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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마음탐험가 Jul 03. 2024

제주도에 비가 내릴 때

[모라도 클럽] 세번째 숙제 (주제 : 그 날의 분위기)

[모라도 클럽] 두번째 숙제 (주제 : 말하지 못한 이야기)

제주앓이를 하던 때가 있었다. 그때는 여행만 갔다 하면 제주도였다. 바람이 허락해 주는 대로 오름이며 곶자왈이며 바당이며 다니다 보면 어느새 아내와 나는 아름다운 풍경에 넋을 놓고 말았다. 우리는 계획에 없던 곳을 우연히 찾아내었을 때 참 좋아했다. 누군가에겐 일상이지만, 우리에게는 비밀을 찾아 떠나는 설레는 모험이었다. ‘우유부단’이라는 가게에서 아이스크림을 먹고, 성이시돌 목장에 잠깐 머물렀다 나오는 길이었다. 운전을 하다 오른쪽 길을 확인했다.

“우와!”

차를 멈출 만큼 신기한 광경이었다. 나무가 얼마나 울창했던지 그늘진 길이 마치 저녁처럼 어두웠다. 아마 한 여름의 강렬한 햇살이 더 그렇게 보이게 했는지도 모르겠다. 이 광경이 더 특별해 보였던 건 누군가 관리한 흔적이 보였기 때문이다.

‘여기까지 목장인 건가? 생각보다 되게 넓네.’

궁금해하며 지도 어플을 열었다. 그런데 이 근방이 다 가톨릭 성지였다. 이렇게 큰 가톨릭 성지를 이때까지 전혀 모르고 있었다니. 그리고 보면 아까 방문했던 목장 이름도 '성이시돌'이었다. 성이시돌이 누구이길래 여기에 이렇게 큰 성지가 있는 걸까? 그때 그 길을 통과해 갔는지, 거리뷰로 확인만 했는지 정확하게 기억이 나지는 않는다. 어쨌든 우리는 그 길 끝에 있는 성이시돌센터를 발견했다.


성당 건물에 들어가 본 적이 있는 사람이라면, 그 특유의 서늘하고도 신비한 느낌을 알고 있을 것이다. 가톨릭과 관련된 건물이라는 생각이 있어서 그랬던 건지, 문을 열고 들어가면서 에어컨 바람에서 그 서늘함을 느꼈다. 무엇인가를 기리는 곳 특유의 경직된 느낌이 있을 줄 알았는데, 생각보다 아늑한 장소였다.


목장과 센터의 이름인 ‘성이시돌’은 가톨릭의 관습에 따라 이시도르(Isidore) 성인의 이름을 딴 것이었다. 이 이름으로 이곳을 개척한 사람은 패트릭 제임스 맥글린치(Patrick James Mcglinchey, 1928 ~ 2018) 신부님이었다. 25살의 젊은 나이에 멀리 한국 제주도까지 오셔서 평생을 바친 흔적이 센터 벽에 사진과 함께 기록되어 있었다. 가톨릭 사제로서 복음을 전하는 것도 중요했지만, 주민들의 가난을 먼저 해결해야 했기에 신부님은 돼지를 들여와서 성이시돌 목장을 시작했다. “돼지 신부님”이라는 별명을 가질 정도로 진심이었던 이 일은 많은 지역 주민들을 살려냈다. 그는 1973년 명예도민증을 받으며 '임피제'라는 이름의 한국인이 되셨다. 평생 한국에 사시다가 2018년 4월 선종했고, 6월에 대한민국 명예국민증이 추서 됐다.


궁금증과 호기심은 감동으로 바뀌었다. 짧은 여행 일정에 가보고 싶은 곳도 많았지만, 이 감동을 더 느끼고 싶었다.

“여기 조금만 더 있을까?”

아내는 그러자고 했다. 알고 보니 그곳은 카페 이기도 했다. 카페 이시도르. 그때는 손님도 거의 없었고, 직원 분들도 무척 따듯했다. 뜨거운 여름 속 고즈넉함과 부드러운 클래식 배경음악. 아무 말 없이 그곳에 있다는 것만으로도 몸과 마음에서 무엇인가 씻겨나가는 듯한 느낌이었다. 아내는 그곳에서 인생 사진을 찍었다. 창가에 앉아 밖을 바라보며 고개를 약간 틀고 있는 모습은 역광과 함께 짙은 오렌지 색 조명 색감과 어우러졌다. 우리는 그곳을 사랑하게 되었다.


그곳을 또 방문한 건 그다음 여행 때였다. 그날은 비가 세차게 내렸다. 건물 밖의 빗소리는 지붕에서 물 떨어지는 소리와 함께 크게 들려왔다. 그 공간은 여전히 좋았다. 하지만 왠지 그날은 감정이 가라앉아 있었다. 아쉬움 때문이었다. 두 번째 방문은 처음처럼 강렬하지 않았다. 갑작스러운 비에 일정도 꼬였고, 더 갈만한 곳도 없어 보였다. 말없이 커피를 시켜놓고 앉아 괜스레 휴대폰만 만지작 거리고 있었다. 그런데 아내는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리고 천천히 그 공간을 음미하듯 둘러보기 시작했다.

‘맞다. 우리한테 무척 소중했던 공간이었지.’

아내의 뒤를 몰래 따라가서 옆구리를 찔렀다. 고요함을 너머 신성함을 간직한 그 공간에서 소리를 지를 뻔한 아내는 파운딩을 걸어올 기세로 나를 노려보았다. 하지만 곧 나와 함께 다시 그 공간에 시선을 돌렸다. 공간은 작년에 비해 조금 달라진 느낌이었다. 이곳을 지키는 사람들의 필요에 따라 일어난 자연스러운 변화였다. 하지만 신부님이 살아온 흔적은 그대로였다. 한동안 그 얼굴을 바라보았다. 변하는 것들 사이에 변하지 않는 것을 발견한 것 같아서 기뻤다. 제주의 변덕스러운 비가 내 여행을 방해하고 있다고 생각했었는데, 이제 그 비는 하늘에서 내리는 은총이었다. 여기저기 다니는 것도 좋지만, 지금은 이 자리에 머무르며 메마른 마음을 적시라는 계시였다.


숙소의 창가에도 비는 계속 내렸다. 다음 날의 동선을 체크하다가 문득 창밖을 보고 싶어졌다. 평소엔 사람들로 왁자지껄 하던 광장이었는데, 아무도 없었다. 수만 개의 빗방울이 부서지고 한데 모여 어디론가 흘러가는 모습뿐이었다. 한동안 빗소리를 듣다가 ‘고막이 녹는’ 음악들을 들었다. 이 낭만, 이 분위기, 이것이 여행 아닐까? 짐 정리를 마친 아내에게 물었다.

“내일은 어디 나가지 말고 그냥 호텔에 있을까?”

“음… 아니!”

낭만을 깨부수는 현실주의자 같으니라고. 아내는 침대에 털썩 눕더니 휴대폰을 열어 그날 찍은 사진을 보기 시작했다. 비난을 가득 담아 아내에게 안광을 쏘아 보냈다. 그 시선에 아내는 미소로 답했다.

‘이것도 낭만이지.’

아내의 미소를 보니 내일 여기에 있든 아니든 큰 차이가 없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일정을 놓치고, 원하는 곳에 머무르지 못하는 것을 무척 속상해하는 나에게는 흔치 않은 일이었다. 빗소리에 마음이 편안해진 걸까? 습하고 시원한 공기에 마음에 쌓였던 것들이 씻겨나갔던 걸까? 어쩌면 아까 경험했던 은총의 흔적 때문일까? 부스럭대는 호텔의 이불과 빗소리의 포근함 속에서 잠에 들기까지 우리는 한동안 말이 없었다.


안녕하세요! '마음탐험가'입니다.
동탄에서 고전 독서 모임과 글쓰기 모임을 진행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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