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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마음탐험가 Jul 01. 2024

미니멀리즘과 세계 평화

미니멀리즘에 꽂혀서 집안 물건을 다 내다 팔 던 시절이 있었다. 중복되거나 불필요하다고 생각되는 물건들은 방출의 대상이었다. 유통기한이 지난 식품들과 고장 난 물건들은 다 버렸다. 어린 시절 추억이 있는 물건들도 사진을 찍거나 스캔해서 전부 디지털화했다. 그렇게 한동안 씨름했더니, 삶이 눈에 띄게 단순해졌다. 웬만한 건 집에 없었다. 그래서 우리 집에 뭐가 있는지 고민하거나, 잃어버린 물건을 찾을 일도 별로 없었다. 큰 필요가 아니라면 넘어가는 태도가 생겼다. 물건을 가지지 않을 때의 홀가분함은 미니멀리즘 특유의 보상이다. 물건이 줄어들수록 행복했다.


‘무소유로 살면 얼마나 홀가분할까?’ 그렇게까지 살기는 힘들겠지만, 적어도 이쯤에서 멈추기는 싫었다. 미니멀리즘 카페에 가입해서 말 그대로 모든 글을 샅샅이 훑었다. 글이 올라오는 족족 다 읽을 기세였다. 여러 고수들과 선배님들이 자신만의 노하우와 팁을 알려주었다. 냉장고를 파먹다 보니 나중에는 냉장고가 필요 없게 되었다고 했다. 샴푸를 쓰지 않는 노푸, 물티슈 한 장으로 청소 끝. 자기가 가진 물건이 몇십 개도 안된다고 자랑하는 미니멀리즘 유튜버도 있었다. 그는 디지털노매드로 해외를 여행하며 살아가고 있었다. 석가모니가 살아있었다면, 최고의 미니멀리스트가 아니었을까? 나는 아내에게 이 모든 걸 신나게 떠들었다. 우리도 조금만 더하면 이런 미니멀리즘 고수들처럼 될 수 있지 않을까? 아내는 고개를 끄덕였다.


하지만 마음에 걸리는 것이 있었다. 아내가 웃지 않았다. 아뿔싸! 그 순간 모든 도파민은 사라지고, 아드레날린이 급속도로 분비되기 시작했다. 아내의 미소가 사라졌다는 것은 곧 세계의 종말이 온다는 것을 의미했다. 하늘은 빛을 잃을 것이고, 땅은 불타오를 것이다. 모든 것은 허무 속에 사라질 것이며, 우주는 그 기원으로 돌아가게 될 것이다. 그런 사태가 일어나는 것만은 막아야 했다. 나는 정신을 바짝 차렸다. 어떻게 해야 나와 이 세계를 구할 수 있을까?


아내의 이야기를 들었다. 미니멀리즘은 불편하다고 했다. 그 불편을 상쇄하는 홀가분함은 나만의 것이었다. 고수들의 노하우는 기인이나 괴짜들처럼 보인다고 했다. 우리가 꼭 그렇게 살아야 하는가? 그렇게 사는 것만이 행복한가? 아내는 그렇지 않을 것 같다고 했다. 미니멀리즘은 우리의 신념이 아니라, 나의 신념이었다. 나의 행복이었다. 나의 행복은 곧 아내의 행복인 줄 알았지만, 그렇기도 하고 아니기도 했다.


결국 세계의 평화를 위해 미니멀리즘을 접기로 했다. 어느 정도의 습관은 남겨두었지만, 예전처럼 예민하게 물건 개수를 체크하는 정도는 아니었다. 그리하여 우리 집에는 다시 물건들이 쌓이기 시작했다. 옆집 할머니가 준 옥수수가 냉장고를 차지했고, 엄마가 홈쇼핑에서 사준 특별한 디자인의 이불도 덮으며 살았다. 게다가 생전 처음 보는 어린 아기가 내 아들이라며 우리 집에 들어와서 살게 된 이후부터는 집의 모든 구석에 육아용품이 쌓였다. 마치 자가 증식하는 생명체 같았다. 아이에게 무엇이 필요한지 몰랐으니, 쌓아놓을 수밖에 없었다.


그 후로 5년이라는 세월이 흘렀다. 수많은 물건이 당근을 통해 물 밀듯 들어왔다. 문제는 3개가 들어오면 2개만 나가서 결국 물건이 산더미처럼 쌓였다는 점이었다. 아이는 블록 한 박스를 바닥에 부어놓고, 아빠가 어지른 것을 내가 왜 치워야 하느냐며 거짓 성토를 하는 지경에 이르렀다. 이제까지는 정리할 때 도와주곤 했었는데, 오늘은 그러면 안 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자기가 어지럽힌 건 자기가 정리해야 한다는 단순한 진리를 알려주고 싶었다. 결국 등원이 1시간이나 늦었지만 아이는 스스로 정리를 다 해냈다. 정리해야 할 수많은 물건들을 보면서 물건들을 ‘타노스’하는 상상을 수도 없이 했었다. 아이에게 미니멀리즘의 기쁨을 알려주면 어떨까도 잠깐 고민했다. 하지만 아무래도 세계 평화를 지켜야겠다는 결론에 이르렀다.


안녕하세요! '마음탐험가'입니다.
동탄에서 고전 독서 모임과 글쓰기 모임을 진행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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