능력은 평범했으나 실행력이 특출했던 고독한 천재,뉴턴
1-3, 뉴턴 <프린키피아>, 뉴턴이 바꾸어 놓은 세상
by
Plato Won
Sep 10. 20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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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hoto by Plato Won
뉴턴의 프린키피아 추상화
(1) 운명의 연결고리, 갈릴레이와 뉴턴
근대 과학을 말할 때 빠질 수 없는 두 인물이
바로
갈릴레이
와
뉴턴
입니다.
이 두 과학자는 물리학 역사에 있어 큰 불씨를 가져다준 혁명적인 인물이기 때문입니다.
뉴턴은 신기하게도 갈릴레이가 죽은 1642년에 태어납니다.
같은 해에 생과 사를 달리한 이들의 흥미로운 점은 갈릴레이가 연구하기
시작한 고전 물리학을 뉴턴이 이어받아 완성시킴으로써 오늘날 우리가 배우는 물리학이 탄생하였다는 사실입니다.
갈릴레이가 자연 현상이 수학적으로
표현될 수 있음을 보여주었다면, 뉴턴은 그가 연구한 내용을 바탕으로 공식을 만들고 고전 역학의 체계를 세운 것이지요.
마치 운명의 단짝처럼, 보이지 않는 연결고리를 통해
‘따로 또 같이’
우주의 비밀을 파헤친 갈릴레이와 뉴턴.
새로운 과학은 남다른 시각과 통찰력을 지닌 이 두 명의 위대한 과학자들의 합작품으로 탄생할 수 있었습니다.
(2) 고독했던 천재 소년
1642년 12월 25일, 아이작 뉴턴은 아버지가 사망한 지 석 달 후인
크리스마스 아침에 칠삭둥이 미숙아로 태어납니다.
너무 작은 나머지 이 아이가 살아남을 것이라고는 어느 누구도 기대하지 않을 정도였지요.
그런 그에게 또 한 번의 큰 시련이
주어졌으니, 만
세 살이 되던 해에 어머니가 재혼하면서 뉴턴을 두고 떠난 사건입니다.
뉴턴의 성장 과정을 보면 그의 곁에는 친밀한 스킨십을 나눌만한 사람이
아무도 없었던 것으로 보입니다.
어머니를 대신할 외할머니와 외할아버지가
있었지만, 뉴턴과
조부모 사이에는 끈끈한 애정 관계를 느낄 수 있는 어떤 기록도 존재하지 않습니다.
어린 시절부터 혼자 있는 것에 익숙해져 버린 고독한 소년 뉴턴은 계속해서 자기만의 세계에 빠져 괴팍한 천재가 되어갑니다.
평생 알 수 없는 우울증과 신경 쇠약에 시달릴 정도로 예민하고 편집증적인 성격을 지녔던 뉴턴에 대해 훗날 심리학자들은 어린 시절의 트라우마 때문이었을 거라 추측하기도 합니다.
뉴턴은 무엇이든 한번 몰두하면 끝을 보는
성격이었고, 독서광
혹은 메모광이라는 별명으로 불릴 만큼 기록에 집착하곤 했습니다.
아마도 이런 광적인 몰입은 불안정한 자신을 극복하려는 몸부림이었을 것으로 보입니다.
부모에게 버림받았다는 슬픔과 이 세상에 나 혼자뿐이라는 외로움을 잊는 데에
공부와 연구만큼 좋은 것이 없었기 때문이지요.
뉴턴은 본격적으로 연구에 몰입하면
식사도 선 채로 했고, 새벽에 잠드는 게 일상이었습니다.
머리카락은 항상 헝클어져 있었고,
이따금 연구실에서 나와 학교 식당으로 가다가도 영감이 떠오르면 샛길로 빠져 식사를 거른 채 되돌아오기도 했습니다.
그는 주변 사람들에게 은둔 생활을 하는 것으로 유명했으며, 대부분의 시간을 혼자 방에 틀어박혀 과학과 수학적 탐구에만 몰두했다고 전해집니다.
(3) 괴짜와 광기 사이
1703년, 뉴턴은 『프린키피아』와 광학 연구 등의 성과를 인정받아
영국 왕립학회 회장
으로 취임합니다.
뉴턴 이전에 왕립학회장은 그의 숙적 로버트 훅이었는데, 뉴턴은 훅이 회장이던 시절에는 왕립학회에 자주 출석하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자신이 학회장이 된 후에는
주요 직책에 에드먼드 핼리 등 자신의 사람들을 임명하고, 학회를 자기만의 스타일로 개조하기 시작했습니다.
그는 임기 동안 학회를 개인적 권력 기구로 사용하고 독재를 일삼아
‘학회의 폭군’
이라는 별명을 얻기도 합니다.
왕립학회가 이사할 때 뉴턴의 지시로
사이가 좋지 않았던 로버트 훅의 초상화와 연구 결과물들을 모조리 태워버렸다는 소문이 돌기도 했지요.
또, 뉴턴보다 앞서 미적분을 발표한 라이프니츠도 뉴턴의 공격을 받은 희생자로 유명합니다.
뉴턴이 최초로 결과를 이끌어 낸 사람은 맞지만, 출판은 라이프니츠가 먼저 했기 때문이지요.
두 사람은 미적분의 우선권 논쟁으로 무려 20년 이상을 다퉜습니다.
그런데 최종적으로 이 분쟁을 판단한 주체는 뉴턴이 회장으로 있을 때의 영국 왕립학회였습니다.
결국, 미적분의 최초 발견자 자리는 뉴턴이 차지하게 되었고 이에 몹시 상심한 라이프니츠는 일생을 우울해하며
쓸쓸히 세상을 떠났다고 전해집니다.
이 외에도 뉴턴의 괴짜 같은 면모를 보여주는 일화가 있습니다.
말년에 무리한 주식 투자로 전 재산을 날린 사건이지요. 1720년, 역사상 최초로 발생한 주식 투기 사건인 영국 남해회사 사건 당시, 뉴턴은 약 20억에 달하는 주식에 투자했다가 대실패를 경험합니다.
그는 전 재산을 투자한 것도 모자라 대출까지 동원해 자본금을 모두 날렸는데,
이때 뉴턴은 유명한 말을 남깁니다.
“천체의 움직임은 계산할 수 있지만,
인간의 광기는 계산할 수 없다.”
이처럼 천재성과 광기 사이에서
지나치게 인간적이었던 그의 면모가 탁월한 업적 이면에 숨어있습니다.
(4) 추상화 이해하기
이제, 추상화와 연결하여 뉴턴의 삶을 다시 한번 들여다볼까요?
커다란 사과 형상의 기둥이 있습니다.
이 기둥은 사과처럼 보이기도 하고, 소년의 얼굴처럼 보이기도 합니다.
소년의 머릿속에는 큰 씨앗이 심어져 있고,
책으로 이어진 계단이 기둥을 감싸고 있네요.
마치 책 외에 소년의 곁에는 아무것도 없는 것처럼 보입니다.
고요하고 쓸쓸해 보이는 소년의 모습은
외롭고 불우했던 뉴턴의 유년기를 상징합니다.
늘 고독했던 그는 자연현상을 관찰하거나 책을 읽으며 외로움을 달랬습니다.
이제 소년의 주변으로 집들과 나무들이 채워지고, 더욱 촘촘해진 책 계단이 그의 머리를 감싸고 있습니다.
이는 다양한 학문에 관심을 보이며 스스로 지식 쌓기를 즐겼던 뉴턴의 대학 시절을 상징합니다.
곧이어 소년의 머리 위로 풍성한 잎을 가진 사과나무가 자라났습니다.
사과 기둥의 전체적인 실루엣은 전구 모양과도 닮아있는데, 이는 흑사병이 유행하자 고향으로 내려온 뉴턴이 보낸
2년간의 ‘창조적 휴가’를 상징합니다.
홀로 사색과 탐구, 실험에 몰두했던 뉴턴의 노력이 빛을 발하며 잎이 매우 풍성한 사과나무, 즉 위대한 성과를 탄생시킨 것이지요.
열쇠 구멍으로 바라본 우주에는 거대한 거인의 형상이 비춥니다.
짙은 파란색은 끝없는 우주의 비밀과 끊임없는 뉴턴의 고뇌를 상징합니다.
뉴턴은 세 가지 운동 법칙, 만유인력의 법칙, 미적분을 발견해 내며
지구에서 적용되는 운동 법칙과 중력이
우주에서도 동일하게 적용된다는 사실을 입증해 냈습니다.
그리고 그의 대표작 『프린키피아』에
이 위대한 업적들을 담아 발표하며 근대 과학의 시작을 알렸습니다.
이제, 뉴턴이 선 자리에는
영광을 상징하는 금빛 양탄자가 깔려 있네요.
열쇠 구멍 속에는 우주의 행성들이 제각기 자리에서 움직이며, 별들이 반짝이고 있습니다.
뉴턴은 과학자에게 최고 영예인 영국 왕립학회의 의장직으로 취임하고,
영국 앤 여왕으로부터 기사 작위를 받으며 큰 명예를 누립니다.
아무도 알아낼 수 없었던 미지의 영역,
우주의 비밀을 깨우친 뉴턴은 마침내 거대한 진리의 거인을 마주합니다.
“나의 능력은 평범하다. 오로지 실행력이 나를 성공으로 이끌었다.
인내와 노력 없는 천재는 이 세상에 존재하지 않는다.”
자연 현상에 대한 끝없는 호기심으로 진리의 세계를 집요하게 파고든 뉴턴.
그의 유년기는 외롭고 고독했으나, 그의 노년은 매우 영예로웠고, 죽음 이후에는 위대한 천재 과학자로 모든 인류에게 기억되고 있습니다.
뉴턴을 특별히 좋아하는 이유는
그의 천재성 때문이 아니라 끊임없이
샘솟는 그의 호기심과 집요한 사유의
습관 때문이다.
세상의 모든 새로움은
인간의 호기심으로부터 잉태된다.
Plato Won
제각각이라서 새롭다
그 모습 그대로 그 자리에 그 정취로 오롯이,15년 전 추억이 새록새록 묻어나는 남촌에서의 하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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