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빛들때 Apr 23. 2024

[대신쓰는 부모일기]4. 찐효도는 6시 내 고향일 수도

화려한 '연말 연기대상'이 아니라

근래 우연히 영화 '8월의 크리스마스' 넋 놓고  적이 있습니다. 1998년도 작품이니, 이야... 몇 년 전인지 셈도 잘 안 되네요. 그리 오래된 영화인데도 어찌나 세련되고 담백하게 슬프던지,  놓고 보게 될 만큼 명작이다 싶었습니다.


이전에 봤을 때는 -너무 오래돼 가물가물하지만-, 그래도 분명 한석규와 심은하의 은은한 사랑 이야기가 메인으로 와닿았던 기억 하나는 또렷합니다. 그땐 저도 20대 초반. 목하 연애 중이거나 연애 중이길 갈구하고 있었을 테니 왜 아니겠어요.


그런데 이번에 다시 볼 때는 그보다 한석규와 그 가족들의 저미는 이별 이야기가 더 와닿았습니다. 특히나 한석규가 죽음을 준비하면서 그의 아버지를 위해 리모컨 작동법을 알려주던 장면은 더욱이요. 좋은 마음으로 시작했지만 이내 답답해고 참고 참다 끝내 짜증을 내고 홱 나와버리고 나선, 혼자 또 후회도 하고 자책도 하는. 그러다 어느 날 종이 한 장을 꺼내 비디오 작동법부터 하나하나 아버지가 이제는 홀로 하셔야 하는 것들을 적어 내려가는. 바로 그 장면들 말입니다.


(죽음을 앞둔) 한석규울분이나 비애까지는 아니어도 다들 공감셨을 거 같아요. 늙으신 부모님께 가를 가르쳐드리는 일이 얼마나 쉽잖은 일인지 말이에요. 그 안타까움과 연민, 못잖은 답답함과 짜증 말입니다. 그렇게 이젠 내가 가르치고 부모님이 내 눈치를 보관계. 어릴 적 부모와 나와의 관계와 완전히 뒤바뀌어버린, 거기에 난 인색함을 두르고 생색까지 덧칠한 '참으로 못돼 처먹은 역전'이 일어난 거죠.


멀잖은 지난 주말에도 전, 엄마카톡 메시지를 복사하고 붙이 기능을 알려드리다 그 '참으로 못돼 처먹은 역전'의 위기를 여러 번 넘겼더랬죠. 그리고 그 전달 언젠가엔 넷플렉스 영화 보기에 푹 빠져계신 아버지, 새로 바꾼 TV와 리모컨으로 넷플릭스를 이용하는 법을 알려드리려다 또 그 '참으로 못돼 처먹은 역전'을 아슬히 오갔었고요.


그러고 보면 효도, 효도~ 하는데 정말 효도는 다름 아니라 부모님이 생활 속에서 곤란해하는 문제를 잘 해결하실 수 있게 돕는 것 아닐까 싶기도 합니다. 그냥 편히 결과를 누리시라며 해결해 드리는 방도 있겠지만, 아직 손수 해내시는 안심과 기쁨을 누리려 하신다면 더더욱 돕는 효도가 중요한 거 같아요. 친구분들과의 카카오톡 사용이 잦은 엄마 메시지 복붙을 스스로 해내시곤 "이거 막상 해보면 참 별거 아닌데 말이야~" 하고 흡족한 웃음을 지으시는 걸 보면 말이에요. 이제 혼자서도 척척 보고싶은 영화를 찜해놓고 보기도 하시는 아버지를 보면 말입니다.


어쩜 그때그때 느끼실 후련함과 안도감, 그리고 뿌듯함은 비싼 산해진미를 대접받거고급진 선물 받는 것 못지않는, 어쩌면 그보다 더 큰 기쁨이시지 않을까 싶기도 니다. 왜냐고요? 부모님의 생활 그것대로 계속되니까요. 어느 하루, 화려볼거리들에 시선을 뺏기더라도 종내는 살 피곤하고 허무해지기도 하는 '연말 연기대상'이 아닌, 그저 하루하루 비슷해서 무난하 익숙해서 한 '매일매일의 6시 내 고향'에 더 가까우니까요.


그러니 80 전후의 부모님께 뭔가 효도를 하고 싶다, 어떤 걸 해드리고 싶다는 마음이 어느 날 불쑥 들 때 말이에요. 어디 맛집, 어 여행지, 또는 어떤 선물을 준비하는 것도 물론 좋지만요. 때론 늙으신 부모님이 매일의 생활 속에서 어떤 도움이 필요하신지 혹은 어떤 게 곤란하신지 잘 살펴서, 그걸 해결하실 수 있게끔 도와드리는 것 좋겠단 생각이 듭니다.


그리고 그 돕는 방식이란, '참으로 못돼 처먹은' 대신 '상당히 친절한' 역전으로요. 우리가 과거를 되짚어보는 어떤 순간들에, 이를테면 시험을 망쳤을 때, 친구랑 다퉜을 때, 나름은 한다고 했는데 결과가 원찮을 때, 영 갈피를 못 잡고 혼란스러울 때 등등... 엄마아빠가 그렇게 꾸짖거나 면박 주거나 짜증 또는 화내지 않고 '천천히 기다려주고 부드럽게 말해주며 온화하게 응원해 주셨다면 얼마나 좋았을까'라는 바람으로 회고하게 되는 분들이라면 더더욱요. 혹은 반대로 렇게 해주신 부모님에 대한 따뜻한 기억이 더 많은 분들이라면 또 더더욱요.


그렇게, '그래! 이번에 갈 땐 엄마아빠한테 지난번보다 더 친절해지리라!' 마음 단단히 움켜쥐고 있는 저는, 오는 주말 친정 길에선 값비싼 외식보다는 집안 구석구석 청소기 한번 돌려드리고 스마트폰, 컴퓨터나 TV 쓰시면서 뭐 불편한 건 없으신지 먼저 여쭤보리라다짐 붙잡고 이렇게 끄적여보는 중이랍니다.



작가의 이전글 [대신쓰는 부모일기]3. 시작은 했으나...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