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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3, 아리스토텔레스 철학이 남긴 유산
by
Plato Won
Dec 17. 2021
30년이 지나야 선인장에 꽃이 피듯, 철학을 머금은 사유와 질문에서 꽃이 핀다.
역사상 가장 위대한 지성이자 과학자라
평가받는 아리스토텔레스,
"서구 역사상 가장 위대한 지성인 중 하나"
브리태니커 백과사전에서 아리스토텔레스를
단적으로 기록한 문장이다.
아리스토텔레스는 워낙 다양한 분야에서
깊은 통찰력을 보였던 인물이기에
오늘날 그에 대한 평가에는
'가장 위대한'이란 수식어가 빠지지 않는다.
실제로 그가 남긴 과학, 형이상학, 논리학,
수사학, 정치학, 윤리학 등의 방대한 저술을
보면 고개를 끄덕일 수밖에 없다.
그렇게 많은 주제를 다루면서도
논리적이고 체계적인 분류 방법을 이용했기에
오랜 시간 동안 그의 이론은 절대적인
진리로 받아들여왔다.
뛰어난 제자답게 아리스토텔레스는
스승인 플라톤의 사상을 넘어서 후대에
자신의 이름을 알렸다.
플라톤의 제자이자 알렉산더 대왕의 스승이었던
철학자 아리스토텔레스는 과학자로서의
면모를 보이기도 했던 그의 천문학은
중세시대 신의 권위를 강화하는데
이용되기도 하였다.
'이데아'에 집중했던 플라톤과 대조적으로
'현실'세계에 집중했던 아리스토텔레스
스승인 플라톤은 그를
'아카데메이아의 정신이다'라고까지
칭찬했다.
그러나 근대 초기의 지적 발전은
아리스토텔레스의 체계의 오류를
바로잡는
의미에서 출발한다.
뉴턴의 과학혁명이 천상과 지상의
운동법칙이 만유인력 법칙 하나로 통일되면서
천상의 운동 법칙과 지상의 운동 법칙이
따로 존재한다는 아리스토텔레스의
천문학과 천동설은 무용지물이 되었다.
우리는 이런 지성인의 스승 아리스토텔레스의
오류를 어떻게 바라보아야 할까.
아리스토텔레스의 물리학이 올바르지
못하다고 해서 비난받는 것은 정당하지 못하다.
아리스토텔레스의 이론은 그 시대에
성취할 수 있는 감각의 고유한 인식 능력에
관한 비판적 성찰이기 때문이다.
.
사람들은 아리스토텔레스와
아리스토텔레스
주의자를 혼동한다.
아리스토텔레스는 절대로 자연의 어떤 결과를
얻기 위하여 관찰 등을 소홀히 한 적이 없다.
아리스토텔레스 주의는
중세의 스콜라 철학에서
가장 번성하였다.
토마스 아퀴나스가 그의 체계를
신학에 접목하고
이를 교회가 받아들이므로
그의 자연과학은
진리가 되었다.
스콜라 학자들은 그의 자연과학을 으뜸 원리로
삼아 연역을 동원하여 자연을 탐구하였다.
당시 아리스토텔레스 체계는
수정할 수 없는
진리였던 것이다.
만약 고대 자연과학이 틀렸다는 이유로
근대의 우월성을 주장하려면 그 이유로서
아리스토텔레스를 비난할 수는 없다.
그래도 비난하고자 한다면 아리스토텔레스
주의자들을 공격하는
게 맞다.
고대 없이 근대가 성립되지 않으며
고대 사유 없이 그들의 사유가 나오지 않았으며
그들 모두가 고대 그리스 사유의 주석일
수밖에 없도록 고대는 뛰어난 인류의
로고스 그 자체다.
철학자의 대명사 아리스토텔레스는
그냥 철학자가 아니라 서양 학문의 기초를
다진 지식인의 스승이다.
논리학, 물리학, 천문학, 화학, 생물학, 형이상학,
윤리학, 정치학, 시학, 수사학에 이르기까지
오늘날 자연과학으로 분류되는 학문의 기원에
2400년 전 학자인 아리스토텔레스가 존재한다.
스승인 플라톤의 철학이 기하학적이고
수학적이라면 아리스토텔레스 철학은
생물학적이다.
레보스 섬에서 연구한 <동물지>는 서양 생물학의
출발점이었고, '자연의 사다리'라는
이름으로 생물들의 체계를 정리했다.
생명에 관한 통찰로 그의 형이상학의 기초인
4 원인설과 질료형상 이론이 정립되었고
로고스의
능력을 증명했다.
통상 476년 서로마 제국이 멸망한 이후,
1492년 에스파냐에서 이슬람교도들이 추방되는
시기까지를 중세시대라 부른다.
중세는 서구의 그리스도교 문명과 동방의
이슬람 문명이 첨예하게 맞부딪힌 시대였다.
종교를 빌미로 세속적인 권력다툼으로 전락한
십자군 전쟁은 중세의 암흑기를 대표한다.
하지만 지금의 서구 유럽이 발전한 이면에는
이슬람 문화유산을 받아들였기 때문이고,
이슬람 문화 발전에 결정적 기여를 한 인물이
바로 아리스토텔레스이다.
만약 서구 역사 전체에서 단 한 명만
가장 박식한
인물을 꼽는다면
모든 분야의 대가인 아리스토텔레스다.
아리스토텔레스가 이슬람 문화에 기여한
원인은, 그리스 시대 사상을 이슬람 사람들이
모두 받아들였기 때문이다.
이후 서구인들은 오랜 세월 잊고 지낸
아리스토텔레스
책들을 이슬람 문화권에서
되찾고 재발견한다.
중세 기독교는 고대 그리스 철학과 학문을
신앙에 해가 된다는 이유로 천년 넘게 배제했다.
움베르토 에코의 소설 <장미의 이름>은
아리스토텔레스 학문의 얼마나 기독교에서
배척되었는지 단적으로 보여주는 소설이다.
아리스토텔레스 희곡을
인간을 타락시키고, 웃음을 알게 되면
신을 경배하지 않게 될 것이라는 두려움
때문에 나이 든 수도사 호르헤가 아리스토텔레스
시학
희곡 책에
독약을 묻혀 이 책을 몰래
읽으려는 젊은 수도사들을 살인하는 장면이 나온다.
소설에서뿐만 아니라 실제 역사에서도
중세 교회는 아리스토텔레스 학문의 부활을
막으려 했다.
이데아의 세계를 부정하고 현실세계를
긍정하며 영혼불멸설을 부정한 아리스토텔레스
철학이 기독교 교리에 치명적 해가 되는 것으로
간주했기 때문이다.
그러다 12~13세기 유럽에서 아리스토텔레스
학문을 배우자는 욕구가 다시 일어났다.
13세기 후반 토마스 아퀴나스는
아리스토텔레스 철학으로도 신의 오묘한
진리를 이해할 수 있다면서 기독교 신앙과
그리스 철학의 이성을 조화시키려고 노력했다.
아이러니하게도 고대 그리스 철학을 배제했던
중세 유럽 기독교와 달리 이슬람 세계는
적극적으로 고대 그리스 지적 유산을
계승하여 발전시켰다.
아바스 왕조는 수도 바그다드에
'지혜의 집'이라는 도서관 겸 학술기관을
세우고 우수한 학자들을 초빙하여
그리스 철학책들을 아랍어로 번역하였다.
이러한 번역 덕분에 아바스 왕조는
이슬람 역사상 가장 위대한 업적을 창조했다.
이같이 중세 이슬람 세계가 한층 발전시킨
고대 그리스 철학과 학문의 유산이 12세기
유럽 기독교 세계로 역수입되었고
한편으로는 강한 저항과 반대가 있었지만
12세기 이후 암흑기 중세 시대는
서서히 근대 세계를 만들어갔다.
아리스토텔레스의 학문이
수용되고 거부되었던
역사는
종교, 이데올로기, 인종과 민족,
국가라는
장벽을 세우고 사상과 학문의
흐름을 막아서는 안 된다는 교훈을
들려준다.
고대 그리스 철학의 대미를 장식한
아리스토텔레스 철학은
지금까지 누구도 하지 못했던 체계적이고
방대한 주제에 대한 연구를 우리에게
물려주었다.
아리스토텔레스의 철학은
현대인들에게 모든 분야에서 지적 호기심을
불러일으킨다.
"善이 무엇인가를 탐구하는데
이것을 잘 생각해 보고 조금이라도 수상쩍다고
생각되는 곳을 샅샅이 들추어내는 일은
필요하다.
그러나 이는 플라톤 학파를
공격해야 하는 작업이기에 괴로움을 준다."
아리스토텔레스 철학의 완성은
그의 스승 플라톤 철학을 연구하고 비판하면서
탄생하였지만 그의 저서 어디에도
플라톤에 대한 과격한 공격을 찾아볼 수 없다.
플라톤을 비판할 때는 항상 정중한
예의가 느껴진다.
아리스토텔레스 철학은 스승 플라톤 철학과
경쟁하면서 2400년 동안 인류 지성사에
큰 울림을 주고 있다.
Plato W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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