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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억이 닿는 작은 세계

우리의 이야기가 시작되는 곳

by 장원희

생각이 많은 편이다. 쓸데없는 생각도, 보통은 무신경하게 지나갈 일에 관한 생각도 말이다. 이것을 누군가와 나누기엔, 눈치도 빠른 편이다. 다른 이는 관심 없을 생각을 말로 꺼내놓기보다는 기록을 택했다. 글쓰기가 익숙하지 않았을 때였기에 짧게 메모장에 적었다.

처음 무거운 생각들을 정리해 놓던 메모장은 기억하고 싶은 순간이 생길 때마다 열어보게 됐고 어느새 일상의 소중한 추억들이 함께 남게 되었다.


어느 날 문이 닫히는 중이던 승강기를 급히 잡은 적이 있었다. 안에는 대여섯 명의 중년 여성분들이 계셨다. 하필 지하철 승강기였던 터라 바로 닫히지도 않아 무척 죄송한 마음에 거듭 사과를 드렸다. 돌아온 것은 너무나 따뜻한 배려였다. 내가 무안하지 않도록 “문 닫히는 30초가 참 짧은 시간인데 가만히 있으니 길게 느껴지나 봐, 그래서 거울을 달아놓은 거라잖아요~”라는 다정한 대화와 함께 따스하게 웃어주셨다.

모두 그 자리에서 처음 만난 사람들임에도 문이 열려 헤어질 때 서로 살갑게 웃으며 잘 가요, 인사하던 장면이 아직도 눈에 선하다. 그 짧은 몇 분 동안 얼마나 큰 온정과 존경스러운 삶의 태도를 느꼈는지, 내리자마자 메모장을 열었다. 승강기에서 받은 배려와 삶의 여유, 한 줄이 추가되었다.


메모들은 나를 살아가게 한다. 브런치에서 글감으로 사용한 소재도 대부분 이 메모에서 가져왔다. 메모장 속 ‘멋대로 하는 사과의 이기적임’, ‘잘 우는 것에 대해’ 등이 내 글의 원본이었다.

이 짧은 글귀들은 나의 세계에만 머물러있었다. 그저 내게 위안을 주고, 하루를 버티게 하는 힘을 주었을 뿐이었다. 그러나 이제, 브런치와 함께 하며 이 모든 것을 나눌 수 있게 됐다.


모두가 그렇듯, 한 편의 글을 쓸 때 참 많은 생각을 한다. 나는 어떤 말을 하고 싶은 걸까, 끊임없이 생각한다. 그러다 보니 더욱 누군가의 글을 읽을 때도 짧은 단어 하나에도 참 많은 생각이 담겨 있겠지 싶어진다. 창작 당시의 작가 분을 상상하는 건 즐거운 일이다. 더 가까이서 글을 느끼게 된다.


나는 특히 내 생각을 절대 강요나 주장처럼 느껴지게 하지 않도록 애쓴다. 어떤 정답 없이, 내 글을 통해 일상에서 가볍게 넘어갔을 소재를 나와 함께 생각해보았으면 했다. 글을 읽어주신 분들과 다양한 생각과 경험을 나누는 게 참 즐거웠다. 메모장에만 잠들어있던 기억을 꺼내어 나와, 다른 분들의 이야기를 나눌 수 있게 만든 이 브런치가 무척 기꺼웠다.


내 글은 오로지 나만 읽었다. 그러나 이젠 아니다. 처음으로 누군가가 내 글을 읽는다는 사실이 낯설고 떨렸으나, 이제는 기대가 된다. 금요일은 원래 신나는 요일이라지만, 내겐 더욱 그랬다. 다음 날인 토요일이 연재일이기 때문이었다. 작은 생각들을 모두와 나누는 일이 참 기쁜 일이라는 걸 알았다.


나는 수시로 새 글을 본다. 그 글에서 다른 분들의 생각과 마음을 읽는 것이 즐겁다. 때로는 내 생각과 똑같은 글을 만나 무척 반갑기도 하고, 때로는 다른 관점 속에서 깨달음과 더 깊은 성찰을 갖기도 한다.


모두와 글로 이어져있다는 기분이 어떤 것인지 처음 알았다. 이 기분은 또다시 글을 쓰게 만드는 원동력이 되었다. 사소한 생각들, 감정들을 기록하며 언젠가 글로 담아 브런치를 통해 다른 사람들과 이를 나눌 생각에 어린아이처럼 즐겁다.

그렇게 또 한 줄이 메모장에 쌓인다. 사소한 문장 하나가 누군가의 마음에 닿을 수 있다는 걸 알게 된 후, 나는 더 자주 기록하게 되었다. 오늘의 조용한 마음도 언젠가 누군가와 나누게 되기를 바라며, 나는 또다시 글을 쓴다.


조그만 메모들이 작은 이야기로 자랄 수 있었던 건, 매주 이 글을 반겨주는 브런치가 있었기 때문이다. 서로의 일상이 머물다 가는 공간. 때로는 위로가 되고, 때로는 삶의 속도를 잠시 늦추게 하는 곳. 브런치는 나에게, 글을 쓰는 사람을 넘어서 ‘작가’라는 꿈의 가능성을 느끼게 해 준 첫 무대였다.
10년 동안 이런 시간을 쌓아온 장소에, 나의 조용한 문장 하나를 더할 수 있어 행복하다.

'작가'란 사실 내겐 아직 익숙하지 않은 호칭이지만, 앞으로도 이 공간에서 오래도록 생각을 나누며, 그 꿈을 천천히, 묵묵히 이뤄가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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