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트남 국가 사회 전체가 키 크기 열풍이다. 2022년 11월 베트남 수도 하노이 시 당국은 2030년까지 남성 평균 신장을 170.5cm, 여성 평균 신장을 159cm로 높이겠다고 목표를 내걸었다. 베트남 보건부 산하 모자보건국의 자료에 따르면 2020년 기준 베트남 18세 남성은 168.1cm / 여성은 155.6cm로 각기 20년 전에 비해 5.8cm / 3.3cm 성장했다. 지난 20년간의 성장 추이로 봤을 때 하노이 시의 2030년 목표 달성은 무난해 보인다.
그런데 한 나라의 수도에서 평균 키 성장을 선언할 정도로 베트남에서 키 성장은 중요한 이슈일까? 이는 국가적 차원의 관심이 반영되어 있으며 베트남 전역의 건강과 생활 수준에 긍정적인 영향을 미치고자 하는 상징적 선언으로 볼 수 있다. 또한 평균 신장은 국민들의 영양 상태와 건강 수준을 나타내는 중요한 지표이다. 일반 국민들이 복잡한 경제 지표를 보지 않더라도 젊은 세대들의 큰 키는 국가 발전의 변화를 쉽게 파악할 수 있는 표상이기도 하다. 미국의 경제 봉쇄로 1988년까지 식량 부족으로 300만 명이 기아에 허덕였던 베트남 기성 세대에게는 쑥쑥 자라나는 젊은 세대가 국가의 밝은 미래 희망으로 보일 수 밖에 없다.
23년 6월 베트남 언론매체인 VN Express는 ‘자녀의 키 크기 운동을 위해 수천만 동을 지출한다’는 기사를 보도했다. 기사에 따르면 피트니스 센터에는 아이들의 성장 발육에 도움이 되는 운동을 시키는 부모들이 돈을 아끼지 않는다. 일반 공장 노동자의 급여가 30만원이 채 안되는 베트남에서 1회 운동에 3만원이 넘는 운동을 시키는 부모들이 많다는 것이다. 7월 또다른 베트남 언론인 Vietnam Net에서는 자녀들에게 성장 호르몬 주사를 맞게 하려는 부모들의 이야기가 보도 되었다. 부모들이 자녀들에게 칼슘과 비타민을 먹여도 키가 크지 않는다며 전문의 상담을 통해 성장 호르몬 주사라는 확실한 방법을 찾고 있다는 내용이다. 기사의 말미에는 베트남에서 성장 호르몬 주사를 맞지 못하면 다른 나라에 가서라도 맞추겠다는 강한 의지를 보이는 부모의 모습도 보여준다.
베트남에서는 연령이 낮아질수록 키 성장 욕구는 치열하다. 1세~ 3세 아이들이 먹는 분유에도 키 성장 기능을 강조한 제품들이 절찬리에 판매 중이다. 베트남의 현지 기업인 비나밀크와 누티푸드가 키 성장을 우회적으로 표기한 ‘그로우 업(Grow Up)’ 명기를 통해 다양한 키성장 분유를 제조 판매하며 시장을 주도하고 있다. 이들은 자체 브랜드 뿐만 아니라 스웨덴, 일본 브랜드도 수입하며 차별화 하고 있다.
이 외에도 애버트과 같은 다국적 제약회사와 같은 네덜란드 업체도 프리소도 키성장 제품 시장 확대를 꾀하고 있다. 한국 기업 중에는 일동후디스의 하이키드가 베트남 엄마들 사이에서 큰 인기다. 필자도 한국에 출장 간다고 하면 영유아가 있는 베트남 지인들이 일동후디스 분유를 사다달라고 부탁하는 일이 다반사였다. 베트남에 정식 수입되기 전부터 입소문이나 보따리상들을 통해 비공식 유통되던 제품들이 정식으로 수입되면서 매출이 급증했다. 회사 자체적인 발표에 따르면 2022년 기준 약 400억원 가량이 베트남에서 판매되었다.
베트남 1위 우유회사이자 베트남 사람들에게 가장 존경 받는 국민기업인 비나밀크는 저소득층 아이들의 키성장을 위한 사회 공헌 활동도 열심이다. 도시와 농어촌 산간 아이들이 차별 없이 함께 키가 커야 국가도 성장할 수 있다는 취지로 ‘솟아라 베트남’ (Vuon Cao Vietnam)’ 이라는 캠페인을 2008년부터 17년째 진행하고 있다. ‘100만잔의 우유’라는 이름으로 시작한 행사는 빈곤 아동들, 성장 발육이 부진한 산간 지역, 특히 소수 민족 아이들에게 우유를 선물하고 있다. 현재까지 50만명의 아이들에게 2000억 베트남동 (원화 110억원) 가량의 우유를 선물했는데 더 많은 아이들이 도움을 필요로 한다. 많은 한국 기업들이 베트남에서 어떤 사회 공헌을 해야 할지 고민하는데 필자는 이 행사에 적극 관심을 갖기를 권한다. 베트남 정부는 지역 균형 발전에 신경을 많이 쓰는데 한국 기업들이 가려운 곳을 긁어준다면 좋아할 수 밖에 없다.
베트남 젊은 세대들의 키가 커지면서 소비재 시장에 다양한 변화가 일어나고 있다. 우선 사람들의 먹는 양이 달라졌다. 올 해 베트남 1위 라면업체인 에이스쿡의 대표 상품인 하오하오는 기존 75g에서 100g으로 33% 증량한 봉지 라면을 출시했다. 한국 봉지라면의 중량이 120g 내외인 것을 감안하면 한국에 비해서는 여전히 적은 양이지만 베트남에서는 파격적인 변화이다. 비나밀크 역시 180ml였던 멸균우유팩을 250ml로 38% 증량한 제품을 출시하고 메인 상품으로 집중하고 있다. 1995년 오리온의 초코파이가 처음 베트남에 진출했을 때만 하더라도 초코파이 1개는 출출할 때 먹는 식사 한끼 대용품으로 인기 있었다. 하지만 이제 베트남 청소년들은 2개는 먹어야 양이 찬다고 말한다.
베트남 책상과 의자의 크기도 달라지고 있다. 2023년 10월 베트남 교육훈련부는 과학기술부, 보건부, 베트남 교육과학연구소와 협력하여 학생들의 실제 신체 상태에 맞게 책상과 의자의 규격을 조정하고 개정할 계획을 발표했다. 학교 뿐만 아니라 일반 식당의 테이블도 달라지고 있다. 베트남 식당의 4인용 테이블은 한국인 4명이 앉기에는 다소 비좁았으나 이제는 베트남 젊은 세대들에게도 맞지 않다. 그래서 새로 생긴 식당들의 테이블은 전보다 넓어지고 있다. 사람이 커지고 가구가 커지면 보다 넓은 집에서 살게 된다. 베트남 패션 업계도 크게 변화할 것으로 보인다. 단순하게 선호하는 옷 디자인의 사이즈만 커지는 것이 아니라 체격 자체가 달라지면서 기존과 다른 취향의 옷 차림과 트렌드가 생겨날 수 밖에 없다.
마지막으로 베트남 축구 국가대표 팀의 성적도 향상되지 않을까 예상된다. 한국 축가 국가대표팀도 2000년대 전후로 평균 신장이 커지면서 좋은 성적을 내고 있는데 베트남도 그 모습이 예측된다. 빠르게 커 가는 베트남에서 10년 후에는 베트남 축구 국가 대표팀이 월드컵 본선에 진출했다는 소식도 들려오지 않을까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