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이지 않는 기후

우리는 지금 무엇을 못 보고 있을까?

by 권영주

봄은 전혀 알아차리지 못하다가

길 가에 피어난 들꽃이나, 흩날리는 꽃가루에 귀신같이 반응하는 알레르기로 문득 알아차린다.

우리는, 일상 속에서는 분명히 드러나는 징조가 있어야만 알아차리는 존재들이다.


기후변화도 그렇다.

1997년 교토에서는 이미 지구온난화의 심각성을 지적하고 우리의 변화를 요구하기 시작했지만,

온난화 경향은 산업화 이후 150년째 꾸준히 진행 중이다.


아이러니하게도, 정작 우리의 삶 속에선 기후위기가 잘 ‘보이지’ 않는다.

그 이유는 단순히 무관심이나 무지가 아닐지도 모른다. 어쩌면 지금의 기후위기는 "기온의 문제가 아니라 가시성(visibility)의 문제"일 수 있다. 그리고 이 가시성을 둘러싼 전쟁은 우리가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복잡하고 정치적이다.




보이는 기후 vs 보이지 않는 기후


기후변화로 인한 위기(risk)는 크게 두 가지 얼굴을 가지고 있다. 물리 리스크는 눈에 보이는 재난이고, 전환 리스크는 구조적 변화로 인한 보이지 않는 부담이다


1. 물리 리스크(Physical Risk)

기후변화가 불러온 직접적인 영향으로 발생하는 위험으로 폭염, 홍수, 가뭄, 산불 등 극단적인 재난은 눈에 보이고, 몸으로 느껴지는 위험이다. 뉴스 보도로도 접할 수 있고, 경험적으로 “이상기후가 심해졌다”는 공감대를 형성하기 쉬운 유형이다. 당연히 최근에 일어나는 모든 자연재해들이 기후변화의 탓만으로 돌릴 수는 없지만, 우리에게 위협으로 다가오는 분명한 '징조'중 하나이다.


2. 전환 리스크(Transition Risk)

기후변화는 앞으로 우리의 삶을 탄소 중립 경제로 바꾸도록 부담을 가한다. 이는 지금까지 잘 굴러가던 우리 사회 속 많은 부분이 변해야만 함을 의미한다. 화석연료의 감축, 탄소세 도입, 산업 구조 조정 사회·경제적 변화(전환 리스크)는 우리 눈에 잘 보이지 않는다.


전기요금이 오르면 불편하긴 한데, 이게 왜 오르는 건지, 기후 정책과 어떤 연관이 있는지 일반 시민 입장에서는 알기 어렵다. 문제는 바로 여기 있다.

우리가 느끼는 불편함은 존재하지만,
그 불편함의 ‘원인’이 보이지 않으니, 기후위기의 본질도 흐려지기 쉽다.


그리고 이 '본질 가리기'를 정치적으로 활용하는 대표적인 사례가 바로 미국 보수주의자들, 특히 트럼프의 기후 정책이다.


기후의 가시성을 둘러싼 논쟁 – 5가지 사례


1. 안개를 걷어냈던 법, 다시 흐리게 만들려는 시도 – ‘지역 안개 규제’

1999년부터 미국 국립공원의 시야를 개선하기 위해 미국 환경보호청(EPA)이 도입 "지역 안개 규제(Regional Haze Rule)"는 26년 동안 스모키 마운틴, 그랜드캐니언, 요세미티 같은 공원의 공기질을 대폭 개선했다. 2023년까지 93%의 국립공원에서 가시성이 개선됐고, 관광, 건강, 생태적으로 긍정적 효과를 남겼다.

그런데 2025년 트럼프 행정부는 환경 규제의 완화를 추진하려 하고 있다. 산업 부담을 이유로 내세우지만, 실제론 기후 정책 전반의 무력화라는 큰 흐름의 일환으로 보인다. 이 흐름은 ‘공기의 질’ 문제가 아니다. 공기가 뿌예지면, 자연에 대한 감각도 뿌예지고, 기후 현실도 보이지 않게 된다.


2. 기후 과학 무력화 – NOAA-프린스턴 협력 축소 시도

2025년, 트럼프는 NOAA(미국 해양대기청)와 프린스턴대 간 70년간 지속돼 온 기후 연구 협력에 자금 중단하려 한다. 이 협력은 지구 기후 모델링, 해양 순환 분석, 극한 기후 예측의 핵심 기관이었고, 전 세계 기후 정책의 근거 자료로 쓰여 왔다. 보수 진영은 이 연구를 “편향된 엘리트 과학”으로 공격하면서, 한편으로 기후 정책의 정당성을 약화시키기 위한 "데이터 가시성 제거 전략"으로 읽힐 수 있다. 즉, 과학을 증거를 보유한 기후변화를 부정하지 않아도, 과학을 보이지 않게 만들면 대응력도 무뎌지기 마련이다.


3. 기후의 소비 흔적을 보여주는 콜로라도의 주유소 경고문

반대로, 기후 위기를 드러내려는 시도도 있다. 콜로라도 주의회는 2025년, 주유소 가스펌프에 “화석 연료 사용이 기후 변화에 기여한다”라는 경고문 부착 법안(Colorado labelling bill)을 발의했다. 마치 흡연 경고문처럼 일상 속 행동과 기후의 연결을 시각적으로 드러내는 전략이다. 석유업계는 격렬히 반발했지만, 환경단체와 시민들은 “이제야 내 소비가 기후와 연결된다는 걸 실감했다”라고 받아들이고 있다.

기후위기의 ‘가시성 디자인’이 어떻게 감각을 바꾸고, 감각이 행동을 이끄는지 보여주는 사례이다.


4. 기후 불안 지도 – 보이면 불안하고, 그래서 행동하게 된다

Yale의 기후 커뮤니케이션 연구에 따르면, 미국 도시(샌프란시스코, 뉴욕, LA 등)에서는 80% 이상이 기후 변화에 대해 불안을 느끼고 있다. 반면 내륙 보수 지역은 40% 미만이 기후 불안을 인지한다. 여기서 알 수 있는 사실은, 기후 피해의 심각도와 불안 정도가 꼭 일치하지 않는다는 거다. 이는 곧, 정보, 정책, 교육, 미디어를 통해 기후가 얼마나 보이는가에 따라 감각이 달라지고, 결국 행동으로 드러나게 된다.


5. 샌디에이고: 기후가 보이는 도시의 불안, 그리고 준비

악시오스(Axios)는 2025년 4월 보도에서 샌디에이고 시민의 69%가 기후 변화에 대해 우려하고 있다고 전했다. 이는 미국 평균보다 높은 수치다.

왜일까? 샌디에이고는 해안 도시로서 기후 영향에 노출될 가능성이 높고, 기후 행동 계획이 지역 차원에서 시행되며, 교육과 미디어를 통한 기후 정보의 가시성이 매우 높은 도시이기 때문이다. 즉, 샌디에이고는 위험해서 불안한 도시가 아니라, 불안을 객관적으로 전달해 위험을 대비하려는 도시이다.



미국 보수주의의 전략: 부정 대신 가리는 방식

이제 여기서 핵심 질문으로 돌아가 보자. 미국 보수주의자들은 왜 기후정책을 싫어할까?

그들은 단순히 “기후변화는 없다”라고 말하지 않는다. 대신 기후를 보는 창을 흐리게 만들거나, 시야에서 제거하는 방식을 사용한다.


탄소세는 "경제 압박" 프레임

과학은 "편향된 정치 도구"

규제는 "자유에 대한 침해"


이는 기후 정책에 대한 반발이 아니라, 차별적으로 제기된 억압을 제거한다는 정체성, 감각, 서사에 대한 저항이다. 그리고 이 흐름은 기후 정책이 정당성을 얻는 방식을 무너뜨리게 된다. 시민이 "기후가 안 보이는데 왜 불편해야 해?"라고 느끼게 만드는 것이 핵심이리 할 수 있다.


시야를 설계하는 시대

우리가 직면한 기후위기는 단지 온도의 문제가 아니라, "무엇이 보이고, 무엇이 안 보이도록 설계되었는가"의 문제가 되었다. 이제 우리는 단순히 온실가스를 줄이는 기술이나 정책을 넘어서, 기후를 ‘어떻게 보이게 만들 것인가’를 고민해야 할 시점에 온 것이다.


우리는 무엇을 알고 있고, 무엇을 모르고 있는가?

우리의 일상은 기후위기를 어떻게 감추고 있는가?

정책은 가시성을 높이고 있는가, 아니면 낮추고 있는가?


기후행동은 시야 설계의 문제가 되었다. 그리고 그 시야를 설계할 책임은, 지금 이 글을 읽고 있는 우리 모두에게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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