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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마음탐험가 Jun 03. 2024

절반의 양보

아이의 하원 길에 아이스크림 할인 매장에 갔다. 사준다고 약속을 해버렸으니 어쩔 수 없었다. 나는 스크류바, 아이는 초코 빵빠레를 골랐다. 아이스크림을 맛본 아이는 완전한 몰입의 세계로 들어갔다. 아마 집에 가고 있다는 것도, 걷고 있다는 사실도, 아니 자기가 누구인지 조차도 의식하지 못했을지 모른다. “맛있어?” 대답 없는 그는 마냥 행복해 보였다. 하지만 아무래도 아이에게 양이 너무 많은 것이 아닐까 싶었다. 차라리 쌍쌍바를 사서 나눠먹을 걸. “반만 먹자. 너무 많이 먹으면 배탈 나.” 아이스크림을 빼앗았다. 아이에게 나의 또 다른 이름은 악마이지 않을까? 천국을 앗아갔으니 말이다. 집에 가면 또 다른 재미가 있을 것이라며 간곡하게 호소했다. “다음에 또 아이스크림 먹어야지~!” 이내 웃으며 뛰어가는 아이의 뒷모습을 흐뭇하게 바라본다.


어느 저녁에는 치킨을 먹었다. ‘순살 마일드 맵슐랭 반반 치킨’. 항상 즐겨 먹는 그 메뉴였다. 치킨이라면 나도 완전한 몰입을 경험한다. 최고의 치킨을 먹기 위해 포장 주문을 하고, 가게 앞에서 대기한다. 출발선 앞에 서있는 단거리 선수와도 같은 마음가짐이다. 치킨이 나오면 차에 올라타서 최단거리로 이동한다. “치킨 왔다!” 집에 들어가자마자 치킨무 국물을 버리고 젓가락을 챙겨 자리에 앉는다. 그리고 맵슐랭 한 조각. 모든 감정이 절정으로 치닫는 바로 그 순간을 사랑한다. 몇 조각을 삼키자 정신이 차려진다. 아내가 아이에게 치킨을 먹기 좋게 잘라주고 있었다. 흐뭇하게 그 모습을 바라보다가 흠칫 놀랐다. 아이가 치킨을 너무 잘 먹는 것이었다. 아직 매운 것은 입에 대지 않으니 반은 오롯이 나의 것이지만, 언젠가는 한 마리를 다 양보해야 하는 날이 오지 않을까? 잠깐 위기감을 느꼈다. 그런데 다시 생각해 보니 괜찮을 것 같았다. 나는 어른이니까 한 마리 더 시키면 되는 것 아닌가? “많이 먹어~!” 아이의 먹는 모습을 흐뭇하게 바라본다.


트레이더스에 가면 킬바사 부대찌개 밀키트를 자주 사 먹는다. 소스를 3분의 2만 넣으면 우리 부부의 입맛에 딱 맞다. 둘이 몰입해서 먹다 보면 어느새 바닥이 드러나곤 했다. 그런데 양이 애매한 것이 문제였다. 다 먹으면 배가 너무 불러서 거북할 정도였고, 남기기엔 아까웠다. 진지하게 고민하다가 묘안을 냈다. 반을 나눠서 먹기로. 라면사리를 넣기 전에 덜어서 보관하면 되는 것 아닌가? 하이파이브를 치며 행복해하는 나와 아내를 보고 아이가 똘망똘망한 눈으로 물었다. “왜 박수를 쳐요?” 그 질문에 나는 또 흠칫 놀랐다. 아이의 순수한 질문이 내 귀에는 다르게 들렸던 것이다. “내가 조금 더 크면 나한테도 부대찌개 지분이 생길 거 같은데. 반반 나누는 게 뭐 그리 대단한 아이디어라고 박수까지 치십니까?” 어쩌면 아이스크림을 빼앗은 것에 대한 보복이 시작된 것이 아닐까? 근심에 빠져 국물을 푸고 있는 나를 보며 아이는 박수를 쳐보고 있을 뿐이었다. 헛웃음이 나왔다. ‘무슨 쓸데없는 생각을 하고 있는 거야?’ 뽀로로 소시지를 반 잘라먹는 아이의 모습을 흐뭇하게 바라보며, 언젠가 다가올 운명의 그날을 준비하기로 결심했다.


안녕하세요! '마음탐험가'입니다.
동탄에서 고전 독서 모임과 글쓰기 모임을 진행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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