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이터센터 러시: 아세안, 글로벌 IT 기업들의 격전지

데이터센터 러시: 아세안, 글로벌 IT 기업들의 격전지

최근 아세안 지역 디지털 경제가 폭발적으로 성장하며 글로벌 IT 대기업들의 데이터센터 투자가 급증하고 있다. 핀테크, 전자상거래, 영상 콘텐츠 등 다양한 분야의 디지털 경제가 확대되면서 아세안은 디지털 경제 허브로 자리 잡고 있다. 아세안 경제 발전으로 중산층 증가와 통신 인프라 확충이 동시에 벌어지면서 스마트폰 보급률도 급증하고 있다. 게다가 아세안은 디지털 친화적인 젊은 인구가 풍부한 지역이다 보니 디지털 산업 확산 속도는 나날이 빨라지고 있다.

2024년 11월 발표된 구글의 디지털 경제 보고서(E-conomy SEA 2024)에 따르면 2024년 아세안 지역 디지털 경제 규모는 2,640억 달러로(382조 원) 예측되었다. 이는 전년 대비 15% 성장한 것으로 3년 연속 두 자릿수 성장을 기록한 놀라운 성과다. 아울러 2030년 디지털 경제 규모는 6년만에 275% 성장한 1조 달러(1435조 원)에 이를 것으로 전망되었다. 이 급성장은 데이터센터 수요 증가와 투자 러시에 직접적으로 연결되고 있다. 그간 아세안 지역 데이터센터는 정치, 사회적으로 안정적이고 IT 인프라가 잘 갖추어진 싱가포르에 집중되었다. 하지만 급증하는 데이터센터에 소비되는 전력량이 급증하자 2019년 싱가포르 정부는 신규 데이터센터 개발 중단을 선언한다. 3년 만인 2022년 다시 데이터 센터 개발 재개를 허용했지만 재생에너지 사용 비율을 의무화하는 등 까다로운 조건을 충족해야만 한다. 그도 그럴 것이 2024년 기준 싱가포르 전체 사용 전력의 7%를 데이터센터가 소비하고 있다. 2030년에는 12%까지 치솟을 것으로 예측되고 있어 싱가포르 정부의 고민이 깊다. 이에 신규 데이터센터 투자는 인도네시아와 말레이시아로 몰리고 있다.

인구 2억8천만의 거대 시장 인도네시아에는 고젝(배달,교통), 토코페디아(전자상거래), 트래블로카(여행), 오보(결제) 등등 10억 달러 (1조5천억 원) 이상 기업가치를 지닌 디지털 유니콘 기업들이 계속해서 탄생하고 있다. 게다가 2023년 기준 인터넷을 사용하는 인도네시아인은 2억명이 넘어 데이터 소비와 클라우드 서비스 수요는 폭발적으로 증가하고 있다. 2020년 6월 구글은 데이터센터 수요가 폭발하는 인도네시아에 여러 데이터 센터 운영을 시작했다. 2021년 12월 아마존 역시 50억 달러를 (7조 2000억 원)투자해 2026년까지 클라우드 서비스 인프라를 강화하고 2만 4700개의 직간접 일자리를 창출하는 대규모 데이터센터를 운영했다. 마이크로소프트는 뒤늦은 2024년 4월 인도네시아에 17억 달러를 투자해 향후 4년간 클라우드 서비스와 인공지능 확장하기로 발표했다.

한편 말레이시아에 급증하는 데이터센터 투자는 인도네시아와 다른 이유가 있다. 인도네시아는 자체적인 데이터 수요가 급증하고 있는 거대 시장으로서 투자가 몰렸다면 말레이시아는 싱가포르의 보완 투자처로서 각광받고 있다. 싱가포르의 높은 임대료와 인건비, 전기료에 비해 말레이시아는 매력적인 경쟁력을 갖추었다. 글로벌 부동산 종합 서비스 업체인 쿠시먼앤드웨이크필드의 2023 11월 보고서에 따르면 말레이시아 산업용 전력 요금은 킬로와트시(kwh)당 약 0.1달러이다. 이에 반해 싱가포르는 0.27달러로 말레이시아 보다 2배 이상 비싸다. 해당 보고서의 데이터센터 건립을 위한 ‘지역별 토지비용지수’에 따르면 싱가포르는 1제곱미터당 $11,573로 세계에서 가장 비쌌다. 하지만 싱가포르와 국경을 접하는 말레이시아의 조호르바루는 $624로 싱가포르의 5% 수준이다. 이처럼 싱가포르에 인접해 있으면서 비용 측면에서 경쟁력이 있는 말레이시아에 데이터센터 투자가 물밀 듯 몰려 들고 있다.

2023년 3월 아마존은 62억 달러(9조 원)를 투자해 말레이시아에 2037년까지 클라우드 서비스 인프라를 강화하기로 했다. 이 사업의 일환으로 24년 8월에는 여러 데이터센터들을 설치 운영하기 시작했다. 아마존은 이 데이터 센터들이 향후 5만개 이상 정규직 일자리를 창출할 것이라고 밝혔다. 24년 5월 마이크로소프트는 말레이시아의 클라우드 및 인공지능 인프라에 향후 4년간 22억 달러(3조2천억 원)를 투자하기로 했다. 이에 질세라 구글 역시 24년 5월에 20억 달러 (2조9000억 원)를 투자해 말레이시아에 첫 데이터 센터와 클라우드 시설 투자 계획을 발표했다. 2023년 12월 말레이시아를 방문했던 엔비디아 CEO 젠슨황은 말레이시아를 인공지능 분야 세계 20위 국가로 발전시키겠다고 공언했다. 이를 위해 인공지능 연구를 위한 센터 설립을 지원하고 말레이시아 최초 슈퍼컴퓨터 구축 사업에 동참하기로 했다.

구글말레이시아 데이터센터 착공식_출처_구글말레이시아 X

말레이시아에 데이터센터 투자가 몰리는 이유는 비용 절감 뿐 아니라 말레이시아 정부 정책의 뒷받침 역시 큰 역할을 하고있다. 말레이시아 정부는 ‘마이 디지털 (My Digital_말레이시아 약자 MY와 ‘나의 것’을 뜻하는 My 중의적 사용)’ 계획을 통해 데이터센터와 클라우드 인프라를 전략적으로 육성하고 있다. 말레이시아 정부는 2025년까지 디지털 경제가 국가 전체 GDP의 25.5%를 차지하도록 목표를 설정하고 2024년 12월에는 인공지능 사무소(NAIO)를 출범해 정부 차원의 지원을 강화하고 있다. 또한 말레이시아는 국제전기통신연합 ITU가 해마다 발표하는 정보통신 발전지수에서 2023년 15위를 기록했다. 싱가포르 4위, 한국 8위, 일본 14위에 이은 아시아에서 4번째 순위이다. 이는 말레이시아가 디지털 경제에서 선두 주자로 나아갈 수 있는 잠재력을 보여주는 지표이다. 24년 6월 글로벌 금융기관인 CGS 인터내셔널의 <네비게이팅 아세안>에 따르면 2030년 말레이시아 데이터센터 용량은 3221메가와트시로 인도네시아 (1519메가와트시), 싱가포르 (1445메가와트시) 두 나라를 합친 것 보다도 많아질 것으로 예상된다. 조만간 말레이시아가 싱가포르를 제치고 아세안 데이터센터의 새로운 허브가 되는 것이다.

아세안 디지털 경제를 뒷받침할 허브로 말레시아와 인도네시아가 떠오르는 상황이 한국 기업에게도 좋은 기회가 되고 있다. LG CNS, LG전자, LG에너지솔루션 등 LG그룹 계열사 3인방은 공동으로 3억달러(4300억 원) 인도네시아 데이터센터 프로젝트를 수주했다. 국내외 다양한 데이터센터 수주 경험이 풍부한 LG CNS는 2023년 9월 인도네시아 현지 기업인 시나르마스 그룹과 합작 법인을 설립해 인도네시아 프로젝트에 적극 뛰었다. LG전자는 데이터센터에서 발생하는 열을 최소한의 에너지 사용으로 냉각시키는 칠러를 개발해 공급한다. LG에너지솔루션은 데이터센터에 전력이 차단되어도 데이터를 보호하고 화재 확산을 방지하는 특허 기술을 공급한다.

폭발적으로 성장하는 아세안 디지털경제를 뒷받침할 데이터센터 투자 러쉬가 한국 기업들에게 새로운 기회로 다가오고 있다. 한국 기업들은 친환경 기술 협력 및 에너지 효율화를 통해 아세안 디지털 경제 인프라 시장에서 입지를 강화해야만 한다. 이는 경제적 이익을 가져다 줄 뿐 아니라 지속 가능한 발전이라는 글로벌 트렌드이기도 하다. 2025년 새 해에도 아세안 데이터센터 시장은 지속적인 성장을 보일 것으로 예상되며 한국 기업들이 이를 활용할 전략적 접근이 필요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