난 먹는 걸 좋아한다. 맛있는 음식 안 좋아하는 사람이 있을까만 맛있는 음식을 먹는 것뿐만 아니라 이게 왜 맛있고, 이건 비슷한 요리나 다른 레스토랑에 비해 어떻게 다른지 감상을 나누는 걸 좋아한다 (물론 맛없는 요리는 뭐가 어떻게 잘못됐는지 자근자근 분석하는 것도 포함해서). 그래서 여행이나 출장 갈 때 도시마다 맛집을 찾아다니는 게 일정의 큰 부분이다.
우리는 어떤 요리를 훌륭하다고 느낄까? 너무나 주관적인 부분이지만 우선 맛이 있어야겠고 눈에 보기 좋은 것도 (먹음직스럽거나 아님 아름답게 차려진)것도 중요한 요인이겠다. 하지만 정말 흥미로운 경험은 예상치 못한 맛을 볼 때 (예를 들어, 아는 재료가 합쳐져서 새로운 맛이 나거나, 생전 처음 보는 재료를 먹어보거나) 혹은 맛 이상의 감각으로 놀라움을 줄 때인 것 같다.
요리사도, 음식평론가도 아니지만, 최근 예상치 못한 새로운 맛을 경험하게 해 준 요리들을 돌아보려 한다.
프랑스 샤모니는 살고 있는 제네바에서 버스로 한 시간밖에 안 떨어져 있어 매년 하이킹시즌이면 두세 번은 가는 곳이다. 하이킹은 주로 3-4일 일정으로 가는 데 매끼 밖에서 사 먹고 싶지 않아서 주로 에어비엔비처럼 주방이 있는 곳을 빌려서 가는 편이라 레스토랑을 잘 모르는 편이었는데, 우연히 지나가다 발견한 MUMMA. 샤모니 타운 끝무렵에 있는 아시아 퓨전음식점인데 한 접시 한 접시 나올 때마다 눈이 휘둥그레지는 요리들이었다.
그중에서 제일 좋았던 요리는 게살 주먹밥. 유자소스와 어우러진 주먹밥 자체도 맛있었지만, 정말 흥미로웠던 건 주먹밥 아래 깔린 살짝 절인 오이채와 주먹밥 위에 가득 뿌려진 파마산 치즈의 조합! 어떻게 보면 요리의 주연이 아닌 조연인데 생각지도 못한 상큼하고 아삭한 오이와 짭조름하고 진득한 치즈의 맛이 뜨거운 주먹밥을 차갑게 아래서 받쳐주고 부드럽게 위에서 감싸줘서 정말 흥미로왔다. 오이도 아는 맛이고 파마산치즈도 아는 맛인데 그 두 개를 조합하니 새로운 맛이었다. 껍질은 바싹 튀기고 생선살은 부드럽게 익혀 (또 다른 흥미로운 조합인) 요거트와 쓰촨식 칠리소스와 함께 먹는 연어요리는 아마 지금까지 먹어본 연어요리 중 가장 맛있었던 것 같다.
작년엔 유난히 출장이 많았다. 팀장이 되고 나서 가야 되는 회의도 많아졌고, 어쩌다가 동료가 갑자기 못 가게 돼서 땜빵한 출장포함해서 총 7번의 해외 출장이 있었다. 그래도 출장의 좋은 점은 종종 평소라면 잘 안 갈 나라들을 가게 된다는 거. 재작년 조지아랑 알메니아에 이어 이번엔 몰도바를 가게 됐다. 이젠 나이가 들어서인지 처음 가는 나라에 출장을 가도 일만 끝나면 바로 집으로 돌아와서 구경다운 구경은 못했는데 대신 마지막 저녁을 좋은 식당 Divus에서 먹기로 했다 (그래도 몰도바 물가가 저렴한 편이라 이럴 때 아니면 이런 고급식당에 언제 가보나). 구글리뷰가 워낙 좋아서 혹시나 자리가 없을까 봐 걱정했는데 역시나, 내가 도착했을 때 마지막 테이블을 우리가 가져가고 바로 뒤에 들어온 일행은 자리가 없어 돌아가야 했다.
원래 먹으려고 했던 해물파스타가 없어서 뭘 고를까 하다가 누군가 구글리뷰에 "criminally good"이라고 했던 참치 타르타르가 생각 나 주문했는데 정말 너.무.나. 맛있었다. 살짝 구운 아보카도, 치미추리 소스에 버무려진 와카메, 참치 위에 살포시 얹어진 연어알과 계란 노른자를 포크로 한 번에 썰어서 한입 가득 먹으면 우마미맛이 진하게 느껴지는 소스까지 합쳐져서 정말 입이 너무나 즐거웠다. 아보카도-참치-연어알의 조합은 어떻게 보면 캘리포니아롤 때문 에라도 너무나 익숙한 조합인데 (밥 빼고), 녹진한 구운 아보카드 반덩이가 확 들어가면서 비율이 확 바뀌니 알던 맛도 다르게 느껴졌다.
음식을 먹을 때 우리는 사실 혀 이외의 많은 감각들을 쓴다. 자글대는 구이요리들은 귀로 먼저 즐겁고, 요리를 입에 넣기도 전에 접시 위로 넘실대는 향을 맡기도 한다. 아름다운 음식은 눈으로 음미하고 식감이 좋은 음식은 입 전체로 천천히 씹으며 즐기기도 한다.
2003년 첫 해외여행으로 가보고 처음 다시 휴가로 가게 된 이스탄불. 터키야 워낙 맛있는 음식으로 유명해해서 거의 뭘 먹어도 맛있었지만, 역시나 마지막 저녁은 좋은 식당에 한 번 가보기로 하고 찾아간 Aheste. Tasting menu에 나온 음식들 하나하나 너무 예쁘고 맛있었지만 그중에 특히나 인상적이었던 건 참치요리.
터키 전통 면을 잘게 부수어서 나오는 바삭한 카다이프 위에 부드러운 참치, 그 위에 상큼함이 터지는 오렌지와 생선알에 매운맛 킥을 주는 신선한 칠리슬라이스까지. (사진은 레스토랑 조명 때문에 좀 붉게 나왔지만) 노란색, 주황색, 붉은색, 녹색이 아름답게 쌓여 눈으로 먼저 즐길 수 있을 뿐만 아니라 입안에 넣고 씹었을 때 느낌이 다른 재료들이 함께 어우러져 질감으로도 재미를 주었다.
눈에 아름답던, 식감이 좋던, 재료의 조화가 흥미롭던, 사실 여전히 오늘 저녁 뭐 먹을지 하나 고르라면 맛이 좋은 식당을 고른다. 그래도 맛에만 집중하던 때에 비해 훨씬 다양한 각도로 음식을 즐길 수가 있어 외식이 더욱 풍부한 경험이 되는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