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화 작가 이자용은 2025년 11월 19일 쿠팡이츠 배달파트너 앱을 깔고 11월 21일에 처음으로 배달을 시작했다. 첫날은 2건, 다음 날은 8건을 배달했다. 이후의 평균 건수는 그 사이에 있다. 격주로 엄마를 돌보러 지방에 내려가기 때문에 서울에 머무는 주에만 하고 있다.
배달의 대가는 기본 3천 원이고 소득세(3.3%)와 산재보험료(0.85%)를 제한 후 주급으로 입금된다. 배달료가 매번 같지는 않다. 동일 지역에서 몇 시간 안에 몇 건을 하라는 식의 미션을 수행하면 더 높은 배달료를 받는다. 며칠 전에는 눈이 많이 온 덕분인지 시크릿 미션이라면서 아침부터 계속 알림이 왔다. 2건만 해도 배달비 외에 만 원을 더 준다는 것이었다. 결국 정해 놓은 시간을 넘겨 배달을 더 멀리, 더 많이 했고 작업실에도 늦게 갔다. 미션 수행은 시간제한이 있어서 무단횡단도 하게 되고 걸으면서 핸드폰을 보느라 주의사항을 놓치기도 한다. 다른 배달원이 거절하는 콜은 금액이 올라간다.
거대한 시스템 안에 들어온 느낌이다. 스마트폰만 있으면 누구나 들어올 수 있지만 쉽게 나가지는 못한다. 중독성이 빠르고 강하다. 이자용도 매일 1시간 정도, 3건만 하자고 생각하지만 멈추기가 어렵다. 꼭 달성하고 싶은 퀘스트가 주어지곤 한다. 하나의 배달을 마칠 때쯤 띠링띠링 띠링띠링하면서 다음 배달을 또 준다. 급한 앰뷸런스 같은 소리는 마음을 초조하게 만든다. 게다가 다음 목적지가 근처라면 수락을 안 할 수 없다. 때론 거리와 내용을 확인하기도 전에 반사적으로 수락을 누르게 된다. 거절할 수 있는 횟수도, 취소 가능 횟수도 정해져 있다. 배달 파트너도 등급이 있어서 많은 건수를 수행할수록 큰 보상을 받게 되고, 취소가 쌓이면 배정을 잘 안 준다.
얼마 전 이자용은 친구 전시회에 가면서 좀 일찍 나와 배달앱을 켜고 그쪽 방향으로 배달을 했다. 이제 걸음이 돈으로 환산되지 않으면 아쉽고 아깝다. 어느 날엔 작업실에서 퇴근하며 자기가 먹을 음식을 주문하고, 배달원이 되어 받아서 집으로 가기도 한다. 바로바로 금액이 쌓이니 처음에 산책삼아 하려던 마음과는 완전히 달라져 버렸다. 일단 배달앱을 켜면 끄기가 어렵고, 정신없이 자동적으로 움직이게 된다. 산책과는 한참 거리가 있는 ‘노동’이다. 앱을 끄면 비로소 너무 많은 생각들이 찾아온다.
배달이 늦으면 배달원을 탓하기 마련이지만 이제 이자용은 다른 가능성을 생각할 수 있다. 식당에서 아직 준비가 안 됐는데 미리 '조리 완료'를 눌러놓는 경우도 많다. 조리 완료라고 떠서 다급한 마음으로 뛰어갔는데 음식이 안 나와 있기도 한 것이다. 미션 수행 중에 10분 이상 기다리게 되면 화가 나고, 식당과의 불유쾌한 긴장 관계가 형성된다. 경험이 쌓일수록 특정 식당을 거르거나, 피자 여덟 판처럼 도보로 어려운 배달은 피하는 깜냥도 생긴다. 이건 '분 단위' 노동이다.
복병은 다른 곳에도 있다. 배달용 엘리베이터를 찾기 어려워 건물 관리인인듯한 사람에게 물었을 때 배달 시킨 사람에게 전화해서 알아보라는 퉁명스러운 답을 들었다. 엘리베이터 위치를 알려주는 게 그리 어려운 일일까. 이자용은 ‘잘 모르시나 봐요’ 한 마디를 참을 수 없었다. 다른 날에는, 1층에서 전화해 달라는 고객의 요청으로 건물 로비의 테이블에 잠시 배달봉투를 올려 두자 핸드폰을 꺼내기도 전에 ‘올려놓지 말고 들고 계세요.’라는 경비원도 만났다. 여기 놓고 가려는 게 아니라 잠깐 전화하려는 거라고 얘기했음에도 그는 이자용 앞을 지키고 서 있었다.
배달원이 아니었어도 그들이 그렇게 대했을까. 그저 자기 일에 충실한 사람들인 걸까. 모든 노동자는 다 같은 약자일까. 한두 시간 정도의 배달이 끝나면 질문이 찾아왔다. 배달원 이자용은 경비원의 무시에 설움과 분노를 느끼면서 ‘이건 내 본업이 아니고 난 예술가야.’라는 생각을 하기도 했다. 하지만 과연 예술가가 배달 노동자보다 더 나은가,라는 생각이 뒤따랐다. 평소에 작가님, 선생님 소릴 듣는 예술가 이자용은 배달앱을 켜는 순간 배달원이 되고, 예술가일 때는 알지 못했던 세상으로 이동하게 된다.
시간에 쫓기는 배달원이라고 매번 애틋할 수 없음도 안다. 배달 후에 사진을 꼭 찍어야 하는데 음식을 좀 멀리 내려놓아 사진이 현관과 한 프레임에 담기지 않으면, 사람들이 싫어할 걸 알면서도 발로 음식 봉투를 밀게 된다. 이자용은 음식이 식을까 봐 패딩 안에 품고 배달을 하는 사람이지만 동시에 분 단위 노동자로서 내려가는 엘리베이터의 문이 닫히기 전에 다시 타고 싶기 때문이다.
이자용은 수 년째 같은 리듬으로 살고 있었다. 일주일은 엄마의 간병인으로 고향에서, 일주일은 미술 작가로 서울에서. 간절한 마음과 성실한 태도로 변화시킬 수 없는 것들 앞에서 무력함을 느꼈다. 우울감이 누적되고 있었다. 경제적인 이유였다면 미술 작가로서 좀 더 익숙하고 수입이 높은 일을 할 수도 있었다. 하지만 지금의 루틴에서 벗어나는 게 필요했고, 작은 성취감도 느끼고 싶었다. 환기가 필요했다.
물론 단순 노동을 하면 잡념이 사라질 거라는 기대는 어긋났다. 아니, 배달은 개운함을 주는 단순 노동이 아니었다. 사람들은 궂은날에도 실내에서 몇 번의 터치만으로 다양한 음식을 주문하고, 30분 정도 기다리면 먹을 수 있다. 배달원이 언제 출발해 어디쯤 오고 있는지 경로도 지켜볼 수 있다. 이자용도 그 편리한 서비스의 이용자였다.
하지만 배달원은 노동자로서, 이동하면서도 끊임없는 알림음을 놓치지 않아야 한다. 이어폰과 보조배터리는 필수다. 지시사항이 있고, 미션이 있고, 시간제한이 있고, 여러 룰과 변수들이 있다. 뒤를 돌아볼 겨를 없이 밀려오는 콜을 처리하는 데 신경이 집중된다. 스마트폰에 매달려 건당 3천 원으로 치환된 일은, 쌓이는 대신 삭제된다. 작업을 하면서는 분명 무언가 쌓이는 느낌이 들었다. 작품들을 보며 몇 년 전과 지금의 작업을 비교해 볼 수 있고, 서사가 만들어진다. 이자용은 관찰과 생각을 할 수 있는 예술가로 지낸다는 사실에 새삼 안도한다.
이자용은 전에 방송에서 본 한 라이더를 이제 와 생각한다. 그는 집에서 아이들과 밥을 먹을 때도 알림을 끄지 못했다. 파편화된 시간 속에서 어떤 생각도 하기 어렵고, 많은 시간 배달 일을 한 이후엔 생각이라는 걸 하기가 싫어진다고 했다. 하루 한두 시간 정도지만, 노동자가 되어본 적이 없었던 예술가 이자용은 소득세와 산재보험료를 내는 배달원이 되어 그들을 헤아린다. 배달을 통해 여러 질문들을 만난다. 새로운 길에 발을 디딤으로써 이자용의 세계는 달라지고, 확장되고 있다.
(2026년 1월, 이자용 작가를 인터뷰하여 레터에이에 기고한 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