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목에 남은 바시 끈, 그리고 깨지 않는 꿈

한 대학생의 라오스 봉사기

by 인크짬


핸드폰 갤러리를 넘기다 우연히 라오스 아이들과의 해 맑은 사진을 마주쳤다. 유독 추운 요즘이라 그런지, 뜨거웠던 그해 여름, 라오스의 온기가 문득 그리워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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몇 년 전 나는 대학의 저는 국제봉사단 ‘뽀드득’ 조의 조장으로 라오스 시골의 한 초등학교에 다녀왔다. ‘뽀드득’이라는 팀명처럼 건강과 위생에 초점을 두어, 아이들의 손과 마음을 깨끗하고 밝게 닦아주고 싶다는 포부로 떠난 길이었지만, 오히려 맑게 닦인 건 내 마음이었다.


언어의 장벽을 넘어, 눈빛과 진심만으로 소통했던 그 뜨거웠던 날들의 기록을 이곳에 남긴다.


말이 통하지 않아도 마음이 통했던 그 시간들. 그때 적어두었던 서툰 기록을 다시 꺼내어 본다. 그곳의 아이들이 여전히 건강하고 행복하길 바라는 마음으로.





한 학기 동안 매주 토요일의 만남, 등반대회, 응급처치교육 등. 꽤 길었던 준비기간. 라오스를 갔다 와서 긴 잠을 자고 다음 날 일어났을 때, 내 손에 걸려있는 많은 바시 끈들을 보면 분명 라오스에서의 봉사는 현실이었는데 나는 왜 꼭 따듯한 꿈을 꿨던 것만 같을까? 웃는 얼굴로 내 이름을 부르며 다가와주던 나리사, 콩케오, 펜통, 페오의 얼굴이 생각나고 처음엔 무뚝뚝했지만, 같이 시간을 보낼수록 배시시 웃던 문싸이까지. 분명 내게 일어났던 일들은 사실인데, 자꾸만 엄청난 꿈을 꾼 것만 같다. 이는 아마 내가 사람들이 쉽게 겪기 어려운 엄청난 경험을 했다는 뜻이리라. 내가 사는 이곳에서 생각하기 어려운 다른 환경에서 살아가는 이들을 마주했기 때문일 것이다. 아침잠이 많은 내가 아침 5시 30분에 일어나 나갈 준비를 하고 버스에서 꾸벅꾸벅 졸며 아이들을 보러 향했던 그 나날들은 내 마음 속에서 잊혀지지 않고 오래도록 남을 것이다.

image.png 아이들이 마지막 날에 묶어준 바시끈들.

나는 초등학생 무렵부터 혼자가 아니라 ‘함께’ 행복한 세상을 꿈꿔왔다. 내가 6학년 일적에 프랑스 파리에서 민간인을 대상으로 한 테러가 일어났다. 무고하게 희생된 시민들을 보며 이 세계 모든 이들과 ‘함께’ 행복하게 살아가고 싶다고 생각했다. 내가 한 번도 만난 적은 없지만, 뉴스 속에서 슬퍼하는 시민들의 슬픔은 내 슬픔이었다.


대학에 입학하자마자 봉사단에 들어왔고, 어느덧 2년 반이라는 시간 동안 쉼 없이 봉사를 이어왔다.

봉사는 그저 돕는 것, 물건을 주는 것과는 큰 차이가 있다. 직접 사람들을 마주해야 하고, 특히나 이번 봉사단에서 사람들과 마주하며 직접 소통하는 것은 값진 경험이었다.


하지만 현지에서 도착해서 수업을 시작했을 때, 예상치 못한 변수가 생겼다. 바로 현지 통역을 도와주던 친구의 부재였다. 현지 통역사 친구는 점심 식사 시간부터 복통을 호소했다. 오전부터 카메라가 너무 많아서 힘들다고 말한다거나, 수업시간임에도 나가서 통화를 하였다. 심각한 표정이었기에 들어와달라고 단호하게 말하기는 어려웠다. 그렇게 오후에 통역사 친구는 봉사를 합류하기 어렵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통역사 친구에 대한 걱정과 함께, 우리 수업에 대한 걱정이 밀려왔다. 결국 우리는 고민 끝에 뽀드득 2팀과 합반으로 진행하기로 하였다. 2팀의 배려 덕에 수업을 중단하지 않고 진행할 수 있게 된 것이다.


그렇게 오후 첫 수업은 말라리아 수업을, 오후 마지막 수업은 비누만들기 수업을 진행하였다. 어느 교실로 모두 모일 것인지, 교실이 너무 작지는 않을지와 같은 걱정과 우려가 존재했다. 점심을 먹고 온 담임 반 시간에도 계속 우리 팀 멤버들은 아이들과 놀아주며 어떻게 해야 할지를 생각했다. 조장으로서 부담이 되고 걱정이 된 것도 사실이었다. 하지만 일단 주어진 상황을 받아들이고, 가장 나은 방법을 찾아야 했다. 우리는 책상이 부족하더라도 바닥에 앉을 수 있도록 신발을 벗고 들어가는 저학년 반에서 모두 모이기로 하였다. 또한 통역사 친구가 반 학생들에게 ‘다른 반으로 옮겨야 한다’는 말을 전해주는 것이 더 용이할 것이라는 생각을 하였다. 오후 반은 뽀드득 1팀이 더 저학년 반이었기에 이 쪽에서 기다리기로 하였다.


다행히 아이들이 모두 책상에 앉을 수 있었으며, 나와 뽀드득 1팀은 2팀의 말라리아 수업에서 교구를 나눠주고, 보조역할을 맡았다. 또한 두 번째 오후 수업에서는 뽀드득 1팀이 수업을 하고, 뽀드득 2팀이 보조를 맡아 주었다.


더 많은 학생들이 한 곳에 모였기에 정신이 없었던 것은 사실이었지만, 무사히 수업을 마무리해서 다행이었다. 팀이 모여 함께 피드백하고, 수업의 경험이 쌓이니 더 나아졌다. 또한 합반으로 인해 예비 수업을 수업으로 몇 번 진행하도록 추가적으로 준비해야 하는 어려움이 있었다. 하지만 추가적으로 준비한 예비 수업 덕분에 야외에서 몸을 움직이는 수업을 아이들이 굉장히 좋아한다는 것을 알게 되었고, 기존에 준비했던 수업을 변형하여 야외에서도 게임을 진행할 수 있도록 수정하였다.


이 덕분에 어떤 어려움이 발생하더라도 함께 해결하고자 대안을 찾고자 노력한다면, 더 나은 길이 나올 수 있음을 깨닫게 되었다. 당황스러웠을 텐데 수업을 끝까지 책임감 있게 진행해주고 위기를 기회삼아 계획한 수업도 개선해보자고 제안해 준 부원들, 갑자기 섭외되었음에도 함께해준 새로운 봉사자인 린, 변동상황에도 수업에서 꺄르륵 웃으며 참여해준 아이들, 모두 감사하다.

image.png 비누 만들기 수업!
image.png 아이들은 직접 만든 비누로 손을 씻고선 창문에 이렇게 달아놓았다. 나는 그게 너무 좋아서 자꾸 사진을 찍었다.

게다가 린은 최고였다. 다정하고 성실하고 더운 날씨에도 항상 웃는 얼굴로 우리와 함께해주었다.

함께 협력한다면 위기가 기회가 될 수 있고, 배울 수 있음을 깨달은 봉사였다. 또한 기본적인 라오스어만 구사하는 외부인인 우리를 반겨주고, 수업에 임해준 학교 아이들에게도 깊은 감사를 전한다. 그래도 마지막 날에 울음을 참을 수 있을것이라고 생각했는데, 매일 나에게 먼저 와서 인사해준 나리사가 눈물을 글썽이자, 나도 모르게 눈물이 왈칵 나왔다. 그리고 빠른 시일 내에 앞으로 다시 보기 힘들다는 생각에 바시 행사에서 눈물이 계속 나왔다. 나도 모르는 사이 짧은 그 시간동안 정이 든 것이겠지.

KakaoTalk_20260205_113011707_03.jpg 같이 만든 비누로 손을 열심히 빡빡 닦던 아이들이 너무 귀엽고 고마웠다.

내게 떠오른 사례가 하나 있다. 어떠한 비영리기구에서 아이들을 대상으로 지원을 해주었는데, 나중에 그 아이가 커서 같은 기구에서 일하게 되어서 당시에 지원을 도와줬던 직원을 다시 만난 사례이다. 라오스에서 나와 함께했던 아이들도, 나중에 커서 기회가 된다면 다시 만나고 싶다. 그렇게 불확실한 다음을 기약하며 라오스에서 한국 행 비행기를 탄다.

‘얘들아, 건강하고 행복하게 잘 지내야 해. 우리 또 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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