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릴 적부터 은사님이셨던 목사님과 함께 2004년 동북 3성으로 전도여행을 다녀온 적이 있습니다. 목사님께서는 그래도 중국에 왔으니 북경은 보고 가야 되지 않겠냐고 말씀하셔서 북경에 들렀는데, 북경은 모든 것이 크고 거대했으며 곳곳이 개발을 위한 공사 중이었습니다.
그때 ‘이제는 중국어를 배워야겠구나’라고 생각했고 한국에 오자마자 짐을 꾸려 북경으로 갔습니다. 일 년이 조금 안 되는 기간 동안 부단히 노력해서 뉴스 정도는 쉽게 이해하고 대화로는 중국 친구와 함께 ‘측천무후의 재위 기간 당나라의 개혁’에 관하여 토론할 정도가 되었습니다.
중국어를 공부하면서 여행도 틈틈이 다녔습니다. 뉴스를 보며 대국굴기, 대륙 서부 대개발(서안, 충칭, 쿤밍을 기점으로 한 일대일로 중 육상 루트)에 관하여 듣게 되었고 그것을 직접 눈으로 보고 싶어 그 큰 땅덩어리를 동서남북에 티베트까지 부지런히 다녔습니다. 중국은 유라시아 대륙이 모두 육지로 연결되고 미주까지 포함한다면 지리상 그 중심에 있을 만큼 위치가 너무 좋았습니다.
2005년도 상하이 사진. 지금은 높은 빌딩이 더 많습니다.
2005년도 티벳의 수도 라싸 포탈라궁.
중국 중앙정부는 공산당이라는 일당독재 체제에서 저돌적으로 개발과 개혁을 밀어붙였고 또, 어차피 당이 하나이기 때문에 잡음 없이 미래 장기 개발계획을 준비하였습니다. 그때까지 개발이 많이 늦었기 때문에 모든 것을 새로 개발해야 하는데, 당시 2000년대 중반의 최신 기술을 통신, 도로, 철로, 항만, 건축 등 곳곳에 적용하였습니다. 주변 한국과 일본에 비해 개발이 늦었지만 당시 외국의 최신 기술을 적용하는 모습에 곳곳이 각 기업 신기술 경쟁의 무대처럼 느껴졌습니다. 제가 있던 2005년까지만 해도 우리나라에서는 보기 힘든 거대하면서도 아름다운 건축물들이 대도시 곳곳에 들어섰습니다. 워낙 나라가 컸기 때문에 각 시의 시장, 각 성의 성장, 당서기를 다른 나라의 총리나 외교부 장관이 직접 만나는 것도 부러웠습니다.
‘역시 대국이구나.’
중국어 공부를 잘 마친 후 한국으로 돌아와 취직을 하였고 중국어는 회사생활에서도 여러모로 도움이 되었습니다. 한국으로 돌아온 1년 반 후 휴가 때 중국에서 제가 살던 동네를 다시 가보았는데, 너무 많이 변해서 알아볼 수 없었습니다.
국가 대극원(2008년) : 중국 예술의 전당
THE PLACE 쓰마오티엔지에(世贸天阶) (2008년)
그때 저의 생각으로는 중국은 세계의 중심에 서게 되고 중국의 수도는 베이징이지만 상하이는 세계의 수도가 될 것이라는 생각이 있었습니다. 제가 회사를 그만둔 후 북유럽 여행을 다니기 전까지 보아온 세계 지도로는 중앙에 중국이 있고 우로는 미대륙, 좌로는 유럽과 아프리카 대륙이 있었습니다. 특히, 유럽/아프리카와 육지로 연결된 것이 큰 강점으로 보였습니다.(반면 유럽을 여행하게 되면 세계 지도에서 유럽이 중앙에 있고 아메리카와 아시아가 좌우에 있는 것을 볼 수 있음.)
그러던 중 2008년 전후 종이로 만든 고기만두, 유아용 분유 및 플라스틱 제품 사건 등이 터졌지만 선진국으로 가는 과도기이기 때문에 크게 문제 되지 않으리라고 생각했습니다. 당시 중국인구가 16억 명(당시 세계인구 52억 명)이었기 때문에 모든 나라, 모든 기업이 중국에 공장을 세웠습니다. 중국은 명실상부한 세계의 공장이 되었고 중국산 마늘과 고춧가루가 없이는 세상이 음식의 맛을 더할 수 없게 되었습니다. 회사에서 인사업무를 멈추고 영업으로 직무를 전환하였을 때 협력사 사장님들께서도 중국은 앞으로 동반 성장해야 할 파트너라고 이야기하였고 국내외적으로 중국 거래선에서 회사 제품 수주를 많이 하였습니다. 중국 건설사와의 간단한 상견례 행사 정도는 직접 진행하였습니다. 당시 중국어는 저의 회사생활에 상당한 도움을 주었습니다.
중국은 공산국가였기에 고정환율을 채택하여 외국 자본에 대한 환율방어도 괜찮게 되었습니다. 2010년 이후 중국은 미국산 채권을 대거 매입했고 미국과 더불어 G2의 위상을 갖게 되었습니다. 저는 자유민주주의 그리고 시장경제를 절대적으로 지지하지만 이때에는 솔직히 사회주의 시장경제라는 체제가 어디까지 성장할지 보고 싶은 생각이 있었습니다.
하지만 이 과정을 거치면서 부작용이 많이 생겼습니다. 중국은 어느 순간부터 외국기업에 제재를 가하기 시작했고 현재 기업들은 공장을 베트남 등 다른 아시아 국가로 옮기고 있습니다.(특히, 전기전자, 반도체 분야 등 기술중심의 기업은 베트남으로 이전함. 베트남의 장점은 젊은 층이 많고 한국과 비슷한 국민성으로 작은 부품 작업 능력이 뛰어남. 베트남 정부도 한국 대기업에 세금 혜택을 많이 줌. 한국의 발 빠른 부동산 회사들은 이미 베트남에 다수 진출함.) 빠르게 발전하였지만 규범과 문화가 함께 발전한 것이 아니기 때문에 저조한 품질의 제품, 부실 아파트 등 곳곳에서 부실이 드러났고 공산당 체제에서 인민들에게 제한을 가하거나 공산당의 부정부패가 드러났습니다. 코로나 시기를 겪으며 한 도시를 봉쇄하는 등 독재국가의 고질적인 모습이 드러났습니다. 제가 15년 전 기대했던 모습과는 너무 다른 모습이었죠.
누군가 나라 명에 ‘인민의(People’s Republic)’라는 단어가 들어가는 공산국가는 인민만 빼고 다 잘 사는 것 같다고 했는데, 정말 그런 듯합니다. 당 간부와 당에서 용인하는 소수의 기업가들만 잘살고 있습니다. 이제 시진핑 체제는 집권 3기에 접어들며 일인 천하의 시대를 열었습니다. 점점 더 전제군주제 국가가 되어가는 모습입니다.
많은 부분에서 실망할 부분이 많지만 여전히 중국이 없으면 세계 경제는 돌아가기 힘든 것은 현실입니다. 개인적으로 한족 친구들뿐만 아니라 만주족, 짱족(서장/티베트) 친구 등 다양한 친구들이 제가 중국에 있을 때 저를 먹여주고 재워주었기 때문에 저는 친중적인 성향입니다. 다만 공산당 일당 독재 체제는 겉으로는 모두 잘 살 것처럼 이야기하지만 소수의 당 간부와 관계자들만 잘 사는 것이 현실입니다. 그저 중국인 친구들이 많기 때문에 중국 사회가 더 나아지길 바라는 마음입니다. 간략히 마무리 지으며 언제일지는 모르지만 중국에도 민주화가 찾아오고 규범과 문화를 갖춘 진정한 선진국가로 변화하기를 응원해 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