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쏘블리 Jan 28. 2018

#6. 더 아팠어야 했는데.

환절기


환절기를 지나며 나는 더 아팠어야 했는데, 아프지 않으려 하지 말고, 일을 접어두고 병원에 가지 말고, 따뜻한 물을 많이 마시지 말고, 구깃구깃한 약봉지를 입에 털어넣지 말고, 밀린 걱정들을 떠올려가며 더 아팠어어 했는데.


앓아누워 전기요를 세게 틀고, 지난 인연들을 생각할 겨를도 없이 땀을 흘리며, 밖에서 오는 추위와 안에서 퍼지는 신열 사이에서 어쩔줄 몰랐어야 했는데.


아무리 손을 뻗어도 당신과 닿지 못하는 악몽을 꾸고, 땀에 젖은 이불을 뒤집어 덮고, 길고 질긴 밤을 보냈어야 했는데,


새로 맞은 아침, 힘겹게 들어오는 창의 빛을 보며 조금 나아진 것 같은 몸 이곳저곳을 만져보며, 다시 태어난 것 같은 기분을 맞았어야 했는데


자리에 일어나서 이렇게 살지 말아야지, 이렇게 살지 말아야지, 몇번이고 되뇌었어야 했는데.


- 박준<운다고 달라지는 일은 아무것도 없겠지만>중에서


아프면 아프다고 해도 되는건데,

힘들면 힘들다고 해도 되는건데,

미우면 밉다고 해도 되는건데,

서운하면 서운하다고 해도 되는건데,


때론 책임감으로, 때론 괜한 배려심으로,

괜찮다 괜찮다.

진짜 괜찮은줄 알았었네.


무엇인가 잘못되었다, 느낄 때쯤엔

밑바닥에서 아우성치는

불쌍하고 초라한 아이가 울고 있네.


아플때 아프다고 했으면

힘들때 힘들다고 했으면

미울때 밉다고 서운할때 서운하다고 했으면

불쌍하고 초라한 아이가 툭툭 털고 일어났을텐데.


불쌍하고 초라한 아이를 위로하는 법을 이제서야 알았다.


애썼다, 그 동안의 시간을 버텨낸 아이야



by.쏘블리




매거진의 이전글 #5. 사랑받고 싶으면 사랑하라.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