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은 존재하는가? 존재하지 않는가?
우주는 유한한가? 무한한가?
시간에 시작이 있는가? 없는가?
인간에게 영혼은 있는가? 없는가?
자연은 인과 법칙을 따르는가? 우연인가?
어느 초등학생이 이런 질문을 지나가는
비트켄슈타인에게 물었다.
"헛소리 하지 마, 임마!"
그래서 초등학생은 칸트에게 되물었다.
"이성으로는 알 수 없는 문제야."
인간은 이런 형이상학적 문제를 해결할 수도
없고 그렇다고 회피할 수도 없는 운명에 처해
있다.
인간의 지식은 단지 대상에 대해 인간 만의
인식체계를 통해 알 수 있을 뿐이다.
사람의 얼굴을 카메라가 들여다본다고
가정하면 열화상카메라는 열만 감지한다.
3D 카메라는 얼굴을 3차원으로 감지하고
흑백 카메라는 흑과 백으로 만 감지하고
X레이 카메라는 해골만 감지한다.
대상에 대한 인식도 이와 같다.
박쥐는 초음파로 대상을 감지하고,
쥐는 열감지로 감지하고,
개는 흑백으로 감지하고,
오징어와 문어는 음파로 감지한다.
따라서 대상에 대한 인식은 개체에 따라 다
다르다. 마치 카메라마다 다 대상을 달리 감지하는
것과 같이 이치다.
그렇다면 어떤 카메라가 가장 우수한가?
정답은 없다. 3D 카메라가 가장 대상을 사실대로
묘사할 것 같지만 3D는 내부를 감지하지 못한다.
마찬가지 논리로 인간의 인식이 다른 개체보다
뛰어나다고 할 수 없다.
따라서 대상에 대한 탐구가 경험적으로 축적되어
쌓이는 인간의 지식은 오류가 포함된 거짓이다.
그래서 데카르트는 "우리가 아는 진리는 진리가
아니라 지금까지 이해한 사실이다."라고 했다.
그래서 칸트는 대상에 대한 참, 거짓을 논하는
것은 무의미하다는 결론을 내리고 인간의 인식체계
인 순수이성을 비판적으로 따져보기로 했다.
인간은 대상을 인식하는 그 인식체계를 비판적 사고
로 탐구해 볼 수 있다. 이것이 칸트가 <순수이성비판>
을 저술한 이유이고 목적이다.
그러나 애석하게도 카메라는 카메라 자신을
찍을 수 없으니 얼마나 애석할까? 세상 만물을
다 찍어낼 수 있어도 자기 자신을 찍어낼 수 없으니
카메라의 슬픔은 비극이다.
인간이 자신의 인식체계를 비판적 사고로
성찰하지 않는다면 성능 좋은 카메라
일 뿐이다.
Plato Wo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