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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마음탐험가 Jun 26. 2024

분노의 자아 성찰

부정적인 감정이 마음의 그릇에서 넘칠 듯 말 듯했다. 살짝만 건드려도 와장창 엎어지는 건 아닌지 걱정이 되었다. 딴짓을 하며 정신을 분산시키면 감정의 수위가 좀 줄어들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글을 쓰기로 정해진 시간이니 글을 꼭 써야 한다고 생각했다. 어두움이 글에 묻어 나오면 어쩌지? 읽는 사람한테 괜히 부정적인 생각이 흘러가면 어떡하지? 글을 쓰면 쓸수록 두려움이 일어났다. 오전 내내 어떻게든 해보려고 안간힘을 썼지만 햇볕만 점점 내 자리를 침범해오고 있었다. 점심시간이 되었다. 배가 고팠고, 전의는 사라졌다. 결국 글쓰기는 멈추고, 웬수 같은 내 마음을 먼저 들여다보기로 했다.


오늘 감정에서 두드러진 친구는 분노였다. 왜 분노가 일어나 나를 괴롭히고 있었을까? 분노할 만한 생각들을 하다 보니 그렇게 된 것 같다. 글쓰기 모임에서 한 분이 ‘송충이’ 같은 인간의 예가 본인 주변에는 없으시다고 했다. 내가 평소에 경멸하고 있던 사람들의 예시를 생각나는 대로 써서 올려드렸다. 예를 들자면, 무단횡단 하면서 내 차 쪽은 절대 쳐다보지도 않는 50대 아주머니, 고양이 배변 모래를 베란다 배수관에 버려서 1층 집에 분노의 역류를 경험하게 하신 입주민, 변기로 안 먹는 깍두기를 잔뜩 버려서 오수 배관을 뚫는 난리를 벌이게 만든 사람, 재활용 쓰레기장에 비합리적으로 쓰레기를 버리신 분, 공용 음식물 쓰레기통 위에 음식물 봉투채 올려놓고 가버린 사람, 인도 중간에 전동킥보드 나란히 세워서 길을 막은 사람들, 자동차 주차장 뒷부분에 먹다 남은 커피컵 두고 간 사람, 지하 엘리베이터 옆 계단실에 수시로 변을 보는 사람, 도서관 책을 오랫동안 연체하고 있는 사람 등이었다. 이 중에서 내가 직접 겪은 몇몇 예는 지금 생각해도 화가 치밀 정도였다.


이 리스트를 통해 나 자신에 대해 몇 가지를 분석해 볼 수 있다. 우선 나는 다른 사람을 배려하지 않고 규범을 무시하는 이기적인 사람들에게 분노한다. 나는 “아주 사소한 것이라도 남에게 피해를 입히는 행동은 잘못된 것”이라는 강력한 신념을 가지고 있다. 이 신념의 크기가 분노의 크기다. 그런데 내 분노는 사회적인 이슈 같은 큰 문제보다는 내 주변에 일어나는 작은 일들에 더 집중된다. 즉, 내 분노는 내가 내 주변을 완벽하게 통제하지 못한다는 좌절감의 표출이다.


나는 도덕적인 기준이 높다. 나를 도덕적으로 나은 사람, 올바른 사람이라고 여긴다. 위의 리스트에 나온 행위들은 ‘나라면 하지 않을 행동’이라는 카테고리에 넣을 수 있을 것이다. 나는 다른 사람들도 나와 같거나, 나보다 더 높은 도덕적 기준을 가지기를 기대한다. 그 기준에 만족하지 못하는 사람은 폄하하곤 한다. 그런데 이런 사고는 곧 모순에 부딪힌다. 나도 인간이기에 실수를 하기 때문이다. 나는 도덕적으로 흠이 없는 사람이 아니다. 그러니 그럴 때는 나 자신에게도 분노하고, 나를 폄하한다. 그것이 공평하기 때문이다. 결국 도덕적 기준이 높다는 것은 내가 우월하다는 말이 아니라, 자기 수용을 하기 힘들다는 것을 말해주는 것이다. 그런데 여기에서 한 번 더 모순적인 지점을 볼 수 있다. 내가 실수하는 것처럼, 다른 사람도 실수한다고 머리로는 의식하고 있다. 표면적으로도 그렇게 말하고 행동한다. 하지만 속마음으로는 다른 사람들이 실수했을 가능성보다는 나쁜 의도를 가졌다는 판단이 앞선다는 점이다.


모순적이면서도 오만하다. 이런 내 태도 때문에 상처받은 사람들도 많다. 그래서 나는 반드시 이 이슈를 다루고 싶다. 어떻게 하면 좋을까? 이 모순의 쳇바퀴와 신념의 감옥에서 어떻게 하면 빠져나올 수 있을까? 나는 내가 할 수 있는 모든 노력을 다 했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이해는 첫 번째 단계일 뿐이다. 나를 인식하고 파악하기 위해 이 글을 썼다면, 이제는 분노의 대상이 되는 이들의 입장에 서서 이해의 노력을 해야 할 때다. 화를 안 내야지, 남을 폄하하지 말아야지와 같은 단순한 결심보다는 더 적극적으로 사람들에게 다가서는 실제적인 걸음을 걸어야 할 것이다. 나 자신에게 분노할 수도 있지만, 그다음에는 반드시 나를 수용하려는 노력들을 해봐야겠다. 주변을 다 통제하고 싶은 욕망도 버려야 할 것이다. 어쩌면 도덕 기준을 낮추고 사는 연습을 해봐야 할지도 모르겠다. 언젠가는 나도 “다 사정이 있었겠지. 허허허.”하며 넓은 마음으로 상황을 넘길 수 있는 날이 올까? 조금은 지친 것 같다. 오늘의 자아 성찰은 여기에서 맺어야겠다.


안녕하세요! '마음탐험가'입니다.
동탄에서 고전 독서 모임과 글쓰기 모임을 진행하고 있습니다.
저에 대해, 모임에 대해 궁금하시다면 아래 링크트리로 와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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