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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마음탐험가 Jun 29. 2024

담장 너머로 개구리를 넘기며

선납지에는 ‘맹꽁이 보호구역’이 있다. 선납숲 놀이터 쪽으로 올라가다 보면 올챙이들이 버글대는 커다란 웅덩이도 볼 수 있다. 한여름 밤 도시 한가운데서 맹꽁이 우는 소리를 듣는 건 무척 아름다운 경험이다. 맹꽁이 보호구역 팻말이 보이는 곳에는 내 허리 높이 정도 되는 담장이 쭉 둘러져 있다. 담장 안쪽은 이름 모를 풀들이 얽히고설켜 내 키보다 더 높이 자랐다. 담장 바깥쪽에는 산책로가 있다. 잘 포장된 시멘트 길이라 선납지를 느끼며 천천히 걷기 좋다. 오늘 같이 비가 오는 날에도 걷는 것이 부담스럽지 않다.


우산을 들고 걸으러 나섰다. ‘운동은 아니고 산책이네.’ 비가 오니까 무리하지 않고 조금만 걸을 생각이었다. 우산을 뚫을 듯 세차게 내리는 비가 어깨를 적셨다. 우산이 아내 것이라서 나에겐 작았다. 이리저리 우산을 움직여봐도 비를 맞을 수밖에 없었다. ‘뭐, 어차피 젖을 건데.’ 휴대폰만 적당히 보호하며 걷기로 했다.


그런데 눈앞에 뭔가 기어가는 것이 보였다. 두꺼비였다. 길을 건너다가 나를 보고 당황했는지 몸을 돌려 도망가는 것이 귀여웠다. 비 오는 날 선납지에서는 두꺼비를 자주 볼 수 있다. 처음 봤을 때는 신기해서 아들에게 영상통화를 걸어 보여주기도 했었는데, 지금은 일상처럼 느껴진다. 두꺼비를 피해서 좀 더 걸었다. 그 담장 옆을 지나고 있었다. 이번에는 발 앞에 개구리가 폴짝 뛰었다. ‘개구리가 넘기에는 좀 높은데.’ 아니나 다를까 그 개구리는 내가 두 바퀴를 더 도는 동안에도 그 자리에 가만히 있었다. 지친 듯 내 발소리에도 꿈쩍도 하지 않았다. 멈춰 서서 발끝으로 살짝 건드려 보았더니, 화들짝 놀라며 이리저리 뛰었다. ‘알아서 저수지 쪽으로 가든가 하겠지.’ 나는 계속 걸었다.


그런데 그 개구리가 불쌍하다는 생각이 들기 시작했던 거다. 늦은 저녁, 내리는 비, 넘을 수 없는 벽과 지친 몸. 그 개구리에게 감정 이입을 하기에는 충분한 동기였다. 걸으며 생각했다. ‘개구리를 담장 너머로 넘겨줄까? 뱀이 기다렸다는 듯이 잡아먹지는 않을까? 내가 자연에 개입할 권리가 없지 않을까? 아니, 담장 때문에 길이 막혀버렸으니 나라도 길을 내주는 것이 더 옳은 걸까?’ 이런저런 생각을 하며 걷다 보니 다시 그 담장이 눈에 보였다. 아무래도 신경이 쓰여서 개구리를 담장 너머로 넘겨주기로 했다.


주먹만 한 크기의 길쭉한 돌멩이를 주웠다. 개구리를 거기에 올려서 넘길 생각이었다. 개구리를 직접 만지고 싶지 않아서였다. 다른 도구는 보이지 않았다. 이 빗속에 이리저리 그 도구를 찾아다니는 것도 번거로웠다. 개구리를 도와준답시고 비에 젖는 건 말이 안 되지 않는가? 그런데 개구리가 돌멩이를 보더니 갑자기 사방으로 뛰기 시작했다. 힘에 부쳐 멀리 가지는 못했지만, 돌멩이는 죽어도 싫다는 듯 도망쳤다. 내 마음을 몰라주는 개구리가 야속했다. 그러다 내가 뭘 하고 있나 싶어서 결국 개구리를 손으로 잡아서 담장 위에 올려놓았다. 그때 사람 오는 소리가 들려왔다. 고개를 돌려보니 세 사람의 시선이 일제히 나를 향해 있었다. 나는 죄를 지은 것도 아닌데 화들짝 놀라며, 급하게 돌멩이를 치우고 빠른 속도로 걸어가기 시작했다. ‘왜 도망거지?’ 왜 그랬는지는 잘 모르겠다. 뭔가 부끄러웠기도 하고, 괜히 이상한 오해를 살 것 같기도 했다. 이 저녁 폭우 속에서 개구리를 담장 위에 두고 돌멩이를 치우는 40대 남성. 사람들에게 나는 어떻게 보였을까?


사람들의 시선으로부터 멀어졌다. 문득 어릴 적 생각이 났다. 옛날에 살던 아파트가 신축 건물이었다. 그런 곳은 막 지어진 터라 아직 주변환경이 잘 정비되지 않은 경우가 많다. 사람들은 정문이 아니라 공사장 패널 사이로 작게 나있는 틈을 통과하곤 했다. 거기가 지하철역까지 가는 지름길이었기 때문이다. 어느 날 그 자리에 박스가 놓여있었다. 박스 안에서 소리가 들려서 열어보니 새끼 고양이였다. 누군가는 그 생명을 거두어 주리라 생각하며 이 자리에 둔 것 같았다. 그곳에서 한참을 떠날 수가 없었다. 그 고양이가 불쌍했기 때문에. 하지만 그 아이를 데리고 집으로 갈 수가 없었는. 우리 집은 반려동물을 키우지 않는다는 엄마의 단호한 입장이 있었기 때문이다. 내가 할 수 있었던 일이라곤 다른 어른이 올 때까지 그 자리를 지키고 있었던 것뿐이었다.


‘누군가를 돕고 싶은 마음은 그때도 있었구나. 그 고양이는 어떻게 되었을까?’ 그 생각을 하다 보니 다시 그 담장이었다. 문득 개구리가 어디로 갔는지 궁금해졌다. 그런데 그때 내 눈에 보인 것은 개구리가 아니라 처음에 마주쳤던 그 두꺼비였다. 그 친구는 아직도 그 자리를 벗어나지 못하고 있었다. 그러거나 말거나 나는 가던 길을 계속 갔다. 몇 주 전에도 그랬었고, 며칠 전에도 그랬다. 그 두꺼비는 왠지 알아서 잘 살아나갈 것 같았다. 그리고 가장 결정적으로, 그 두꺼비는 내 손바닥만큼 컸다. 두꺼비 피부에서는 독이 나온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무서웠다. 몸서리를 치며 좀 더 길을 걸었다. 그런데 또 개구리가 있었다. 아까 그 친구는 아니었다. 몸집이 더 컸고, 무척 활기찼다. 마치 “소식 듣고 왔습니다! 저도 좀 넘겨주시죠. 형님!”이라고 말하는 듯 나에게 매력어필을 하고 있는 것 같았다. 징그러워서 또 피해 걸었다.


‘아니, 돕고 싶은 마음이 있다며!’ 이 일관성 없는 감정이입에 기가 차서 웃음이 터졌다. 아까 그 개구리랑 다른 개구리가 무슨 차이가 있는 걸까? 아까 그 친구는 불쌍해 보여서 도와줬는데, 다른 친구들은 징그럽고 싫어서 도와주지 않아도 되는 걸까? 뭐 하긴, 내가 세상의 모든 파충류의 이동을 다 관장할 수는 없는 노릇 아닌가? 그런 모순의 괴로움을 견디면서 사는 게 인생 아니겠는가? 비는 더 세차게 내렸다. 이미 다 젖어버린 반바지 때문에 더 걷기는 힘들 것 같았다.


안녕하세요! '마음탐험가'입니다.
동탄에서 고전 독서 모임과 글쓰기 모임을 진행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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