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0대 부부, 발리에서 우당탕탕 사업하기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가장 어려운 것은 사람 관리

by 이니두아



25년 4월 사업장을 오픈했다.

레노베이션을 시작했을 때 그렸던 모습에 따라오지 못하는 결과물이었지만,

샤워실과 짐 보관이라는 ‘기능’에 충실했으니 됐다는 팩트와 자기 위안을 번갈아가며 오픈한 우리의 공간!


처음부터 가장 어려웠던 부분은 ‘직원 채용’이었다.

사업이 처음인데 심지어 해외에서 시작하려니… 일단 나 자신의 사람 보는 눈부터가 못 미덥다.

또 지난 공사기간 동안 건축업자, 소위 tukang이라고 하는 노동자들 등에 하도 대여서 ‘인도네시아인과의 관계’에 위축되어 있는 상태였다.


두 달이라는 짧은 시간이지만, 인도네시아에서 사업할 때 겪는 인사문제 클리셰의 50%는 겪은 것 같다.


다만 이곳 사람들의 특성이 원래 이렇다며 부정적으로 이야기하는 미디어를 보며 미리 겁을 먹었음에도 불구하고,

막상 직접 겪으니 정말 매 번 신선하게 놀라웠다. (예를 들자면 면접 약속시간 10분 지났는데 안 와서 연락해 보니 ‘아 몸이 안 좋아요.’를 시전 한다던가 출근을 약속해 놓고 갑자기 고향에 일이 생겨서 못 오게 됐다는 등의 핑계 잔치들..)


그러던 중 정말 감사하게도 나보다 성실하고 책임감 있는 직원들을 만나게 되었다. (땡스 갓.)


이들이 중심을 잡아주고, 오퍼레이션을 할 수 있는 직원들만 충원하면 되겠다며 점점 안정감을 느껴가던 어느 날…

나의 최애 직원이 그만둬야겠다는 말을 전해왔다.


정말 의지가 되는 직원이기 때문에 남편과 ‘만약에‘ 라며 가정법 대화를 할 때마다

‘만약에 Pak A (Pak은 인도네시아에서 남성을 높여 부르는 호칭이다. 해당 직원 이름의 앞글자를 따 Pak A로 표기하겠다.)가 그만둔다고 하면 어떡해?‘라는 주제를 뱉었다가 상상도 하지 말자며 말을 주워 삼킬 정도였다.


그의 사직 이유는 고향인 수라바야에 돌아가서 신장 관련 투병을 하고 있는 형님을 돌봐야 한다는 것이었다. 사실 한 달 전 Pak A의 아버님도 별세하셨는데, 그 일 이후로 어머님이 다 같이 모여서 살며 Pak이 형님을 모셨으면 좋겠다고 강력히 요청하셨단다.


모든 직원들과 언젠가는 헤어지겠지만, 이렇게 빨리 헤어지게 될 줄은 몰라서 정말 충격적이고 당장 그의 부재가 두려워졌다.

그는 ‘정직함, 성실함, 동료들을 돕고자 하는 마음, 일을 찾아서 하는 태도와 그러면서도 생색내지 않는 모습‘을 모두 갖춘 보기 드문 인재였다.


더군다나 청결관리는 어찌나 내 맘에 쏙 드는지…


가족의 일이니까 잘 보내줘야 한다는 것을 알면서도 당장 내가 이만큼 만족할만한 직원을 다시 만날 수 있을까?라는 생각에 사로잡혀 그의 안위가 아니라 나와 사업장의 미래만 걱정하게 되는 내가 싫기도 했다 허허. 사람은 어쩜 이렇게 이기적일까


그는 우리에게 약 3주의 시간을 주었고, 그동안 우리는 거의 이별을 앞둔 연인 같았다.

괜히 혼자 아련해져서는 이렇게 짧게 있을 거면서 왜 나타나서 우리를 행복하게 만들었냐는 둥, 이제 나 눈 높아져서 어떡하냐는 둥 직간접적으로 탓을 하기도 했다.


원망과 체념, 인정을 반복하며 약속된 3주의 시간이 지났고, 그동안 생각이 조금은 바뀌었다.


사실은 이런 말을 하고 싶었다!

아무것도 갖춰진 것 없을 때 Pak이 있어서 매장이 점점 깨끗해졌으며, 오시는 고객님들마다 깔끔해서 좋았다는 후기를 남겨주셨습니다.

현지인 사이에서 복잡하고 어려운 일이 있을 때 경험 많은 당신 덕분에 쉬이 넘어갈 수 있었습니다.

처음 겪어보는 단체 손님이 있을 때, 먼저 흔쾌히 남아 돕겠다는 당신 덕분에 성공적인 하루를 보낼 수 있었습니다.

당신이 성실하게 오픈을 해주어, 매일 한 시간이라도 더 잘 수 있었습니다.


짧은 언어 탓에 이 마음을 다는 전하지 못했지만, 현지인에게 상처받아있던 우리를 위로해 준 Pak에게,

또 그를 보내주신 하나님께 다시 한번 감사하다.


다시 만 날 그날까지 그도 우리도 모두 안온한 일상 속에서 더욱 멋진 사람이 되어있기를 진심으로 바라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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