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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마음탐험가 Jul 14. 2024

아들 단편 모음

아들 수족구 당첨 기념 에피소드 대방출

#1


“독서모임 하는 사람이요.”

아들에게 아빠가 뭘하는 사람인지 물었다. 독서모임 하는 사람이란다. 독서모임이 뭔지도 모르면서, 동네 산책만 하면 사람들한테 아빠가 독서모임 한다는 말을 그렇게 한다. 명함이라도 쥐어줘야 하나.

“아빠가 독서모임 하는 사람이야?”

미소 지으며 다시 되물었다.

“쉬하는 사람이요.”

그럼 그렇지. 음료수를 적당히 마시든가 해야지 원. 아참, 그런데 아빠 글쓰기 모임도 2개나 하는데.



#2


가끔 가족끼리 산책을 나가면, 아들은 킥보드를 타고 저 멀리 앞으로 간다. 따라가보면 꼭 누군가에게 말을 걸고 있다.

“안녕하세요! 저는 누구에요! 근데 이거 먹는 거에요?”

자기 어필과 간식 자가 수급을 통해 지역사회에 존재감을 과시하기 시작한다. 오죽하면 지나가는 사람들 중에 반갑게 인사하는 사람들이 생겨났다. 아빠와는 달리 인싸 기질이 있는 것 같다.

언젠가 편의점에서는 계산을 기다리며 사장님을 뻔히 바라보다가, 오레오 팝콘 과자를 획득했다. 정말이지 기가 찼다.

‘아니, 그 정도라고? 진짜 그 정도로 귀엽다고?’

사람들은 아들을 무척 귀엽다고 한다. 역시 남의 자식은 이뻐 보이는 것이 만고 불변의 진리인 것일까?



#3


아들은 나랑 놀때는 블럭놀이를 하길 좋아한다. 아빠가 다른 건 지겨워 해도, 블럭으로 뭔가 만들 때는 열심히 하기 때문인 것 같다. 오늘도 나에게 자석블록놀이를 제안해 온다. 나는 성의없이 블럭을 몇 개 집어들고 아무렇게나 연결하기 시작했다. 그러다 아이디어가 번뜩 떠올라 아들을 내팽개치고 만들기에 과몰입하기 시작한다. 아들이 이것좀 보라며 목이 터져라 말해도 아빠는 쳐다보지도 않고 “우와! 멋지네!” 리액션을 한다. 이번엔 어줍잖은 아크리액터를 만들었다. 아들에게 아이언맨 가슴에 달려있는거랑 비슷하지 않냐고 물었다. 아들은 날 쳐다보지도 않고 비슷하다고 대답해준다. 둘 다 초능력이 있는 것 같다. 오늘도 참 보람찬 아들과의 시간이다.

아들은 정육각형 블럭을 이리저리 짜맞추더니 말했다.

“벌집이에요! 오각형이에요!”

“아니야, 그건 육각형이야. 봐봐 일, 이, 삼, 사, 오, 육. 육각형 맞지?”

“육각형이에요? 이건 벌집이에요.”

오각형인지 육각형인지 도대체 알게 무엇인가. 아들은 육각형들을 넓게 붙인 다음 그 안에 다른 블럭 조각들을 놓기 시작한다.

“그건 뭐야?”

“꿀이에요. 여긴 꿀집이에요.”

꿀집이란다. 꿀집. 벌집도 아니고, 벌꿀집도 아니고, 꿀집이란다. 어떻게 그런 말이 나오는거지? 허허. (꿀집 발음 해보세요. 웃겨요.)



#4


아빠의 입에서 “빠밤!” 이라는 소리가 울려펴지는 순간 비명이 집안을 가득 채운다. 우리 아들이 언젠가 죠스 영화를 본다면 놀랄지도 모른다. 장르가 예능 아니었냐며. 내가 몸이 좀 피곤할 땐 바닥에 누워서 빠밤만 하면 몇 분은 떼울 수 있다. 그러다 한 번씩은 출동을 해줘야 하는데, 그래야만 긴장감이 유지되기 때문이다. 잡기 쉬운 아들을 최대한 어렵게 잡으면서 이불 위를 뒹굴다 보면 피곤이 극대화 되지만, 이것이 행복이라고 내 마음을 설득해 본다.

아들이 뭔가 다른 것에 집중할 때는 건드리면 안된다. 자기 아빠를 닮아서, 뭘하는 도중에 방해받는 걸 무척 싫어한다. 짜증내는 게 무슨 장미꽃 가시마냥 뾰족하다. 그럴 땐 옆에서 지켜보다가 타이밍 좋게 살짝 물어본다.

“아빠가 도와줄까?”

그러면 이 고집센 친구는 끝까지 자기가 해보겠다고 한다. 그렇게 해서 드라이버로 나사를 조인적도 있고, 에어컨 리모컨에 배터리를 제대로 낀 적도 있다. 하지만 대부분의 경우 무엇인가 와장창 부서진 상태로 나에게 가지고 온다. 아직까지는 아빠가 고쳐줄 수 있는 수준이라서 다행이다. 아빠는 마치 마법을 부리는 사람처럼 모든 것을 고쳐내서 아들에게 보여준다. 좋아하는 아들을 잠깐 바라보다가 긴장감을 불어넣는다. “빠밤!”



#5


언젠가 강아지 영상을 본 적이 있었다. 강아지와 친해지려면, 눈높이를 낮추고 손등을 내밀어 냄새를 맡게하라는 것이었다. 손바닥을 보이면 무서워서 시선이 따라올라간다고 했다. 친하지 않은 상태에서 쓰다듬으면 긴장을 풀지 못한다고 했다. 아들에게도 이 사실을 알려줬다. 강아지를 만지고 싶으면, 천천히 다가가서 먼저 “만져도 되요?”라고 물어보라고. 그리고 허락을 받으면, 강아지 앞에 앉아서 손등을 내밀고 “냄새맡아 봐!”라고 하라고.

그러자 산책을 나가서 만나는 모든 강아지를 세워놓고 묻기 시작한다.

“만져봐도 되요? 냄새맡아 봐!”

흥분해서 빙글빙글 도는 강아지, 무서워서 뒤로 숨는 강아지, 두 발로 아들을 밀어대는 강아지. 그중에 눈에 띄게 큰 골든리트리버, 차우차우, 세이트 버나드 같은 친구들은 이름까지 다 알고 있다. 이러다가 조만간 개통령이 되는 건 아닐까 하는 생각마저 든다. 엄마와 아빠는 아들이 조만간 개 키우자고 말할까봐 겁이 난다. 우리는 반려동물 안 좋아하는 스타일이어서.


안녕하세요! '마음탐험가'입니다.
동탄에서 고전 독서 모임과 글쓰기 모임을 진행하고 있습니다.
저에 대해, 모임에 대해 궁금하시다면 아래 링크트리로 와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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