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된 삶을 고민한 고독한 방랑자, 장 자크 루소

by Plato W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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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 자크 루소 사회계약론 추상화

참된 삶을 고민한 고독한 방랑자

(1) 방랑에서 만난 구원의 손길


장 자크 루소는 1712년 스위스 제네바에서 시계 수리공 이자크 루소의 둘째아들로 태어납니다.


병약하게 태어나 생후 9일 만에 어머니와 사별한 그로서는 어머니가 남긴 소설책과 고전 작품들을

아버지와 함께 읽는 것이 유일한 낙이었습니다.


그중에서도 고대 영웅들이 등장하는

『플루타르크 영웅전』에 푹 빠졌는데,

이를 계기로 훗날 공화주의와 인간 덕성을 찬양하게 되었지요.


그러나 아버지마저 큰 싸움에 휘말려 급히 다른 도시로 떠나면서 겨우 열 살 무렵, 홀로 남겨졌고 방랑을 시작한 열여섯 살 때까지 필사와 조각 일을 배우며 스스로 숙식을 해결해야 했습니다.


루소는 고된 일과에도 틈틈이 독서에 열중했으나 이를 탐탁지 않게 여겨 사사건건 괴롭히는 주인 때문에 결국 견습공 자리를 박차고 나와 떠돌이 생활을 시작합니다.


제네바를 떠나 이곳저곳 떠돌던 루소는

어느 가톨릭 사제의 도움으로 바랑 남작 부인을 만나게 되는데,그 만남이 이후의 인생에 커다란 영향을 주었습니다.


루소는 그녀의 후원 아래

오케스트라 지휘자, 음악 교사, 비서 등 수많은 경험을 쌓으면서 지적 성장과 정서적 위안을 얻게 됩니다.


특히 프랑스의 시골 마을에 머물면서

학문에만 몰두할 수 있었던 5년간의 수련 생활은 20대의 루소에게 삶의 전환점이 되었습니다.


그는 자연을 벗삼아 플라톤, 데카르트, 로크, 라이프니츠 등의 저서를 두루 섭렵하면서 문학과 자연 과학, 음악, 신학에서 수준 높은 교양을 쌓았습니다.


(2) 핍박과 도피 속에서의 인간 탐구


20대 후반이 된 루소는 젊고 아름다운 바랑 부인을 어머니처럼 따랐고

한때 연인으로 지내기도 했지만,

홀로 서기로 결심하고 유럽의 중심인 파리에 입성합니다.


그는 악보 필사, 음악 교사로 생계를

이어 갔는데,우연히 베네치아 주재 프랑스 대사의 비서로 일할 기회가 생겨

외교와 국가 관리 업무를 접하게 됩니다.


대사와 갈등을 빚어 그 생활도 오래가지 못했지만,루소는 이 시기에 비로소 정치에 눈을 뜨면서 『사회계약론』을 구상하기 시작합니다.


디드로를 비롯한 계몽주의자들과

깊이 교류하며 『백과전서』의 집필에도 참여한 그는 계몽주의에 뿌리를 두고 있으면서도 자신만의 독창적인 사상을 선보입니다.


그 첫 작품이 1750년 디종 아카데미 현상 공모 1등 당선작인

「학문과 예술론」입니다.


‘인간은 선하게 태어났으나 문명과 제도 때문에 타락했다‘는 그의 시각은

이성의 위력에 열광하던 사람들에게 신선한 충격으로 다가왔습니다.


이후 루소는 『인간 불평등 기원론』,

소설 『신 엘로이즈』로 유럽이 주목하는 스타 문필가로 자리매김합니다.


하지만 1762년에 발표한 교육학의

고전 『에밀』이 기독교를 비판했다는 이유로 출판 금지 처분을 받으면서

루소는 하루아침에 유럽 각지를 떠도는 도망자 신세로 전락합니다.


한 달 먼저 발표한 『사회계약론』

까지 함께 금서로 지정되고 파리와 제네바에서 두 저서가 모두 불태워집니다.


게다가 동거녀 테레즈가 낳은 다섯 자녀를 모두 고아원에 버린 사실이 탄로 나면서 사람들은 더욱 분개했고,

루소의 은신처까지 찾아와 돌을 던지며 비난했지요.


이후 루소는 『고백록』을 비롯한

‘자서전 3부작’에서 스스로를 에둘러 변호하며 자기 삶의 치부까지 모조리 드러내 보입니다.


아우구스티누스의 『고백록』이 종교적 참회를 주로 다루었다면,

루소의 『고백록』은 일상 속 자신의 참모습을 담은 고백록의 효시입니다.


루소 이후 자신의 과거에 대해 쓰는

일이 유행처럼 번지면서

‘자서전’이 하나의 문학 장르로 자리 잡게 되지요.


안타깝게도 오랜 도피 생활은 병약한 체질인 루소에게 큰 스트레스였고,

정신 질환까지 생겨 고통받습니다.


파리 근교의 시골에서 식물 연구에 몰두하던 그는 1778년 7월, 30년

넘게 곁을 지킨 테레즈가 지켜보는 가운데 예순여섯을 일기로 세상을 떠납니다.

(3) 추상화 이해하기



자, 이제 추상화를 통해

루소의 삶과 사상을 한번 되짚어 볼까요?

숙였던 몸을 세워 이제 막,

어디론가 향해 가려는 한 사람!

옷도 제대로 걸치지 않고 신발도 신지 않은 원시 상태의 순수한 모습입니다.


부끄러웠던 과거까지 내보여 가면서

평생에 걸쳐 인간 문제를 탐구했던

장 자크 루소의 초상이기도 하지요.


허리춤의 나무와 꽃은

자연 상태의 인간이 순수했음을 상징합니다.


그렇다면 문명사회의 인간은 어떻게 되었을까요?

보따리를 보니, 여행이라도 떠날 모양입니다.


보따리 속의 ‘꽃’은 루소의 삶에 나침반이 되어 준 바랑 부인과의 만남과 사랑을 의미하기도 하지요.


‘책’과 ‘머리’는 각각 독학으로 쌓은 다방면의 교양,이성을 중시한 계몽주의의 영향을 가리키고,

삭발에 가까운 머리 모양은

루소가 ‘계몽주의의 반항아’로서

독창적인 사상을 선보인 것을 상징합니다.


‘빵’에 채색이 된 것에서 보듯,

루소는 민중의 현실, 인간의 가장 근본적인 문제에 바탕을 두고 차츰 자신의 생각을 발전시켜 나갑니다.


루소의 저서에는 보다 나은 미래에 대한 고민이 오롯이 담겨 있습니다.


그중 이상적인 정치 체제를 그린 『사회계약론』은 민중이 주인이 되는 세상이 올 거라는 굳은 확신에서 탄생했습니다.


그런 의미에서 견습공 생활과 방랑 시절의 고생은 루소에게 값진 자산이 된 셈입니다.


이 경험 덕분에 그는 자연적인 것과 인위적인 것,인간의 선한 본성과 사회 제도, 민중과 귀족 계급, 감정과 이성

등,서로 대립되는 개념들을 머릿속에 새길 수 있었으니까요.


‘어떻게 하면 모두가 인간답게 살 수 있을까?’고민 속에서 어느새

머리카락은 길었고, 옷도 갖춰 입었습니다.


보따리 속 나무 역시 잎이 돋아나 무성해졌습니다.


이는 루소의 고뇌로부터

근대 민주주의가 한 단계 발전할 수 있었음을 상징합니다.

자유분방하면서도 복잡한 흰색 선이 암시하듯 루소의 일생은 결코 평범하지 않았습니다.


결핍과 고독, 방랑에서 시작된 그의 삶은

화려한 명성으로 빛난 적도 있었지만

말년에는 핍박과 도피의 연속이었지요.


하지만 그 속에서도 그는 누구나 자유롭고 평등하게 살아가는 세상에 대한 꿈을 결코 포기하지 않았습니다.


보다 나은 세상을 꿈꾸는 사람들이 사라지지 않는 한,루소라는 이름은 영원히 기억될 것입니다.


Plato W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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