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래서 나머지 5%는 뭘 하면 되는데
챗GPT(ChatGPT) 창업자인 샘 올트먼이 말했다. AI가 마케팅 업무의 95%를 자동화할 거라고.
처음 이 말 들었을 때 나는 솔직히 좀 찔렸다. 내가 하루에 쓰는 에너지 중 얼마나 많은 부분이 그 95%에 해당하는 일인지 알고 있었으니까. 그런데 잘 생각해보면 이건 공포를 주는 말이 아니라 선택지를 주는 말이다.
95%를 AI한테 넘기고 나면, 나는 뭘 할 수 있을까.
허브스팟과 마케팅 팟캐스트 'Marketing Against the Grain'이 함께 낸 리포트가 그 질문에 꽤 구체적으로 답하고 있어서 정리해봤다.
허브스팟의 공동 창업자 다르메시 샤는 AI 에이전트를 이렇게 정의한다. "복잡한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 여러 단계를 거쳐 작동하는 소프트웨어." 사람이 목표만 주면, AI가 스스로 실행 경로를 찾아낸다는 얘기다.
허브스팟은 제품 팀 전체에 AI 툴을 도입한 뒤 엔지니어 생산성이 15~20% 향상됐다고 밝혔다. 숫자 자체보다 중요한 건 그 해석이다. AI를 대체자로 보면 위협이고, 협업 파트너로 보면 가능성이다.
마케터 키에란 플라나간이 말하는 '다섯 번의 규칙(Rule of Five)'이 있다. AI에게 짧은 프롬프트 하나 던지고 결과를 바로 쓰는 건, 신입한테 피드백 하나도 안 주고 초고를 그냥 발행하는 것과 같다.
그는 유튜브 콘텐츠를 링크드인 포스트로 자동 변환하는 AI 에이전트를 직접 만들었다. 상위 크리에이터들의 글쓰기 패턴을 분석해서 가이드라인으로 만들고, 클로드를 신입 팀원 훈련하듯 반복해서 다듬었다고 한다.
결론은 이거다. AI는 빈 화면의 공포를 없애주는 출발점이고, 진짜 가치는 편집 과정에서 나온다.
리포트는 유입→전환→계약→고객 만족, 네 단계 전체에 AI를 녹인 사례를 보여준다.
광고에서는 기존 A/B 테스트가 수십 가지 소재를 동시에 검증하는 'A-Z 테스트'로 진화했다. AI 기반 초개인화 이메일의 전환율은 기존 대비 최대 80%까지 늘었다고 한다. 계약 단계에서는 AI가 기업 조사부터 첫 대화까지 처리하고, 허브스팟의 경우 전체 고객 지원의 25% 이상을 AI가 담당하고 있다. 이게 100명 이상의 인력에 해당하는 규모다.
가장 충격적인 수치는 따로 있다. AI가 생성한 영업 이메일이 사람이 쓴 것보다 전환율이 94% 높게 나왔다. 이유는 단순하다. AI는 펀딩 라운드, 직책 변경, 서비스 사용량 변화 같은 신호를 방대한 데이터에서 빠르게 잡아내 적시에 개인화된 접근을 한다. 사람보다 더 빠르게, 더 정확하게.
AI 챗봇이 뜬다고 구글 검색이 사라지는 건 아니다. 리포트는 틱톡이나 인스타 같은 플랫폼이 성장하는 와중에도 구글은 함께 성장 중이라고 말한다. 사람들은 단순히 답을 찾는 게 아니라 맛집을 예약하고 물건을 사는 '행동'을 하기 때문이다.
흥미로운 건 구글 상위 노출 콘텐츠 중 AI가 대량 생성한 텍스트를 포함한 게 약 10%에 불과하고, 구글은 이미 이를 페널티 대상으로 삼고 있다는 점이다. AI가 키워드 클러스터링이나 성과 예측 같은 기술적 작업을 처리하는 동안, 사람은 독자의 맥락을 이해하고 전략을 설계하는 데 집중해야 한다.
AI가 초안을 쓰고, 사람이 경험과 판단을 더한다. 이 분업이 콘텐츠의 미래라고 리포트는 말한다.
AI가 대량 처리를 맡고 나면, 사람에게 남는 건 고가치 협상, 전략적 판단, 그리고 AI가 흉내 낼 수 없는 감성적 연결이다. 이건 막연한 위로가 아니다. 수치로 증명된 분업이다. AI는 빠르게 처리하고, 사람은 깊이 생각한다. AI는 패턴을 읽고, 사람은 맥락을 만든다.
마케터로서 AI를 배우는 게 더 이상 선택이 아닌 시대가 됐다는 건 다들 안다. 문제는 어떻게 쓰느냐다. AI를 단순 보조 도구로 쓰는 사람과, 자신의 업무 전체를 재설계하는 출발점으로 쓰는 사람 사이의 격차는 앞으로 더 벌어질 것이다. 마케터를 예를 들었지만 다른 직무에서도 비슷하리라 생각한다.
나는 후자가 되고 싶다. 그게 95%에 속하지 않는 방법이라고 생각하니까.
이 글은 HubSpot × Marketing Against the Grain의 리포트 'The Future of AI in Marketing'을 참고해 작성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