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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당구와 인간 Jul 22. 2023

그래서 미안하다

당구장에서 ~ 13

당구공은 무엇으로 만들었을까? 끊이지 않던 궁금증은 명왕성이 소행성으로 자격을 잃어버린 시점에서야 알려지게 된 것 같다. 개발도상국의 허물을 벗고 싶었던 것일까. 정형화된 당구장의 사건 사고 소식만 다루던 언론사가 어인일로 당구의 긍정적인 기사를 싫을 때가 있었다. 당시 복지부 장관의 취미가 당구라서 그랬는지, 나라님들 욕할 건더기가 없어서인지, 아무튼 그때는 짜장면이 당구와 친구라는 사실을 두고서 배턴을 이어받던 잠깐의 평온한 시절이었다.


덕분에 대중들은 그제나마 인정하며 고개를 끄덕인다. 지금도 신문지를 압축해서 만들었다는 풍문에 귀 기울일 정도로 당구는 정말이지 우리에게 많은 예깃거리와 혜택을 안겨주는 것 같다. 마치 지구의 유산과도 같은 느낌이 든다. 불과 수십 년을 내다보며 과학자와 탐험가들이 활동하고 있다. 우주여행이 실현된 세상에서 화성으로 가는 티켓을 당구공으로 끊어야 할지도 모를 일이 되어버렸다.


초기 당구공은 돌 · 나무 · 진흙을 이용하여 수작업으로 만들었다. 이후 서유럽의 지구적 침략 과정에서 아시아와 아프리카에 있는 이국적 재료에 눈독을 들이기 시작했다. 코끼리 엄니였다. 상아로 지팡이와 빗 그리고 피아노 건반과 같은 상업용 장신구를 만들기도 하였다. 가격이 만만치 않아서 왕족과 상류층만 사용할 수 있었다. 도자기와 마찬가지로 부의 상징이기도 했던 상아는 궁전의 당구대에서도 그 위용을 자랑하게 되었다. 바로 당구공의 탄생이다.


아울러 “아이보리”라는 별명까지 얻게 되었다. 황소 뼈로 만든 저렴한 공도 사용했으나 아이보리의 우아함에는 견줄 수가 없었다. 힘과 내구성은 물론이며 둥근형상의 아름다움은 오랫동안 독점적이었다. 제조할 수 있는 기술의 발전으로 세계 여러 지역으로 수출되기도 하였다. 나 또한 소싯적 상아 공을 만져보았을 정도였으니 이미 코끼리의 멸종을 예견한 터였다.


엄니 하나에 수백 개의 피아노 건반을 생산할 수 있었지만 당구공은 기껏해야 다섯 개까지만 건질 수 있었다. 영국은 *스누커 붐으로 자국에 당구공을 공급하기 위해서 셀 수 없이 많은 코끼리를 살해했다. 유럽과 미국에 공급된 당구공 개수를 상상해 보면 얼마나 많은 희생이 있었는지 미뤄 짐작해 볼 수 있겠다.


밀렵으로 코끼리 수가 급감하자 아이보리 가격은 정신없이 치솟았다. 와중에 미국의 상업 사회는 당구 붐이 일어났다. 남북전쟁 소식은 안중에도 없을 정도로 당구의 인기는 절정에 다다랐다. 남북 동맹에 대한 봉쇄로 상아를 수입할 수 없게 되자 대체할 수 있는 상품이 절실히 필요했다. **거액의 상금까지 내걸며 고안하기에 이르렀다.


이를 계기로 오늘날 바닷가의 조개도 그 맛을 알 수 있다는 플라스틱이 인류에게 성큼 다가왔던 것이다. 값싼 인조 당구공이 정신없이 쏟아지자 가장 먼저 환영받는 곳은 영국이었다. 당연히 포켓볼의 유행도 예견된 행보였을 것이다. 공을 염색하는 수준에서 도자기에 색을 입히던 기술이 더해졌으리라 짐작된다.


정신없이 쏟아지는 당구공은 영원히 아이보리 빛을 자랑하는 듯했으나 꼭 큐를 쥐고 치는 목적만 있었던 것은 아니었다. 영화 속 싸움 장면에 나타나는 단골 메뉴였던 것이다. 잊을만하면 전화벨이 울리는 친구처럼 논쟁의 여지를 남기곤 했었다. 암울하고 서글픈 과도기를 거쳐서일까. 이제야 정리된 세상이 찾아온 듯하지만 친구의 목소리는 그리 썩 달갑지 않은 표정이다. 당구공의 발명으로 지구가 아프다고 한다.

 

“플라스틱 바다를 삼켰다.” “바다를 병들게 하는 플라스틱” “바다로 간 플라스틱” “플라스틱 바다” 영화와 책 제목이다. 마트에 가더라도 온통 플라스틱으로 넘쳐난다. 출입구에 놓인 플라스틱 바구니가 싫어서 종이상자를 들고 오는 버릇이 생겼다. 테이프로 칭칭 감아서 손잡이를 만들어 장을 본다. 오늘따라 왠지 모를 어긋남이 빈 종이상자를 가득 메우려 한다. 무겁게 느껴진다. 종이상자를 감싸고 있는 테이프 양을 가늠해 보니 검은 비닐봉지와 별 차이 없어 보인다. 이건 뭐지? 나는 뭐지?


    



* 1870년대부터 유행이 시작된 스누커 게임은 당구공이 무려 22개다. 1880년대까지 영국에 당구공을 공급하기 위해 1년에 약 12.000마리의 코끼리를 살해했다. (암컷이 많았다)

** 오늘날의 당구공이 탄생하기까지에는 아일랜드 출신의 미국 당구 사업가 “마이클 팰란”의(1819~1871) 기여도가 크다. 미국 최초의 당구선수였으며 대중화를 위해 큰 상금을 건 경기도 개최했다. 미국에서 당구 게임의 예의와 규칙 그리고 과학에 관한 Billiards Without A Master를 1850년에 출판했으며 이것은 미국에서 최초의 당구책으로 기록된다. 그는 또 장비의 표준화를 위해 탄성 좋은 쿠션을 개발했으며 테이블에 다이아몬드 조준점을 설치하여 당구대를 만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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