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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진영 May 31. 2016

[딩크의 학교문제집]

5. 내가 할 수 있는 것, 할 수 없는 것

교사가 된 이후로 많은 일들을 겪었다. 그 일들은 종류도 다양하다. 학교폭력일 수도 있고 그저 내게 버거운 상황이었을 수도 있다. 그리하여 이번 시리즈 제목은 [딩크의 학교문제집]이다.

내 교직경력은 <56655-6652-전담5> 이다. 10년을 하면서 기억나는 일들, 그당시 적어놨던 것들(안적었던 것도 많겠지만...)과 떠오르는 수많은 에피소드들을 정리해서 시리즈로 적어보려 한다.

이렇게 작성하다 보면 혹자는 내 경험을 공감하거나 혹자는 내가 실수하고 잘못한 부분에 대해 비판도 할 지 모르겠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올리는 것은 분명 도움이 될만한 부분들이 있을 것이기 때문이라 믿는다. 수많은 간접경험을 통해서 나와 같은 일을 반복하지 않거나 혹은 위안을 얻기를 바라며 시작해보련다.

ps. 연도의 순서는 왔다갔다 할 수도 있을 듯 하다.





[딩크의 학교문제집] 5. 내가 할 수 있는 것, 할 수 없는 것


 #Prologue. 


 내가 좋아하는 만화 중 굿모닝 티처가 있다. 학생일 때 이 장면을 보고서는 교사가 된 다음 더욱 많이 생각났다.

 내가 가진 관심을 100이라 할 때 그것을 20명의 아이에게 똑같이 5를 줄 것인가? 아니면 8이 필요한 아이에게 8을 주고 3만 주면 되는 아이에게 3만 줄 것인가? 3만 필요한 아이에게 5의 관심을 주는 건 2만큼 낭비 아닌가? (사실 관심을 수학으로 나누는 것도 웃긴 일이지만 말이다)  이건 지금까지도 풀지 못한 난제다.


  2004년 첫 해. 9월 발령을 받고 맡은 그 반의 아이들은 다양했다.


 #1. 전 이쁘니까 공부 못해도 되요.  

 그 아이(지희-가명)는 꽤 말랐다. 그리고 염색을 하고 다니며 이쁜 옷만 입고 다니려는 아이였다. 웃는 모습은 꽤 이쁘고 보기 좋은 여자 아이였는데. 문제는 공부를 너무 못했다. 특히 수학은 너무 못해서 수학을 따로 가르치고 싶었다. 일단 아이에게 물어봤다.


" 선생님이 널 수학을 가르쳐 주고 싶은데 말이야."

" 선생님, 저는 이뻐서 공부 안해도 괜찮지 않아요?"

"....." 

 그리고 나서 겨우 설득을 하고 성은이와 같이 수업을 가르치기로 했다. (http://educolla.sharedu.kr/?r=educolla&c=tuesday/02&p=2&uid=6066 의 그 아이) 문제는 하나 더 있었다.  아이들을 남겨서 지도해야 하는 거라서 지희의 어머이와 어렵사리 통화가 되었다.


 "어머니 제가 지희를 좀 가르치고 싶은데요."

"선생님 우리 애 공부 못하죠?"

"아... 그게...."

"저는요. 우리 애 학교 보내는 거로 만족해요. 할 일 다 했다고 생각해요."

",,,,,,,"


사실 그 말에 큰 분노를 느꼈다. 




'아이는 공부를 하나도 못하는데 부모가 할 말이야?'


아무튼 그렇게 남겨서 공부를 시켰다. 2학년 것부터 진행했던 것으로 기억하는데 그것도 겨우겨우 가르쳤다. 아이가 잘 모르는 것도 있었지만 나도 시간이 많지는 않았기에;;;;; 한 세번 정도 진행했을까? 목표에 비해 결과물은 초라했다. 



#2. 너는 맞아야 고쳐질 거 같다. 


 그 당시의 나는 칼이었다. 



꽤 날선 칼이라서 규칙은 정하면 반드시 무슨 일이 있어도 지켜야 했다. 내가 하는 약속도 무슨 일이 있어도 지켜야 했는데 그 규칙을 잘 지키면 아마도 모범생에서 성인 정도가 될 수 있었을 거다. 돌이켜 생각해보면 그건 너무나도 빈틈없는 규칙이었다. 


 그러다 보니 아이들이 조금만 규칙을 어겨도 규칙을 강조했고 아마도 아이들은 숨이 막혔을 거다. 


그러던 어느날 . 그 어떤 규칙으로도 애를 잡을 수 없게 되니 나는 그 아이 앞에서 부모님에게 전화를 했다.


"안녕하세요. 저는 A의 담임인데요. 이 아이를 아무리 지도해도 통하지 않아서 더 이상 제가 할 방법은 때리는 것 말고 다른 방법은 없는 거 같은데요. 어떻게 할까요?"


그 당시는 이렇게 물어보면 다 때리라고 할 때 였다. 하지만 실제로 때리지는 않고 그냥 집으로 보내버렸다. (집에서 혼나라고.) 


아이는 벌벌 떨며 집에 가고 나는 다음날이면 괜찮아진 아이를 보고는 수업을 하곤 했다. 


#3. SEXY 귀걸이


 하니(가명)는 남자학생들 사이에서 인기가 많은 학생이었다. 꽤 말랐고 키가 컸으며 머리는 항상 묶고 다니는 데 피부는 까무잡잡한 아이였다. 녹색 나시티에 청바지를 입고 특이하게 SEXY라고 씌여 있는 귀걸이를 항상 하고 다녔다. 내가 9월에 발령받았었는데 그때에도 그랬고 겨울이 될 때 까지 그 차림을 항상 반복하고 다녔다. 이 아이를 보며 귀걸이는 좀 떼게 하고 싶었다. 

 그래서 귀걸이를 오래 하면 구멍이 넒어진다는 정보를 어디서 듣고는 그런 내용들만 찾아서 아이들에게 보여주었다. 그러면서 나중에 귀의 구멍이 아프리카 부족처럼 될 거라 이야기를 했다. 아프리카 부족은 큰 귀걸이를 계속 차고 다녀서 저렇게 넓어졌다고 말이다. 

 그 다음날부터는 그 아이가 귀걸이를 하고 오지 않았다. 나는 그 모습을 보며 꽤 만족스러워 했던 듯 하다.


#4. 몇대 맞을래? 


 그 해에 우리반에는 씨름부 학생 한명과 운영위원장의 아들이 있었다. 이 둘은 꽤 이런저런 말썽들을 부렸다. 

성은이의 가방을 짓밟기도 했고 남학생들을 거느리려는 시도를 하기도 했었고 둘이서도 티격태격 했다. 아마도 둘 중 누가 더 대단한가를 따져보고 싶었던 것처럼 보이기도 했다. 



아마도 성은이의 가방을 짓밟았던 날이었던거 같다. 그날 나는 몹시도 화가 났고 내가 무시당한다고 생각을 했다. 하지만 아이들을 혼내기 전에 나는 관대한 교사라고 생각했기에 아이들에게 선택권을 주었다.



 " 지금 너네를 보니까 안때리면 안될거 같다. 맞을래? 안맞을래?"

"맞을게요."

 "(어쭈? 이놈들봐라?) 몇대 맞을건데"

"두대요"

 마포자루, 빗자루, 지시봉을 꺼내 놓으며 물었다. 

 "좋아 그럼 뭐로 맞을래? (이녀석들 한번만 봐달라고 하지)."

 "(마포자루를 가리키며) 이거요"

 "좋아. 후회하지마"

 라고 하며 아이들을 두대씩 때렸다. 마포자루는 나무가 아니라 알루미늄 같은 것이었는데 때리다 보니 휘어져서 펴려고 반대쪽으로 다시 때렸고 아이들은 내 기억에 두번다시 내가 하는 말을 어기지 못했다. 

 

 그런데 문제는 아이들이 졸업하고 한3년 정도 뒤에 그때 때린 아이를 만났을 때다.  아이들을 데리고 중학교 배정일에 갔는데 그 학생이 있었다. 나와 그 아이는 서로 반가워 인사를 하며 대화를 주고 받는다.

"와! 반갑다. 잘지내지?"

"그럼요 선생님~~~ 아.. 그때 참 재미있었어요. 근데 맞기도 많이 맞았는데.... 뭐 억울한 것은 있었지만 원망은 안해요."

"...... 그래.. 그런데 그때 니가 맞을 행동은 했어..."

집에 와서 자려고 누웠는데 잠을 제대로 이룰 수 없었다. 나는 정당한 이유가 있었지만 그건 나에게만 정당한 거다. 학생에게도 정당하다고 강요할 수 없었다. 


#5. 스스로에게 묻는 질문. 만족해? 


 그당시 때리고 나서 나는 무척 슬펐다. 그날 꽤 우울했다. 내가 싫어하던 모습을 나는 하고 있구나 하고 생각했다. 하지만 스스로 위안을 삼은 것도 있었다. 

 '그래. 나는 아직 이거 말고는 아이들을 다룰 수 없어. 그러니 나중에는 잘 다룰거야.'

그렇게 체벌은 내 무기가 되었고 나는 스스로를 설득하기 시작했다.

'그거봐. 한번 때리고 나니 아이들이 전부 말을 잘 듣잖아."


그 해. 가출했던 성은이를 찾아다니며 많은 고생을 했다. 내 모든 에너지는 성은이었고 다른 아이들은 논외였다. 하지만 다른 아이들도 많은 관심이 필요한 아이들도 있었다는 걸 그 당시 나는 학년 말이 되었을 때 겨우 알 수 있었다. 


 하지만 내 신규생활이 만족스러웠을까? 

 그냥 열심히 했다는 것에서는 스스로 인정할 수 있겠다. 하지만 만족스러운가에 대해서는 다른 문제다. 그 당시 나는 사용할 수 있는 방법도 하나였고 사용하고 있는 방법도 하나였다. 그래서 아이들에게 강요하고 강제했다. 


#.Epilogue

 2004년 신규였던 나는 조금은 느슨하셨던 선생님 뒤에 담임이 되며 엄격하게 내 입맛에 맞게 바꾸어 가려고 했다. 그러면서 내가 모든 걸 할 수 있을 거라 믿었다. 모두 내 진심을 알면 감동할 것이고 그렇게 되면 내 교육의 방법은 큰 효과가 있을 거라고 봤다. 

 지금 생각해보건데 이건 꽤 과신이고 만용이었다. 나는 모든 것을 할 수 없었고 한계가 있었다. 그 한계를 전혀 생각하지 못하고 모든 걸 다 내가 이끌고 가려다 보니 지금 생각해 보면 너무나도 낮뜨거운 실수들을 많이 했다. 너무나도 내 자신에 대한 확신을 했고 내 교육방법에 대한 확신을 가졌다.  오히려 너무 다 하려고 하지 말라는 조언들에 화가 났다. 

 "저 사람들은 교사가 지금 무슨 말을 하는 거야?"

 너무나도 내 자신이 강했다. 



그당시 나에게 가장 큰 문제는 

나는 틀려서는 안되고 절대적인 존재여야 한다고 생각했던 것이다. 그러다 보니 빈틈을 보이기 싫었고 많은 노력을 했다. 문제는 빈틈없이 보이는 것은 한달 정도면 모르겠으나 반년, 1년을 유지하는 것은 쉬운 일은 아니라는 것이다. 

 아이들에게 다 지키면 성인이 될 수 있는 규칙(지킬 수 없는 규칙)을 주고선 이렇게 강요했다. 

 "나는 너희가 이 규칙을 다 따르길 원해. 물론 힘들겠지만 다 하면 너희에게 보람이 될거야!" 

 내가 간과했던 것은 사람은 짧은 기간(1년정도)에 만들어 진 것이 아니라는 것이다. 교사였던 나는 오랜시간 동안 내가 익힌 것을 흡사 한 번에 한 것이라고 착각을 한 듯 하다. 그래서 당연히 해야 하는 것들이라 생각하고 그것을 아이들에게 지속적으로 강요했다. 당연히 아이들은 그것을 따라하기 어려웠고 그러면 나는 꽤 무서웠다. 한번 실수하면 경고를 주지만 두세번 실수하면 반드시 처벌했다. 

 만약 지금의 상황에서 그때로 돌아간다면 선배들에게 조언을 구하고 다른 방법을 찾아보지 않았을까 싶다.  

그때에 만족하냐고? 아니. 절대로... 

 내가 할 수 있는 것이 있었고 할 수 없는 것들이 있었다. 

 나는 아이들을 가르쳐보려고 노력할 수는 있지만 아이들을 천재로 만들 수는 없다. 

 나는 아이들이 질서를 잘 지키도록 알려줄 수 있지만 아이들을 성인(聖人)으로 만들 수는 없다. 


 그때의 나는 할 수 있는 것에 집중해야 했으나 할 수 없는 부분에 많은 욕심을 내버렸다. 


 어느날 드라마를 봤다. 학교2014였나? 거기 나온 내용의 일부분인데 그때 신규였던 내가 봤다면 큰 도움이 되었을거 같다.(어쩌면... 저 사람은 교사가 아니라고 비난했을 수도 있지만..)

https://www.youtube.com/watch?v=sb6878vIF9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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