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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마음탐험가 Jun 08. 2024

어느 토요일, 당근 여행

아내가 주소와 함께 종이가방을 건넨다. 당근이다. 문고리에 걸고 오라고 했다. “보통 물건을 받을 사람이 오는 거 아니야?” 토요일 오후에 갑작스럽게 외출하기가 싫어서 아내에게 물었다. "지난번에 뭐 빌려주셨던 분이야. 우리 동네니까 가볍게 걸어갔다와!" 주소를 보니 우리 아파트 단지다. 점심을 먹고 좀 나른해졌는데 산책하면서 잠이라도 깨야겠다고 생각했다. 내려가는 길에 재활용품도 챙겨서 내려가기로 했다. 아니면 저녁에 또 나가야 할지 모르니까.


문을 열고 나가는데 이웃집 어르신도 뭔가 버릴 것을 잔뜩 들고 나오신다. 가끔 우리 아이에게 용돈도 주시는 고마운 분이다. 인사를 나누고 엘리베이터를 함께 기다린다. “비가 그쳤네요?” “그렇네. 오는 김에 좀 더 와야 되는데. 애기는 집에 있어요?” “네. 낮잠 자고 있어요.” 미소로 대화가 끊긴다. 요즘엔 이웃과 좋은 관계를 맺는다는 것이 얼마나 귀한 일인지 모른다. 재활용품 수거장에 도착했다. “이 기계 뚜껑 열리는 걸 기다리다 보면 뚜껑이 열린다니까요?” 어쭙잖은 말장난에 어르신이 웃어주시니 다행이다.


천천히 개고 있는 하늘, 구름 뒤에서 햇볕이 따갑게 내리쬔다. 아직 공기도 습해서 곧 땀이 많이 나겠다는 생각이 든다. 얼른 다녀와야지. 아파트 현관 비밀번호를 누르고 엘리베이터를 탄다. 꼭대기 층, 복도 가장 안쪽 집이다. 걸어가다 문득 창밖을 내다본다. ‘오, 여기는 이런 풍경이네!’ 같은 동네의 다른 풍경이라니, 당근이 아니었으면 볼 기회가 없었을 텐데. 이 작은 행복이 오늘을 특별한 날로 만들어준다. 마치 당근을 통해 여행이라도 한 것 같다.


돌아오는 길에 편의점에 들렀다. 아내와 함께 뭐라도 마시면서 내가 겪은 작은 에피소드를 이야기해 주고 싶었다. 어쩌면 아내도 이 당근 여행을 사랑하게 될지 모르니까.


안녕하세요! '마음탐험가'입니다.
동탄에서 고전 독서 모임과 글쓰기 모임을 진행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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