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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마음탐험가 Jul 16. 2024

지옥의 맛

단테의 [신곡]을 읽고


주의 : 역겨움을 주제로 한 글입니다. 지저분하고 불쾌한 글일 수 있습니다. 비위가 약하신 분, 노약자, 임산부, 식전 이신 분, 기분을 잡치고 싶지 않으신 분들은 반드시 뒤로 가기를 눌러주세요.




인스타에 단테의 [신곡] 리뷰를 올렸다. 마음에 와닿는 내용이 별로 없어서, 생각난 것 몇 개를 썼다. 숙제를 하나 쳐낸 기분이라 좋았다.


배가 고파서 냉장고 문을 열었다. 냉장고 속에서는 새로운 생명이 탄생하려 하고 있었다. 여름이었다.

싹 모았더니 큰 비닐에 담아야 할 만큼 많았다. 어차피 버려야 할 것들을 왜 이리도 쟁여놓고 있었을까? 한숨을 쉬며 음식물 쓰레기 처리하는 곳으로 갔다. 음식물 부패하는 냄새가 코를 찔렀다. 기온도, 습도도 높은 날이었다. 쓰레기 처리 기계의 뚜껑이 열리고 내용물을 쏟으려 비닐을 뒤집었다. 뭔가 걸렸는지 잘 나오지 않아서 인상을 찌푸리며 비닐을 몇 번 흔들었다. 덩어리 진 무언가가 떨어져 철퍽 소리를 냈다.

그때였다. 기계 속 어두운 심연에서 불길한 기운이 느껴지나 싶던 찰나. 깜짝 놀라기도 전에 시꺼먼 존재가 공간을 뚫고 나오기 시작했다. 푸르륵프르륵 소리가 나는 그것은 날아다니는 무엇이었다. 나방인가? 파리인가? 정체를 파악할 틈도 없이 그 저주받은 존재가 나의 팔뚝에 붙어 온몸을 비벼댔다.


“어우 씨!”

동네가 울릴 큰 데시벨이었다. 그 찰나에 얼마나 극단적인 혐오를 느꼈던가. 나의 원래 모습이 통제를 뚫고 튀어나왔다. 자칫 잘못했으면 ‘바로 그 단어’를 내뱉었을지도 모른다. 옆에 사람이 없어서 얼마나 다행이었는지.

“으이이이!!!”

꽉 깨문 이 사이로 경악하는 소리가 새어 나왔다. 다리를 동동 굴렀다. 심장이 말 그대로 ‘벅벅’ 소리를 내며 뛰었다.

‘이건, 이 느낌은, 말하자면…. 뭘까? 이 더러운, 이 혐오스러운…. 이 역겨운!’

그랬다. 바로 그 단어였다. 한 여름의 음식물 부패하는 냄새와 그 사이를 배회하던 끔찍한 생명체와의 아찔한 스킨십을 적절히 표현할 수 있는 단어. 바로 ‘역겨움’이었다.

악몽의 근원은 날아갔지만, 역겨움이 가시질 않았다. 편의점에서 먹을거리를 집어 돌아오는 내내, 집에 와서 팔을 비누로 씻어낸 이후로도. 무언가 팔에 묻어있는 느낌이었다. 미세 트라우마가 될 것 같았다. 다음번에는 그 기계 앞에 설 날이 올 것이 두려웠다.


‘이 역겨움이 영원하다면? 지옥일까?’

신곡의 영향이었는지 역겨움과 지옥을 연결 지어 생각해 보게 되었다. 모르긴 몰라도 지옥은 그 이상일 것이다. 부패한 음식물 쓰레기와 거기에서 튀어나온 생물 따위와는 비교할 수 없는 곳. 단테는 엄청난 악취와 사람들의 흉측한 모습, 죄인들을 고문하는 마귀들의 추악함을 묘사한다. 그 현장에서 보고 느끼는 단테는 얼마나 역겨움을 느꼈을까? 지금 와서 생각해 보면 이 책을 끝까지 무덤덤하게 읽었던 건 정말 축복에 가까운 몰입 실패였다.


몰입에 실패했던 이유는 뭐였을까? 텍스트의 상징성과 알아야 할 수많은 정보 때문이다. 곳곳에 숨어있는 상징과 의미들을 놓치는 느낌이 들어도 그저 페이지를 넘길 수밖에 없었다. 이럴 땐 읽는 게 찝찝하다. 게다가 모르는 사람들이 너무 많이 등장한다. 남의 이야기처럼 들려서 몰입하기가 쉽지 않다. 그렇구나 하고 넘기게 되는 것이다.

하지만 그것은 외적인 이유다. 더 중요한 이유는 마음속에 있을 것이다. 어쩌면 나와 지옥을 연관 짓기 싫어서 몰입을 깊이 하지 못했을지도 모른다. 지옥에서 형벌을 받는 사람이나, 지옥을 통과하는 여행을 하는 사람, 그 누구에게도 몰입하고 싶지 않았던 것 같다. 나는 지옥에 갈 사람이 아니라는 확신 같은 것도 몰입을 방해하는 요소였다. 새로운 지옥이 등장할 때마다 혹시나 하고 나를 돌이켜 보게 되지만, 썩 유쾌한 기분은 아니다. 지옥에 나 자신을 대입하는 것은 꺼려지는 일이다. 끔찍한 형벌을 받는 것이 달가울 리가 없지 않은가?

반대로 누군가를 지옥에 대입하는 것은 무척 유쾌한 일일지도 모른다. 죄를 지었으면 그만한 벌을 받아야 한다는 신념을 만족시켜 주기 때문이다. 나도 어쩔 수 없는 인간인지라, ‘조두순 같은 쓰레기보다는 내가 더 의롭지!’와 같은 생각을 한다. 그에게는 어떤 지옥이 어울릴까? 그런 끔찍한 상상을 해보게 되기도 한다. 하지만 내가 정의의 집행자도 아니고, 역겨운 모습을 보고 있어야 할 이유도 없지 않은가? 그런 인간에게 집중할 필요가 없는 것이다. 그러니 어쩌면 내가 이 책에서 몰입감을 잃었던 건 굳이 역겨움을 느끼고 싶지 않았기 때문이 아닐까? 언젠가 사람에게 큰 환멸을 느낀 경험이 있다면 내 마음을 이해할지도 모른다.


살면서 모든 역겨움을 다 피할 수는 없을 것이다. 역겨움이란 어쩌면 인간이기에 느끼는 본질적인 감정일지도 모른다. 그렇다고 해도 역겨움에 대해 글을 쓰는 건 누군가에게 역겨움을 전달하는 일이 아닐까 싶어 죄송한 마음이 든다. 앞으로는 이런 글을 쓰지 않으리라 다짐해 본다. 남을 위해 역겨움을 치워주는 사람이 되어야겠다. 음식물 쓰레기 통은 누군가 수거해서 처분해 주시지 않는가? 그분도 역겨움을 느끼는 것은 마찬가지이지만, 그런 일을 해주신다. 이 땅에서의 역겨움은 영원하지 않다. 단테는 끝내 그 지옥을 통과해서 나왔고, 별을 바라보게 된다. 역겨움을 경험했더라도 별을 가리켜 사람들을 보게 하는 사람이 되어야겠다.


안녕하세요! '마음탐험가'입니다.
동탄에서 고전 독서 모임과 글쓰기 모임을 진행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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