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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마음탐험가 Jun 28. 2024

터닝포인트

크록스 신발이 찢어졌다. 왼쪽 엄지발가락 쪽 구멍 뚫린 부분에서 발바닥 옆면까지 처참한 상처가 났다. 공사현장에 쓰이는 굵은 철사가 구멍에 걸린 것도 모르고 발을 뻗었다가 몸이 앞으로 기울어지면서 이 사달이 났다. 다행히 다친 곳은 하나도 없었다. 구매한 지 몇 달이 되지도 않았기에 신발만 아까웠다. 속상함과 감사함이 뒤섞인 감정이었다.

‘버려야겠지?’

당연히 그래야 할 것 같았다. 하지만 아무래도 아까운 마음도 있었다. 인스타 스토리에 사진을 올려서 설문조사를 했다.

“급해요 여러분 / 1. 신는다 / 2. 버린다 / 3. 발은 괜찮으세요? 네 괜찮습니다. 속상하고 감사해요. / 4. 차은우 잘생김”

설문 결과 1등은 4번이었다. 62%의 인친분들이 차은우가 잘생긴 것을 선택해 주셨다. 유머를 아시는 분들이다. 그 외에 감사하게도 3번이 25%, 합리적인 1번이 13%였다. 2번 버린다에 투표한 분은 아무도 없었다. 이 모든 결과를 종합해 볼 때 인친들은 신발을 버리지 않아도 괜찮다고 판단한 것이 아닐까? 이에 힘을 얻어서 올해까지만 신발을 잘 신어 보기로 결정했다. 어차피 편하게 막 신는 신발 아니었던가?


편하게 막 신는 신발 하니까 당연하다는 듯 기억이 떠올랐다. 10년이 지난 일인데도 종종 아내와도 웃으며 이야기하는 에피소드다. 어느 날 아내와 신발 가게에 들렀다. 편하게 막 신는 신발을 찾고 있었다. 사장님은 신발을 몇 개 꺼내 보여주었다. 그런데 뭐 하나 마음에 드는 게 없었다. 어떤 건 비쌌고, 어떤 건 디자인이 마음에 안 들었다.

“이거는 주방에서 신는 신발 같은데? 매일 구두를 신기는 발이 아프지 않을까요? 슬리퍼? 겨울에는 못 신을 텐데.” 그러자 사장님은 말이 없어지셨다. 아내가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

“편하게 막 신는 거 필요하다며?”

“그렇지. 그런데 마음에 드는 게 없잖아… 아!”

말하면서 깨달음이 왔다. 내가 찾는 건 편하게 막 신는 신발이 아니었다. 디자인도 괜찮고, 가격도 괜찮고, 단화나 운동화 종류에 4계절 내내 신을 수 있으면서도 편하게 막 신는 신발이었다. 세상에 존재하는지 알 수도 없는 그 신비의 신발을 사장님에게 내놓으라 하고 있었으니 이 얼마나 신선한 부류의 진상 고객인가?

“어휴, 사장님 죄송해요!”

당황스러워하며 가게를 도망쳐 나왔다. 아내는 다음부터 신발은 너 혼자 사러 가라고 했다. 결혼은 어떻게 했는지 모르겠다. 기적의 힘이었나 보다.


‘신발을 되게 중요하게 생각했었구나.’

두 에피소드를 기록하고, 연결 지어 생각해 보면서 나에게는 충격으로 다가오는 사실이었다. 평소에 신발에는 큰 관심이 없다고 생각했다. 몇 가지 정해진 신발만 신고 다니면서, 다른 신발을 사야겠다고 생각한 적이 없었다. 하지만 이 부분을 한 커플 벗겨보면 한차례 꼬인 심리구조를 관찰할 수 있다. 나는 ‘신발에 크게 연연하지 않는’ 캐릭터를 구축해서 전시하고 있었다. 외모나 패션에 도통 관심이 없어 보이는 사람. 그러면 역으로 내가 신발을 중요하게 생각한다는 사실을 가릴 수 있다. 사람들에게 보이는 것이 무척 중요하지만, 보여줄 수 있는 것이 미약하니, 보이는 것을 중요하게 생각하지 않는 듯이 꾸몄다는 것이다. 외모에 대한 열등감을 가리기 위해서, 외모에 관심이 없는 태도를 보이는 전략은 흔하다. 그런데 그걸 내가 하고 있는 줄 오늘 처음 알았다는 거다.


이건 나에게는 무척 큰 이슈다. 지금 나는 무척 어안이 벙벙한 상태다. 지금까지 나 자신을 속이면서 잘 돌봐주지 못한 거니까. 어쩌면 크록스가 찢어진 건 일종의 계시 같은 것이었을지도 모른다. 이제는 똑바로 보라고. 어쩌면 앞으로 내 외모에 있어서 좀 더 진지한 변화가 시작될지도 모르겠다.


안녕하세요! '마음탐험가'입니다.
동탄에서 고전 독서 모임과 글쓰기 모임을 진행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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