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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유교의 대안으로 활약한 도가와 도교
by
Plato Won
Sep 18. 2022
Plato Won 作
노자의 道德經과 장자의 莊子 1권 6과
<추상화 읽기> 스크립트
유교의 대안으로 활약한 도가와 도교
(1) 동아시아 문화권의 주류 사상, 유교
중국과 한국, 일본으로 대표되는 동아시아 문화권의 공통점은 한자 문화가 깊이 뿌리내리고 있고,
유교, 불교, 도교의 영향을 많이 받았다는 것입니다.
이 셋을 합쳐서 ‘유(儒)․불(佛)․선(仙) 삼교’라 부르는데,이때 ‘선(仙)’은 한자로 신선을 뜻하며 도교를 가리킵니다.
기원전 2세기 초, 한나라의 무제가 통치 원리로 삼은 이래,유교는 중국을 넘어 동아시아 문화권의 정치 이념이자
사회 윤리의 토대로 자리 잡게 됩니다.
‘임금은 임금답고, 신하는 신하다우며,
아버지는 아버지답고, 아들은 아들다울 것’을 강조하는 유교의 윤리는
사회 질서 유지를 원했던 지배층의 요구에 딱 들어맞았습니다.
구성원 각자가 묵묵히 자기 역할에 충실함으로써 인과 예를 실천한다면, 갈등은 최소화하면서도 효율적인 국정 운영이 가능하기 때문입니다.
통치를 위해 굳이 강력한 법과 군대를 동원할 필요가 없다는 점이야말로
유교가 각광받았던 가장 큰 이유였습니다.
한반도의 경우 삼국 시대에 한자와 유교가 전래되었고,
통일 신라 시대에는 중앙 교육 기관인 ‘국학’을 설치하는가 하면,유교 경전에 대한 지식수준에 따라 관리를 등용하는 ‘독서삼품과’를 실시했습니다.
이후 10세기 중반, 고려 광종 때 실시된 과거 제도는
귀족들이 관직을 독점했던 ‘문벌 사회’에서
유교적 학식과 정책에 대한 안목을 갖추면 관직에 나아갈 수 있는
‘능력 위주의 사회’로 진보했음을 상징하지요.
물론 주류 사상으로서 유교의 권위가 흔들린 적도 몇 차례 있었습니다.한나라 무제 때 실크로드를 통해 인도에서 전래된 불교와,도가에 민간 신앙이 합쳐진 도교가 나름대로 발전해 나갔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송나라 때 주자가 인간 본성과 자연의 원리 연구에 주력하는 ‘성리학’을 창시하면서 새로운
전기를 맞게 됩니다.
유학의 한 갈래인 성리학은 송나라 이후에도 원나라, 명나라 중반까지 중국을 지배하는 통치 이념으로서 위력을 떨쳤습니다.원나라 말기에는 고려에 전파되어 신진 사대부들의 조선 건국을 이끈 이래,500년 세월 동안 조선의 통치 이념이자 윤리적 토대로 자리 잡았지요.
(2) 동아시아 역사 속 도가와 도교
정치와 인간에게 줄곧 향해 있던 유교의 관심이 성리학에 이르러 우주와 자연으로까지 확대될 수 있었던 것은
자연과 인간의 조화를 중시하는 도가와 도교의 사상을 반영한 덕분입니다.
도가와 도교는 권력과 거리가 먼 학자들이나 하층민 등의
사회 비주류로부터 주로 환영을 받았지만,
한나라와 당나라 때 일시적이나마 주류로 부상하기도 했습니다.
『도덕경』의 ‘무위’를 통치 원리로 내세웠던 황로
사상은 한나라에 이르러, 전설의 군주인 황제와 노자를 숭배하는 종교적 성격을 띠게 됩니다.
한나라를 세운 고조는 오랜 전란에 지쳐 있던 민심을 달래기 위해 이 사상을 적극적으로 활용했지요.
단명한 통일 왕조인 수나라에 이어 등장한 당나라 시대에는 유불선을 비롯한 다양한 종교와 사상이 공존합니다.
(이는 북방의 여러 유목민 왕조들과 남방의 한족 왕조가 교차되던 혼란기를 거치면서 유목 문화와 한족 문화가 융합된 덕분이지요.)
당나라를 세운 고조는 노자를 ‘태상노군’이라 부르며 신격화했고,헌종은 집집마다 『도덕경』을 비치하게 했습니다.도교에서는 장자 역시 ‘남화진인, 남화노선’이라 신격화하고, 그의 저서 『장자』도 『남화진경』이라 부르며 성스럽게 여겼지요.
한반도에 도가가 전파된 것은 7세기 초반, 당나라 고조가 고구려에 도교 이론가를 파견하여 『도덕경』을 가르치면서부터입니다.
고려 시대에는 왕실의 안녕을 비는 의례로 도교 행사가 많이 치러지다가, 조선 시대에는 유교에 밀려 쇠퇴의 길을 걷게 됩니다.
그러나 도교가 민간 신앙과 풍습, 더 나아가 예술과 학문, 사상에 미친 영향은 결코 작지 않습니다.
도교의 신들은 중국 토착 신앙과 신선 사상에서 유래했는데, 자연 관련 신들은 우리의 토착 신앙과 유사해서 쉽게 받아들여졌습니다.
관직에 나가지 못한 유학자들은 자연에서 건강하게 살아가는 양생법을 수련하는 도교에 매력을 느꼈고, 자연과 함께하는 삶을 예찬하거나 도술, 은자가 등장하는 문학 작품들을 창작했습니다.
선조 때 허준이 지은 의학 서적인 『동의보감』에도
도교의 세계관과 양생법이 담겨 있지요.
‘대우주인 하늘과 소우주인 인간은 같다’는 언급은
한나라 때의 의학 서적인 『황제내경』의 영향을 받은 것으로,
천지와 하나 되어 불로장생의 비법을 탐구하고 수련했던 도교의 세계관과 깊은 연관이 있습니다.
도교는 19세기 후반, 탐관오리의 수탈과 외세 침입에 저항하고자 생겨난 민족 종교인 동학에도 영향을 주었습니다.
선약, 주문, 장생 같은 도교 용어를 교리에 사용한 덕분에 민중에게 친근하게 다가갈 수 있었다고
하지요.
만물의 근본인 자연으로 되돌아오라고 조언하는 도가는 세상에 나아갈 것을 강조하는 유교와 상반된 것처럼 보입니다.
하지만 오랜 세월 서로의 단점을 보완하면서 영향을 주고받는 가운데, 때로는 지배자의 이념과 저항 이념으로, 때로는 종교와 예술로 다양하게 변모하면서 오늘날까지 우리 삶 속에 녹아들어 있습니다.
Plato W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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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lato W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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