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 밤마다 "엄마, 너무 힘들어요. "라며 어깨를 늘어뜨린 네가 한숨 섞인 말을 건넬 때마다 엄마는 18세 나이에 너무 큰 인생의 무게에 짓눌린 너에게 마땅히 할 말을 찾아 고민한다.
연약한 몸으로 날마다 철근같이 무거운 책가방을 지고 늦은 밤까지 학원, 독서실을 오가며 고생하는 우리 소중한 둘째.
몸이 허약해 학교를 자주 빠지더니 급기야 고 3 되자마자 예기치 않은 뇌수막염 질병으로 인해 2주 넘게 입원하고 결핵약을 먹으며 수개월째 투병하는 너의 모습을 보며 엄마는 몇 번이고 속으로 "이제 그만 애쓰자. 네가 건강한 게 우선이다."라고 말하고 싶은 걸 꾹꾹 눌러 참았단다.
중간고사 때는 급기야 병마를 못 이기고 네가 시험 기간 내내 토하고 시험을 망치고 왔지. 돌아와서 결핵약 따위 다신 안 먹겠다고 꺼이꺼이 울음을 토해냈던 너. 아픈 널 위해 엄마가 해줄 수 있는 게 없어 가슴에 얹힌 슬픔을 몇 번씩 주먹으로 내리치기만 했단다.
입시가, 시험의 중압감이, 진로에 대한 부담이 네 삶과 몸을 갉아먹는 것만 같았다. 아픈 네 곁에서 해줄 수 있는 게 별로 없는 엄마는 그저 수능까지 네가 건강하게 버티고 시험 보기만을 아침마다 기도하고 또 기도했다.
그 아픔과 고통의 시간을 이겨내며 이제 수능을 불과 2개월 앞둔 지금.밤늦은 시간 땀과 피곤에 절은 네가 건넸던 말을 기억한다.
"엄마, 최선을 다한다고 했는데 그럼에도 내가 원하는 대학을 가기엔 부족하다는 게 마음이 아파요."
그래, 호야. 인생은 내가 하고 싶은 것과 할 수 있는 것 사이의 운명적인 간극을 메우는 과정이더라. 그래도 엄마는 지금 네가 이만치 해온 건 기적이라 생각하고 감사드린다.
네가 좋아하는 것, 보고 싶은 것, 가고 싶은 것 인생에서 누릴 수 있는 모든 열망들을 유예하면서 사각의 책상 속에 스스로를 가두고 지탱해 온 외롭고 지독스러운 싸움이 이제 끝나가는구나.
부실하고 연약한 몸으로 포기하지 않고 끝까지 최선을 다한 네가, 오늘만 버티자 스스로에게 주문을 걸며 주어진 순간을 꽉 채우며 걸어온 네가, 인생에서 내 뜻대로 되는 것이 하나도 없음을 깨달았다면서 허탈해하는 네가, 짠하면서도 자랑스럽다.
자녀야말로 부모에게 세상 누구보다 위대한 스승임을 너를 통해 배운다.
중학교 때까지 매일 게임에만 파묻혀, 공부에는 통 생각이 없어 다니는 학원마다 쫓겨나고 냉대받았던 너.
어느 날, 전기에 감전된 듯 "엄마, 이제 인생을 제대로 살고 싶어요. 공부도 열심히 해서 더 이상 무시당하지 않을래요."라면서 자기와의 약속을 지키기 위해 바닥부터 무섭게 매진해서 올라온 너.
비록 병마에 무너지고, 노력만큼 안 나온 성적으로 좌절했을 망정 네가 온 힘을 다해 분투한 시간은 인생의 가장 값진 시간으로 남을 줄 믿는다. 엄마는 네가 이렇게 스스로와의 약속을 지키며 우뚝 서준 모습만으로도 충분히 잘해 왔다고 생각한다.
인생은 네 뜻대로 되는 게 별로 없고 슬프게도 앞으로도 없는 경우가 더 많을 것이다.
그럼에도 그게 축복임을 언젠가 알게 될 것이다. 왜냐하면 내 뜻대로 되지 않음으로 인해 겸손해지고, 하나님을 더욱 의지하고, 실패하고 좌절한 타인을 이해하며 진심으로 마음을 내어 줄 수 있단다.
사람이 성숙해지는 시간은 내 힘이 최고조에 달한 때가 아니라 가장 연약한 때이며, 실패를 다루는 것보다 성공을 다스리는 게 훨씬 어려운 일이거든.
호야,
엄마는 항상 이 자리에서 너를 응원한다. 엄마 힘들게 한다고, 부모님 고생하신다고 미안해하지 않아도 된다. 너는 이미 네 몫의 삶을 살아가는 것만으로도 그 이상의 충분한 보답을 해주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