이 필요했다. 선임자를 이길 수 없는 후임자. 엄마가 너그러이 안아주며 혹은 베풀며 곁에 있었던 인맥들에게 나 그 엄마의 딸이에요 라는 설명에도 곁으로 가기 무안하고 어색하고 길었던 인수인계의 시간들. 시간이 도와줄 거라고 함께해야 친해질 거라고 그러니 집안일할 시간이 부족하다는 이유로 빨래 건조기를 들였다. 엄마가 골라주던 아이들의 준비물은 스마트폰 유니버스에서 신상품을 산다고 아이에게 신기한 것들을 더 저렴하게 산다는 명목으로 몇 시간씩 잡고 있었다.

문 앞에 오는 택배가 제일 반가웠다. "이거 얼마게?"로 시작되는 대화들 신랑에게 나의 수고스러움과 절약정신을 알아봐 달라고 징징거렸다. 구매 품목들이 아니면 아이들 이야기가 아니면 할 이야기가 없었다. 나의 옛 공장 얘기도 너의 현재 공장얘기도 하기도 듣기도 첨언하기도 싫었다.

실업급여가 끝나자 집안 내에 이야기들도 재미가 없어졌다. 아이들 밥과 간식을 챙기고 얘들아 유치원 버스 타야지 늘 동동거리는 등원 시간과 킥보드 들고 널 맞이하던 하원시간. 빨래를 하고 집안을 치우고 어제도 오늘도 내일도 할 집안일. 언제쯤 말이 느는지 언제쯤 한 뼘 더 크는지 하루 하루 더딘 아이들의 성장. 그 성장 만큼도 늘지 않았던 나의 집안일.

하루 종일 잘 놀아놓고는 잘 때 되면 할머니가 보고 싶다고 그립다며 울던 아이들. 아이들을 얼르고 달래며 때론 이제 그만하라고 화내며 나도 엄마를 그리워하던 날들. 그지 같은 팀장에게 사과해서라도 다시 번복하고 싶었던 초라했던 후회. 잠이 들면 온갖 꿈들을 따라다니느라 바빴던 그래서 아침이면 초췌하던 내 두 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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