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당구와 인간 Jul 23. 2023

목수와 바이올리니스트

당구장에서 ~ 17

이 땅에 피시방이 생길 때부터 ‘당구’라는 검색어로 무료함을 달랬다. 그 세월도 벌써 30년이다. 지겹지도 않은지. 사진으로 훔쳐보던 시절의 답답함을 번역기가 시원하게 긁어주는 요즘 세상이다. 오늘은 어떤 정보를 얻을 수 있을지, 커피를 훌쩍이는데 묘한 사진 한 장이 딸꾹질을 멈추게 한다. 바이올린을 연주하는 얼굴 없는 여성의 모습이 큼지막하게 담겨져 있었다. 깜짝 놀랐다. 활을 잡고 연주하는 모습이 당구와 닮는다는 짧은 글귀 때문이다.


파가니니


*파가니니 흉내를 내고 싶었던 것 같은데 왜 내 가슴이 두근거리는 것일까. 손가락과 손목의 여미는 모습에서 이런 긴장감이 몰려오다니. 여태껏 스트로크는 재빠른 손놀림이 최선인 줄 알았다. 나름의 아집을 정석으로 여기면서 물어오는 이들에게 고집하기도 하였다. 타고난 체력을 부러워하며 팔 근력을 키워왔건만 이렇게 허 찔릴 줄이야. 제법 많은 시간동안 이문제로 고민해 보았다. 물론 그녀의 말에 전적으로 동의했기 때문이다.


바이올리니스트의 스트로크는 여성성에 가까우며 주로 약한 손놀림일 때 장점이 되는 것 같다. 강한 손놀림은 확률이 없거나 낮다는 소리가 아니다. 이를테면 편안한 옆 돌리기 포지션에서 세게 칠 때와 약하게 칠 때를 구분해 보자는 뜻이다. 약하게 칠 때는 가냘픈 여성성의 바이올리니스트 스트로크로, 세게 칠 때는 남자의 향기를 담고 있는 목수의 스트로크로 타격해 보는 거다.


우직한 목수의 톱질은 변강쇠의 도끼질에서 찾을 수 없는 섬세함이 묻어난다. 이를 당구에 적용해 보면 내가 원하는 지점까지 손목을 멈추게 하는 강직함과 정갈함으로 표현된다. 톱질을 안쪽으로 당겨 자르는 당연함에 앞으로 내뿜는 당구와 다르다는 어설픈 판단은 하지 말자. 다듬어지는 근력이 막강하기 때문이다. 내밀어지는 힘의 위력이 재빠른 손놀림으로 이어지는 일만 남게 된다. 물론 최대한 힘을 빼야 하는 전제조건하에 말이다.


꼭 톱질이 아니어도 고무 튜브를 묶고 끌어당기는 훈련이라든지 아령 운동으로 근력을 키우는 일을 게을리해서는 안 된다. 야구선수가 배트 두 개를 들고 풀스윙을 한 후 타석에 들어서는 모습과 마라토너의 모래주머니 등을 연상해 보면 근력의 중요성을 인지하지 싶다. 적당히 치고 싶다면야 이렇게 머리 아픈 과정이 필요치 않다. 내가 잘 치고 싶은 욕심이라면 남달라야 하지 않을까.


궁극의 스트로크 즉 재빠른 손놀림은 힘의 작용이다. 여기서 힘의 작용은 꼭 강한 힘을 뜻하는 게 아니다. 권투선수의 잽을 생각하면 쉽게 와닿는다. 잽 한방에 무너지는 경우를 봐왔을 것이다. 선천적으로 근력이 좋은 사람들의 손놀림에서도 남다른 탁월함을 엿볼 수 있다. 약하게 치는 것처럼 보이지만 공에 힘이 실려 멀리 간다든지, 강하게 친다지만 약한 느낌으로 표현되는 경우다.


하나의 포지션을 두고서 맞춰내는 방법은 다양하게 연출된다. 이 방향이냐 저 방향이냐. 세게 쳐야 할까 약하게 쳐야 하나. 정답을 강요할 수 없다. 개개인의 개성에 맞춰 표현하는 것이 우선이지만 세심함을 요구하거나 포지션 플레이를 해야 한다면 문제가 달라진다. 이때 목수와 바이올리니스트 스트로크를 상상하며 하나를 선택해 보자.

 

무엇보다도 난구를 풀기 위함이 클 것이다. 대부분의 난구가 빠른 손놀림에서 오는 간결함과 약한 손놀림의 섬세함으로 정교해지기 때문이다. 근력의 부족으로 난구를 피해 가는 모습에서 무능함이 드러난다면 상대에게 어떤 기운을 건네줄지, 불 보듯 뻔한 일이 아닐까. 시원하게 풀어낸다면 그 경기는 따다 놓은 당상일 것이다.

 

누구나 잘 치기 위해서 한 번쯤은 손목작용에 관심을 가진다. 가르침의 방법 중 손목을 쓰지 말라는 교육도 있다고 한다. 포지션에 따라 손목 사용을 절제하기도 한다던데 범위가 너무 커 복잡하기만 하다. 내 암만 봐도 스트로크는 손목이 사용될 수밖에 없는 인체 구조다. 무엇이 정답인지는 모른다. 목수와 바이올리니스트가 정답을 알려준다지만 이 또한 고집하지는 못한다.


완벽한 결론에 도달하지 못하는 혼란스러움이지만 혼선의 과정을 거쳐 가는 시간은 분명 잘 치기 위함이다. 오래도록 슬럼프 때마다 나타나는 일련의 과정이기도 하다. 월드클래스도 저마다의 스트로크를 자랑하지만 더없는 시련을 겪었으리라. 실수할 때면 그들도 만족하지 못할 스트로크의 세계가 아닐까.




* 파가니니 : 19세기 이탈리아 바이올리니스트다. 활을 켜는 모습이 당구 치는 모습과 닮았다고 한다.

작가의 이전글 밀어 치기의 함정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